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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임금과 훈민정음
세종임금과 훈민정음 ⓒ MBC
훈민정음 28자가 완성되던 1444년 겨울, 성군(聖君)이자 조선 최고의 언어학자인 세종임금과 당대 최고의 두뇌집단인 집현전 학자들이 글자 창제의 찬반을 둘러싸고 날카로운 논쟁을 벌인다.

이것은 드라마의 한 장면이 아니다. MBC-TV가 한글날 특집 다큐멘터리로 8일 밤 방영하는 <한글, 위대한 문자의 탄생>의 내용 중 일부이다.

오는 9일 한글 탄생 557돌을 앞두고도, 다른 언론들이 한글에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고 있는 가운데 MBC는 3년 동안 꾸준히 준비한 프로그램을 방영한다. 한글의 우수성을 좀더 과학적으로 좀더 재미있게 시청자들에게 풀어주려는 노력이다.

MBC는 방송 3사 중 유일하게 매년 한글날마다 특집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오고 있다. 2001년의 제 1편 '한글, 라후 마을로 가다'을 시작으로 2002년에는 제 2편 '한글, 세계를 달린다'를 방영했으며, 올해는 제 3편으로 '한글, 위대한 문자의 탄생'(프로듀서 : 최재혁 아나운서)을 준비한다.

이 시간을 통해 인류가 만든 문자 중 만든 사람과 만든 날, 그리고 만든 동기와 원리가 밝혀진 유일한 글자가 바로 한글임을 다시 인식하고, 인류 역사상 유일무이한 글자의 탄생일인 한글날을 기념하려는 의도이다.

올해의 한글날 특집 다큐멘터리는 한글에 대한 새로운 조명과 해석을 할뿐 아니라, 신선하고 색다른 연출로 시청자들과 만나게 된다. 즉, 기존 다큐에서 보아온 설명식 진행에서 벗어나 대하사극 수준의 재연, 그리고 수묵화와 최첨단 컴퓨터 그래픽이 결합된 세련된 3차원 입체 화면을 사용했다. 이를 통해 한글 창제 배경과 제자원리 등에 관한 기존의 역사적 사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게 된다.

한글의 제자원리인 사람의 구강구조
한글의 제자원리인 사람의 구강구조 ⓒ MBC
그리고 이 프로그램은 2004년 '방송 필름 페스티벌'을 겨냥해 제작되어 영상과 내용면에서 모두 고품격을 지향했다. 한글에 관한 국내 최고의 정통 다큐멘터리 제작이라는 사명감을 갖고, 국내외 많은 학자들의 고증과 자문을 거쳐 구성에서부터 영상에 이르기까지 치밀하게 준비했다고 한다.

새롭게 조명되어야 할 세종의 인본주의와 제자원리

1444년 어느 날, 조선 왕실에서 왕과 신하 사이에 벌어진 글자 창제의 찬반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을 재현한다. 왜 세종이 한글을 만들게 되었을까?

당시 조선의 글자는 '한자'였다. 그러나 이는 양반에만 해당될 뿐, 대부분의 백성들은 한자를 읽거나 쓰기도 어려웠다. 이 때문에 글자를 몰라서 억울한 옥살이나 죽임을 당하는 백성들이 많았고, 교육을 받지 못한 백성들은 도덕적 혼란을 일으켜 패륜 범죄 등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리고 한자를 사용하는 지배층 사이에서도 같은 한자를 두고서 서로 다르게 발음하는 경우가 많아 외교문서나 공문서 작성에 상당한 혼란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이런 조선의 사회상과 백성의 고통을 재현해보고, 한글 창제만큼 역사적 의미가 큰 조선 최초 한자어 교본 <동국정운>을 소개하면서 세종임금의 백성을 위하는 인본주의(人本主義)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으로 우리는 겨레문화의 기본정신인 ‘더불어 살기’를 실천한 세종의 사상을 분명하게 확인한다.

그 인본주의에 바탕한 훈민정음의 창제는 어떤 원리에 의하여 만들어졌을까? 여기서는 한 마디로 “과학과 철학의 만남”으로 표현한다.

