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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김조년 교수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김조년 교수 ⓒ 김경아
"한 달에 두 번 도시 전체 불을 꺼보자. 그리고 오로지 달과 별에 의지해보자”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김조년 교수(57)는 한 일간지 기고문에 이와 같이 엉뚱하고도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물론 김 교수도 이 제안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안다. 다만, 자연과 하나 될 수 있는 기회를 저버리고 사는 현대인들의 정서적 메마름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전기불이 모두 꺼진 밤을 한번 상상해보세요. ‘세상이 온통 칠흑 같은 어둠으로 변하지는 않을까’ 두려움부터 앞섭니까? 달빛 하나에 의지하며 책을 읽던 옛 조상들을 생각해보십시오. 한번 쯤 어둠이 짙게 깔리고 달빛과 별빛만이 은은히 내리 비치는 자연과 우리만이 존재하는 시간을 누려보는 건 어떨까요?”

실현 불가능한 일은 없다. 김 교수는 도시 전체가 전부 불을 끌 수 없는 현실이라면, 한달에 두 번 보름달과 그믐달이 밤하늘을 장식 할 즈음 달과 별만이 빛을 내는 최대한 자연에 가까운 곳으로 떠나는 모임-‘보름달맞이’를 시작하기로 했다.

이 모임이 이루어진지도 여러 해. 수능시험을 며칠 앞둔 아이가 아버지와 함께 길을 나서기도 하고, 가족들이 오순도순 모두 참석하기도 하고, ‘지나간 시간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다’고 김 교수는 회상했다.

“전등 불빛이 없는 곳을 찾다보니, 주로 산을 찾게 되죠. 어둑해질 무렵 출발해서 산에 도착하면 달과 별이 고요하게 저희 일행을 반깁니다. 길 따라 강 따라 밤공기를 마시며 걷고, 달과 별과 대화하는 시간에는 모든 잡념이 사라지죠. 자연이 나인지, 내가 자연인지 분별할 수 없는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른다고나 할까요?”

우편으로 배달되고 있는 ‘표지박통신’
우편으로 배달되고 있는 ‘표지박통신’ ⓒ 김경아
‘보름달맞이’ 모임 날짜는 요란하지 않게 학교 게시판에 공고 하거나 ‘표주박통신’을 통해 지인들에게 알린다. ‘표주박통신’ 은 김 교수가 사랑하는 벗(제자, 친구, 친지, 사회활동을 함께 한 사람) 에게 보내는 한 두통의 편지에서 출발해 1987년 작은 잡지로 발행되었다. 두 달에 한번 1,700여 명의 사람들에게 배달되는 글은 김 교수의 생각을 담거나 지인들에게서 온 소식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김 교수 연구실을 가득 메우고 있는 책들
김 교수 연구실을 가득 메우고 있는 책들 ⓒ 김경아
옛날 우리 생활에 가장 가까이 있었고 요긴한 물건이었던 바가지, 맑은 물을 떠서 마시고 나누어 주는 표주박의 의미를 담고 있는 ‘표주박통신’은 한 동이 깨끗한 물이 더러운 물을 맑힐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해 최근 76호째 뜻을 전하고 있다.

글을 통해 교감하던 이들이 가끔은 ‘표주박 어우리’라는 이름으로 초등학생부터 80이 넘는 노인까지 MT를 가지만 전혀 어색함이 없고 자연스런 분위기가 매번 연출된다. 이는 위계 체제를 거부하고 모두 하나라는 김 교수의 모임 공식이 적용되어 나오는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강단에 선 지 언 20년의 세월이 흐른 김 교수. 그가 학생들에게 변함없이 강조하는 것은 ‘책읽기’다. 관여하는 여러 개의 모임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애착을 갖고 정성을 쏟는 모임 역시 ‘좋은날에 만나야 할 사람, 생각, 책’이다.

“이는 독서 모임이죠. 학교 내 학생을 핵심으로 매주 2시간 이상 씩 모여 책을 읽고, 분석하고, 정리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졸업할 때가 되면 100권 이상 책을 습득, 진정한 학자의 면모를 갖추게 되죠. 학창 시절에는 혹독한 책읽기 훈련에 힘들어하던 졸업생이 어엿한 사회인으로 다시 만나게 되면 ‘후배들에게는 더 철저히 해주세요!’하고 말하곤 하는데 책이 여러모로 사회생활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겠죠.”

제대 후 인사 차 방문한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제대 후 인사 차 방문한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 김경아
중·고등학교의 주입식 교육이 몸에 배어 있는 학생들에게 창의력과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주고 싶은 김 교수는 ‘참여하는 강의’를 하고 있다. “첫째, 숙제를 많이 내고 둘째, 매주 시험을 치르고, 셋째 발표를 많이 시킵니다. 편한 학교생활을 원하는 학생들에게는 지옥과 같은 수업이 될 수도 있겠지만 자기 언어를 통해서 생각의 틀을 깨는 방법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이죠”하고 말하는 그는 강의시간 외에는 친구처럼, 때론 선배처럼 편안한 교수로 학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도리어 자신에게 싱싱함, 젊음 넘치는 에너지를 주는 학생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김 교수는 지금도 ‘어떻게 하면 좋은 선생님이 될까?’고민을 안고 사는 이 시대의 진정한 학자이며, 그의 곁에는 늘 자연그대로의 사람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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