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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씨가 북한으로부터 연구비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고 했다. 국정원의 말을 빌린다해도 91년 5월 김일성 면담 후 95년까지 재독 공작원을 통해 연구비 명목으로 매년 2∼3만 달러를 받았다고 한다. 그 당시 2∼3만달러로 치면 한화로는 얼마나 될까.

송두율씨가 받은 돈과 단순히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1980년대 기자가 재일 조총련으로부터 받은 장학금은 연간 36만엔 정도, 우리 돈으로 치면 그 당시로는 100여만원 정도였다.

기자는 조선장학금을 신청하기 전에 지인에게도 묻고 동료 유학생에게도 묻고 또 주일 한국 대사관 교육담당관에게 전화를 걸어 조선장학금을 신청해도 정말 괜찮으냐고 묻고 또 물어 확인한 후에 신청을 했다.

조선이라는 이름마저 금기시 되던 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 많은 한국 유학생들이 신청을 했고 나도 어쩌다 이름마저 서슬퍼런 조총련의 돈이 섞인 장학금을 1년 동안이나 착실하게 받았던 것이다.

그 당시 유학생들에게 있어서 북한과 조총련에 대한 인식은 항상 팽팽한 긴장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북한을 왕래하는 유학생들이 있다는 이야기가 주변에 돌아 다녔을 뿐 아니라 재일 조총련계 사람들이 항상 근거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조총련 사람들과도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지만 전혀 이질감은 생기지 않았다. 그들이나 민단이나 모두들 같은 민족이었고 하루 하루 살아가기 바쁜 사람들이었다. 모두들 한국유학생에게 동족이라는 생각으로 용기를 북돋워 주었을 뿐 고국에서 출국직전 받았던 반공교육과는 달리 특수한 목적으로 접근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막상 정체를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북한의 선전물이 날아 온 날이면 지체없이 대사관에 연락을 했다. 그것은 준수사항이라기 보다 말하자면 현재의 내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이 항상 우선했었고 그래서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한 정체성을 우선시 하지 않는다면 반대편에서 또다른 정체성으로 다가오는 북한에 대한 의식이 불분명해지기 때문이었다.

이야기를 돌려 송두율씨의 경우를 보자. 송두율씨는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한 사람으로 북한을 여러번 다녀왔고 그 행적이 누가 보아도 뚜렷하게 북한 편향적이다. 북한 편향적이라는 말은 하나되는 조국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균형을 상실해 분단을 고립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남북한의 경계인이라고 불렀다. 그러면 경계인으로서 그는 무엇을 했을까. 북한을 여러번 왕래하고 김일성을 만나고 김정일을 만나서 그가 한 일은 도대체 무엇일까.

남한을 위해서가 아니고 북한을 위해서 일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분단된 조국을 위한 일이었을 것이다. 역으로 그가 북한을 위해 일했다면 그는 반드시 김철수로서 일해야 했고 노동당정치국 후보위원이었으면 그에 걸맞는 인물로서 활동했어야 했다. 그래야 현재의 그가 당당해 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김철수였음을 부정하다가 현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행해진 일이고 전혀 북한을 위해 활동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도대체 분단된 조국을 위해 무엇을 했다는 것인가.

소떼가 철책을 넘어가는데 일조를 하였는가, 금강산이 개방되어 민족의 이동이 시작되었을 때 그가 일조라도 하였는가, 북한 민족이 사선을 넘어 탈출을 감행할 때 그는 어디서 무엇을 하였는가, 아니면 비전향 장기수의 북한 송환에 그의 이론이 일조를 하였는가,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의 송환을 위해 그가 한번이라도 움직인 적이 있었는가. 그가 기초가 되어 남북 정상회담이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없으며 영변의 핵 공장문제에 그가 간여한 흔적은 아직 아무 것도 들은 바 없다.

그렇다면 그가 한일은 무엇인가. 시시때때 북한을 방문했고, 연구비를 받았고, 그래서 무엇을 했다는 것인가. 그가 연구를 해서 평가를 받았다는 ‘내재적 접근법’이라는 것이 그가 말한 남북의 경계인으로서의 객관적 접근법이었는가, 남북한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객관적 접근법이라면 어떻게 일관되게 반남 친북인사로 규정되고 있는가.

그가 조사를 받고 있는 날 울산대 한총련 간부인 임상우씨가 구속되었다. 임상우씨의 경우처럼 창살 없는 감옥에서 청춘을 보내다가 창살 있는 감옥으로 옮겨진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그들이 형을 살고 나오면 그들을 받아 줄 곳은 변변히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오늘도 오로지 조국은 하나라는 열정 하나로 저항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총련의 일부 과격한 방향은 절대로 옳다고는 할 수 없다. 그들 일부의 그러한 태도가 거꾸로 통일을 방해하는 커다란 요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다시 송두율씨의 경우로 돌아가자. 그가 조국에서 살아 갈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뿐이다. 자신의 과거행적에 대해 모두 밝히고 대한민국 법에 따르면 된다. 독일에서 평양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몇배나 통일을 갈망하며 투쟁을 하다가 한많은 세월을 보낸 민주 인사들도 송씨의 경우보다 더 가혹한 시련을 겪었다. 그가 현재 할 수 있는 일이란 임상우씨와 같이 아주 객관적으로 현행법에 의해 따르는 것이다. 그 다음 일은 그 다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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