세종이 글자를 창제하게 된 동기와 원리 등이 담긴 <해례본>이 발견되자, 한글은 세계 언어 사상 유래가 없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문자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뜬 자음의 제자원리와 하늘·땅·사람의 천지인 사상을 담은 모음을 만든 원리, 그리고 문자 역사상 유일하게 만든 원리와 동기가 담겨져 있는 한글의 신비 속으로 들어가 본다.

한글 자모 몇 개를 가지고 한글의 조합원리를 외국인에게 설명하는 장면
한글 자모 몇 개를 가지고 한글의 조합원리를 외국인에게 설명하는 장면 ⓒ MBC
글자연구를 위해 조선시대의 해부학이 동원되었는데, X-ray가 없던 당시에도 조선의 인체도는 현재 해부학의 수준을 능가할 정도이다.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떠 만든 자음의 제자원리를 현대 과학을 통해 완벽하게 재현한다.

언어 사용자수면에서 세계 13위인 한국어. 하지만 인터넷 시대의 디지털 활자로 치자면 한국어는 영어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할 정도로 그 생명력이 강하다. 표현력에 있어서도 한글은 모두 8800여 개로 중국어 400여 개나 일본어 300여 개에 비해 무려 20배가 넘는데, 세계 언어학자들은 이런 한글의 무한한 능력에 대해 감탄을 아끼지 않는다.

한글의 형태 또한 직선, 사선, 동그라미 등 기하학의 기본 도형을 응용한 것으로 현대 디자인의 지침서로 꼽힐만하다. 시각디자인, 수학, 자연과학, 출판인쇄 등 색다른 시각으로 한글의 과학성과 편리함을 재현한다. 또한 핸드폰, 속기용 자판, 한글 인터넷 주소 등 디지털 시대에 만능어로 각광받는 한글의 다양한 변신도 만나본다.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은 백성의 눈과 귀를 뜨게 했고, 조선 문예부흥의 주역이 되었다. 이 덕택에 6백 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문맹률이 낮은 나라가 되었다.

유네스코는 세종대왕의 백성을 사랑하는 정신을 살려, 1990년부터 세계 각국에서 문맹 퇴치에 앞장선 개인과 단체에게 세종대왕 문맹퇴치상을 수여하고 있다. 올해 세종대왕상 수여 단체인 가나의 시민운동단체 International Reflect Circle,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템발레투 교육센터(Tembaletu Education Center) 등의 수상 장면과 활동 모습을 현지 취재해 보여준다.

특별한 제작, 특별한 진행자

프로그램 진행자 로스킹 교수
프로그램 진행자 로스킹 교수 ⓒ MBC
이 프로그램은 프로듀서와 진행자가 별스럽다. 프로듀서는 전문 PD가 아닌 아나운서가 맡았으며, 진행을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 한다는 점이 특별하다. 왜 제작진은 외국인 로스 킹 교수를 내세웠으며, 그는 누구일까?

진행자 로스 킹(Ross King) 교수는 현재 캐나다 브리티시 콜럼비아대학(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데 그가 구사하는 유창한 한국어는 프로그램을 이끌어 가는데 전혀 손색이 없다고 한다. 오히려 한글을 모국어로 쓰는 우리 한국인들이 한글이 새롭게 느낄 수 있도록 인도할 정도라는 전언이다.

미국 태생인 그는 예일대 2학년 때인 1980년에 우연히 한국어에 접했다가 그 매력에 빠져 23년째 한국어를 연구하며, 가르치고 있다. 지난해에는 고려대 연구 교수로 1년 동안 국내에 머물기도 했으며, 한국인 부인과 11살짜리 아들을 두었다. 막걸리와 된장찌개를 좋아하고, 한국 코믹 영화를 좋아해 현재 머물고 있는 캐나다에서도 구해서 볼 정도로 한국영화에 심취해 있기도 하다.

얼마 전, MBC '심야스페셜'을 통해 미국 미네소타주에 위치한 콘코디아 언어마을(Concordia Language Village)의 한국어 마을인 '숲 속의 호수'의 촌장으로 소개된 바 있다.

로스 킹 교수는 말한다.

