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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 오전 청와대 대정원에서 '한국 문해의 해 기념 한글날 글쓰기 대회'가 열렸다
ⓒ 김진석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해 반포한 지 557돌이 되는 한글날. '한국 문해의 해 기념 한글날 글쓰기 대회' 가 청와대 대정원에서 전국 문해·성인 기초교육협의회 주체로 개최됐다.

전국 문해·성인 기초교육협의회는 전국 12개 문해교육단체가 모여 문해 및 성인기초 교육 수준 향상과 사회적 지원체계 마련을 위해 99년 결성돼 빈곤, 전쟁 등 사회적 상황 때문에 배움의 기회를 잃어버린 어른들에게 '문해'(문자해독, 문화이해, 문화해방) 교육을 전개하고 있다.

이날 행사엔 전국 문해교육단체에서 뒤늦게 한글을 배우고 있는 어머니 354명이 참여해 배움을 통해 얻은 것과 달라진 삶에 대한 느낌을 글로 표현했다.

이 자리에 함께한 박주현 청와대 국민참여수석은 “시대, 전쟁, 가난, 남존여비 등으로 못 배운 어르신들이 이젠 자신에게 투자해 글을 통해 새로운 삶에 도전하기 바란다”고 격려했다.

민간 행사에 처음 개방한 청와대 대정원

청와대의 대정원이 최초로 민간인 행사에 개방됐다. 대정원은 대통령 집무실 바로 앞 마당으로 그간 VIP들의 기자 회견 및 정상 회담, 만찬 등으로만 이용되어 왔다. 대정원 개방에 대해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그들의 주장을 인정하고 의미있는 행사라고 판단했기에 개방 한 것" 이라고 개방 이유를 간략히 설명했다.

"탈권위적인 청와대와 열린 정부의 모습 실현", "문화 진흥과 소외 계층에 대한 관심 표명" 으로 개방 연유를 요약한 청와대 관계자는 "앞으로도 의미있는 행사라면 열린 참여 정부를 위해 계속 개방할 것 " 이라고 덧붙였다. / 김은성
그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만날 수 없는 비문해자 시민들과 직접 만나 그들의 소리를 듣는 국민참여의 일환으로 청와대 대정원을 최초로 공개했다” 며 “마음 놓고 배울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고 말을 이었다. 이어 박주현 수석은 “비문해자들을 위한 18억8천만 원의 예산 확보와 평생 교육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며 “오늘 행사가 어머니들에게 그간의 한을 풀어 줄 수 있는 ‘굿’ 이 되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박주현 수석에 이어 안양 시민대학 학생회장 이금순(65)씨의 소감 발표가 이어졌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시골에서 자라 학생들만 보면 눈물이 났다는 이씨는 그 눈물이 60이 넘어서도 그치지 않았다며 배움에 대한 한을 토로했다.

한글을 뒤늦게 배우자 가슴의 한이 풀려 심장병도 점차 나아지고 있다는 이씨는 “내가 얼마나 하고 싶었던 공부인데…”하고 끝내는 눈물을 보이며 그간의 복받치는 설움을 표출했다. 이어 그는 “일본에선 정부가 기초 교육을 못 배운 성인을 위해 학교와 교사는 물론 간식과 차비를 지원해 준다” 며 “간식과 차비는 필요 없으니 정부가 학교와 선생님을 지원해 주길 바란다”고 간곡히 청원했다.

▲ 옆 친구와 상의하며 진지하게 글짓기를 하고 있는 어머니들
ⓒ 김진석
▲ '"이제 그만 쓸까?" 부천춘의성인배움터의 한 어머니는 마감 시간 안에 글을 못 쓸까 염려하며 부지런히 글을 쓰고 있다.
ⓒ 김진석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청와대 방문에 어머니들은 설렘을 감추지 못하며 시종 일관 웃음꽃을 피웠다. 정성스레 깎은 연필을 꼭 쥔 채 힘주어 눌러 쓴 어머니들의 글엔 그간의 삶이 응어리져 있었다.

“세상에 다시 태어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히는 손계화(64)씨는 “엄마, 나 이제야 한글을 알았어”라는 글을 썼다. 손씨는 “딸까지 봉사로 만들었다고 미안해하며 손잡고 우는 어머니의 한을 풀어주고 싶다”며 “배움의 기쁨을 알려주신 자원봉사자 선생님들에게도 꼭 은혜를 갚고 싶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공부를 하다 보니 청와대도 오고 기자님도 만나고 내 생에 이런 날도 있네요!”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 부순자(60)씨는 “그간 사는 건 인간처럼 사는 게 아니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부씨는 “얼마 전 글을 배워 은행에서 직접 돈을 입금했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며 “나랏님! 우리 같은 사람들 한글 좀 배울 수 있게 도와주세요!”라고 힘주어 당부했다.

성인 비문해율 25%…이는 사회구조적 문제

지난해 말 한국교육개발원이 우리나라 성인 남녀 30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비문해 실태 조사 결과 25.2% 가 비문해자로 나타났다. ‘비문해’란 글과 셈하기를 전혀 모르는 것을 포함해 글을 알더라도 이해하지 못해 생활에 불편을 겪는 상황을 말한다.

한국교육개발원의 정리에 따르면 비문해자는 성별로 여성이 많으며, 연령별로 60대 이후에 많이 분포돼 있고, 저학력층, 저소득자, 지방 도시에 주로 밀집되어 있는 것으로 나왔다.

▲ '글을 모르는 설움을 누가 이해할까?' 행사 전 동료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
ⓒ 김진석
이러한 비문해자들은 1980년 초등학교 진학률이 100%를 넘기 전 세대로서 경제 발전의 그늘에 가려 학교가 아닌 일터로 내몰렸던 세대가 대부분이다. 또한 해방과 전쟁 등의 역사적 사건을 겪은 세대로 교육 기회의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에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정리되어 있다.

또, 한국교육개발원은 그들이 여전히 교육 기회, 경제 , 인식의 불평등에 가려져 있다며 분석 결과 우리나라 비문해자는 사회구조적인 결과로 만들어진 사람들임을 확인해 준다고 설명했다.

전국 문해·성인기초교육협의회 대표 만희(40)씨는 "삶의 격차는 결국 교육의 격차에서 생겨 나는 것 아닌가?" 라며 "교육의 평등이야말로 사회 정의 평등 실현의 출발이 되는 것이다" 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문해 교육이 단순한 사업이나 일시적인 프로젝트로 그쳐서는 안 된다" 며 "정부는 의무와 책임을 가지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실천하는 '십계년 계획' 과 꾸준한 지원 등을 펼쳐야 할 것" 이라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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