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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근무하는 중학교에서 '농업인 정보화 교육'을 실시하였다. 지난 9월 말부터 하루 3시간씩 6일간 강행군을 하였다. 마침 지역농협에 농업인 정보화 교육 프로그램이 있어서 학교의 사회교육 프로그램과 연계하여 실시하였다.

인원은 15명, 수강생의 연령 구성은 40대에서 70대까지 비교적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다.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는 분들로 손마디가 굵어 둔하며, 얼굴은 햇볕에 그을려 구릿빛을 하고 있다. 그러나 배우려는 의지는 결연하기까지 하다.

▲ 나이를 잊고 배움에 열심인 분들의 아름다운 모습
ⓒ 김옥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컴퓨터 무엇을 배우고 싶은가요?"
"문서도 만들고 싶고요, 그 뭐냐? 이메일도 해보고 싶고요, 인터넷도 해보고 싶어요."

"그래요? 그럼 전에 컴퓨터를 배운 적이 있는 분 손들어 보세요."
"…."

"어? 그럼 모두가 처음이란 말씀인가요?"
"예~"

"그런데, 욕심이 참 많으시군요. 좋습니다. 그러면 무작정 원하는 것을 다 배워봅시다. 어차피 이번에는 맛보기니까 여러분이 원하는 것들의 길이라도 알아봅시다."

컴퓨터 무작정 따라하기

담당하신 서 선생님의 발상이다. 서 선생님은 곧 교재를 만드셨다. 컴퓨터의 각 부분의 명칭과 사용방법, 컴퓨터 켜고 끄기, 화면에 나타나는 것들의 이름과 기능으로 첫날을 시작하였다.

어라? 그런데, 뭐가 이상하다. 어차피 자판의 글씨를 찾아서 한 손가락으로 떠듬떠듬 치는 것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영문자를 찾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영어를 전혀 모르시는 분, 손들어 보세요. 부끄러워하지 마시고요."

두 분이 손을 든다.

"좋습니다. 그러면 그분들을 위해 알파벳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별도의 교재를 만들어서 드리지요."

이튿날 영어과 안 선생님께 부탁하여 알파벳 대문자, 소문자, 우리말로 읽는 법을 A4 한 장에 정리하고 백지를 10장 묶어서 나누어드렸다.

"저도 주세요."
"어제는 손을 안드셨잖아요?"

"…."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지요. 오히려 모르면서도 아는 척 하는 것이 문제겠지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 모든 분들께 교재를 만들어드리지요. 백지에 알파벳을 써서 내일 제출하는 겁니다. 숙제를 안 하시면 '맴매'합니다?"

"하하하…."

이튿날.

"선생님, 없는 글자가 있대요? 그리고 T자는 어떻게 쓰는 거예요?"

아차, 소문자 a와 g를 통상 필기체로 쓰고 있으니, 칠판에 선생님이 써준 글씨가 당연히 없지 않은가? 그리고 T자의 대문자가 인쇄체로 썼을 때 머리의 양끝이 약간 꼬부라져 내려온 것을 그대로 그리려니 얼마나 고생했을 것인가? 아~ 순진하고도 열심인 내 제자(?)들이여.

'컴퓨터 무작정 따라 배우기'는 계속된다.

폴더와 파일 만들고 저장하기 그리고 저장한 파일 찾기, '한글97'로 간단한 문서만들기, 이메일 만들기, 이메일 보내고 받기, 이메일로 첨부물 보내고 받아서 저장하기, 받은 첨부물의 문서를 수정하여 답장하기, 연하카드 보내기, 인터넷에서 농업경영에 필요한 사이트 방문하기, 내게 필요한 글 복사하여 내 파일에 저장하기. 저장한 문서에 내 의견을 써서 친구에게 메일로 보내기….

초보들에게 어떻게 이 많은 것을 18시간만으로 어떻게 가르친다는 말인가?

그런데, 가능하였다. 서 선생님과 나의 강의, 두세 분의 선생님이 보조교사로 옆에 붙어서 개인지도를 한다. 선생님의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열의가 가능하게 하였다.

문제는 마우스다. 손이 굳어있다 보니 더블 클릭을 잘못하고, 마우스에 너무 힘을 주어 클릭하는 순간 위치가 움직여서 엉뚱한 화면이 나타나곤 한다.

"걱정 마시고, 이것저것 눌러 보세요. 그렇다고 고장나는 것은 아닙니다. 장난감으로 생각하십시오. 아이들이 빨리 느는 것은 기계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재미로 하기 때문입니다."

70이 넘은 어느 할아버지의 말씀.
"내 시대에 나온 물건인디, 꼭 배우고 죽어야 억울하지 않지."

50대의 어느 아주머니.
"텔레비에서 보니까 엄마가 아들하고 메일로 대화를 하든디. 나도 우리 아들한티 편지해 볼라요."

60대의 어느 이장님.
"인자 김 주사한테 메일로 서류를 보내야 쓰것구만."

비닐 하우스를 하는 60대 아저씨.
"이경해 열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으려면 우리도 알아야 쓰것구먼."

불가능해 보였던, '컴퓨터 무작정 따라 배우기'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선생님, 농번기 끝나면 우리 계속 가르쳐 줄라요?"
"그럽시다. 여러분이 너무나 열심히 배우셔서 보람찬 시간을 보냈습니다."

마지막날.

가르치고 배움에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마치고 나오니 밖은 벌써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저 어둠처럼 답답할지라도 배우고 익히면 찬란한 아침을 맞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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