"한국어가 단순히 한반도의 민족어에 머물지 않고, 세계어로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외국인들도 쉽게 한국어를 배우고, 가르칠 수 있는 국제 표준어로서의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의 많은 언어학자들이 한국어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와 교육이 절실하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여 그래픽 디자인한 작품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여 그래픽 디자인한 작품 ⓒ MBC
언어학자인 그는 한국의 말과 글에 대해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매우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면서도 배우기가 쉬운 것이 한국어의 장점"이라고 말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한국어를 외국인들에게 알리고, 보급하는 데에 누구보다 적극적이다.

제작진은 로스 킹 교수에게 "한국인도 아니면서 왜 이토록 한국어에 빠져 사느냐"라고 질문했다고 한다. 이에 그는 "운명인 것 같다"는 짧은 한 마디로 대답했다는데 20여 년 전 당시 대학생이었던 로스 킹 교수의 삶을 바꾸어놓은 한국의 말과 글, 이 시간에는 사뭇 진지하고도 명쾌한 '로스 킹의 한글 이야기'가 소개된다.

진행자 말고 특별히 눈길을 끄는 프로듀서 최재혁 아나운서는 프로그램 제작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1년의 제 1편 ‘한글, 라후 마을로 가다’와 2002년에는 제 2편 ‘한글, 세계를 달린다’를 제작, 방영해 호평을 받았다. 그는 이 프로그램의 제작동기를 이렇게 말한다.

“일본 NHK방송 아나운서들이 1986년부터 해온 ‘아나운서가 사회적인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운동 즉 특히 일본어와 관련한 연구, 교육, 방송, 교재제작, 다큐제작 등에 열의를 갖고 일하는 것을 보고 큰 자극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타 영역에의 월권이나 침범이 아니라 협업을 통해서 전문성을 살려준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의 방법을 고민하다가 위대한 한글을 새롭게 조명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이 프로그램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세종임금이 옥사를 방문하여 억울한 죄수의 호소를 듣는 장면을 보면서 세종임금의 인본주의에 새삼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제자원리의 과학성이 뛰어나지만 저는 이 훈민정음을 만든 세종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세종의 인본주의야말로 이 시대 공직자들에게도 귀감이 될 것입니다.”

백성을 사랑한 세종임금의 동상, 동상 앞에 젊은이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백성을 사랑한 세종임금의 동상, 동상 앞에 젊은이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 김영조
세계의 저명한 언어학자들은 한글에 대해 "지구상에서 사용되는 문자 중 가장 과학적인 문자 체계"(REISCHAUER 1960 p.435) 혹은 "세계 최상의 알파벳"(VOS 1964 P.31)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이번 한글날 특집 다큐 <한글, 위대한 문자의 탄생>은 바로 이처럼 세계 석학들이 놀라워하는 한글의 위대함을 담고자 했다는 제작진의 설명이다. 그리고 그동안 다소 소홀히 취급했던 한글의 그래픽적인 아름다움과 함께 색다른 시각으로 한글의 과학성과 편리함을 조명한다고 한다. 특히 글자 연구를 위해 응용되었던 놀라운 조선시대 해부학 수준과 한글에 담긴 동양 철학적 의미는 수묵 3D와 사극 수준의 재연 화면을 사용해 시청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려 노력했다는 귀띔이다.

우리가 너무 편리하게 쓰는 한글. 그러나 정작 한글의 진정한 위대함을 우리는 너무 모르고 있다. <한글, 위대한 문자의 탄생>를 통해 왜 한글이 인류의 위대한 지적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 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시청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는 이야기다.

지금 우리나라의 말글생활은 처참할 지경이라는 것이 언어학자들이나 한글운동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방송인들조차 무분별한 외래어나 일본말 찌꺼기를 쓰고, 박원홍 의원 등이 국회에 ‘한자교육진흥법안’을 발의할 정도로 한자에 대한 끈을 놓지 않으려는 일부 사람들의 구태도 여전하다.

세계 언어학자들이 최고의 글자로 대접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우리의 한글에 정작 주인인 우리들은 푸대접을 하고 있다. 심지어 전통문화를 소개하는 책들마저도 한자어나 외래어의 남용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며 개탄하지 않을 수 없을 지경이다. 아직도 한글날이 국경일이 되지 못하는 이 때에 이 프로그램의 방영은 실로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이 프로그램은 10월 8일(수) 밤(10월 9일 0시 05분 ~ 01시 05분) MBC-TV를 통해 방영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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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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