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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우리 집 큰 아들 아딧줄이 공주에 있는 H고등학교 수시, 면접시험을 보기 위해 1박2일로 다녀왔다. 나는 승용차 운전을 하고 아내는 조수석에 앉아 책을 본다. 그리고 뒷좌석에 앉아있는 아딧줄은 계속 잠만 잔다. 아내와 아딧줄과 함께 하는 여행은 오랜만이다. 나는 운전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특히 아딧줄의 장래에 대해서….

토막토막 아딧줄에 얽힌 이야기의 단편들이 생각난다. 아내와 나는 남들보다 조금 늦게 결혼한 편이었다. 아내가 결혼하자마자 임신을 했는데, 유산하고 말았다. 신혼 초 아내의 몸은 많이 약해 있었다. 강원도 정선에서 첫 목회가 시작되었다. 1년 2년이 지나도 아이 소식이 없었다. 3년 만에 임신을 했다. 다행히 아내의 건강상태가 결혼 전보다 많이 좋아졌다.

출산 예정일이 가까워오자 아내는 서울로 올라갔고 나는 정선에 남아있었다. 초조했다. 드디어 10월 20일, 뒷집 연숙이네 집으로 전화 연락이 왔다. 아내가 사내놈을 낳았다는 것이다. 너무 기쁘고 좋아서 장강(長江)에 나가 ‘하느님 고맙습니다’ 하고 기도도 하고 손을 번쩍 들고 만세를 부르기도 했다. 누가 봤으면 미친 줄 알았을 것이다.

아딧줄은 태어날 때부터 건강했다. 주는 대로 잘 먹었다. 아딧줄이 태어나면서 집안 분위기가 달라졌다. 한번은 동네 아이들이 찾아와서 “전도사님요, 오늘 저녁 밤 낚시하러 가요!” 하고 떼를 써서 처음으로 밤낚시를 가게 되었다. 아딧줄 돌을 며칠 앞둔 날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밤낚시를 하는데 그날따라 입질도 안하고 영 고기가 잡히지 않는 것이었다. 고기가 잡히지 않으니 아이들은 떠들기만 하고 먹는 타령만 한다. 애들이 하도 먹는 타령을 해서 하는 수 없이 밤참으로 라면을 끓여먹고 있는데 그때 입질이 왔다. 릴낚싯대 끝에 메달아 놓은 방울이 달랑거리는 것이었다.

ⓒ 느릿느릿 박철
방금 먹고 있던 라면 그릇을 집어 던지고 달려가서 낚싯대를 재꼈는데 꿈쩍하지 않았다. 속으로 생각하길 ‘빠가사리’란 놈이 미끼를 물고 바위 속으로 숨었나보다 생각했다. 그러면 낚싯줄을 칼로 잘라야 한다. 그런데 조금 미동이 느껴진다. 움직임으로 보아 큰 물고기였다. 그렇게 얼마동안 낚싯대와 씨름을 하고 있었는데 훤한 달빛에 양은 솥단지 같은 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나중에 모래바닥으로 끌어 올리고 보니 메기였다. 그렇게 큰메기는 처음 보았다. 다음날 아침, 우리 동네에 단골로 민물고기를 사러오는 분에게 메기를 보여주었더니 이 사람 한다는 말이 ‘이렇게 큰메기는 자기도 처음 본다’면서 5만원에 팔라고 한다. 안 팔았다. 대신 메기를 잘 손질한 다음 배에 찹쌀과 인삼을 넣고 고아서 아딧줄을 먹였다.

돌도 안 지난 아딧줄이 숟갈로 떠주는 대로 먹는데 얼마나 귀엽고 예쁘던지…. 강원도 정선에서 경기도 화성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도 나는 어디든지 아딧줄을 데리고 다녔다. 그 때 내가 영화를 무척 좋아했었는데 아딧줄을 데리고 다녔다. 두 살 터울로 넝쿨이가 태어났다.

오토바이 연료통에 아딧줄을 올려놓고 기저귀로 아딧줄을 내 허리에 묶고 남양에서 수원까지 영화 보러 갔었다. 신기한 건 아딧줄이 가만히 앉아서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속으로 ‘이 녀석이 내용을 알고 보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수원 남문시장에 가서 순대국밥을 사 먹었다.

아딧줄은, 6살부터 동네 초등학교에 붙어있는 활초 병설유치원을 2년 동안 다녔다. 편도 5km 쯤 되는 거리를 걸어 다녔다. 학원에서 돈을 받고 운행하는 승합차가 있었는데 아딧줄은 걸어 다녔다. 아딧줄은 걸어 다니는 걸 좋아했다. 초등학교 1학년 겨울 어느 날, 눈이 30센티미터도 더 온 적이 있었다. 심한 바람과 눈발이 그치질 않는다. 아무래도 학교가기가 어려울 것 같아 오늘 학교 가지 말고 집에서 놀라고 했더니 엉엉 울면서 학교를 가겠다고 떼를 쓴다. 그래서 그러면 가라고 했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는 것이었다.

ⓒ 느릿느릿 박철
며칠 지난 다음에 1학년 담임선생님을 길에서 만났는데 2교시 중간에 아딧줄이 온 몸에 눈을 뒤집어쓰고 교실로 들어오더라는 것이다. 나중에는 넝쿨이가 유치원에 입학하면서 같이 다녔는데 역시 걸어 다녔다. 교회에서 승합차를 샀는데 거의 태워다 준 적이 없었다. 우리 동네에 아이들이 제법 많았는데 걸어 다니는 애는 아딧줄과 넝쿨이 둘 뿐이었다.

이 녀석들은 큰 신작로를 다니면 큰 차들이 많이 다녀 위험하다고 산길로 학교를 다녔다. 가끔 아내와 나는 애들이 다니는 산길로 애들을 맞으러 나갔다. 둘이서 손을 잡고 오는 모습을 먼발치서 보면 참 대견스러웠다. 아딧줄은 아내와 나를 보면 100미터 달리기 선수처럼 달려와 품에 안겼다. 이랬던 꼬마 아딧줄이 얼굴에는 여드름이 덕지덕지 붙어있고, 고등학교에 진학을 한다고 수시 면접시험을 보러 같이 가게 된 것이다.

H학교에서는 면접시험에 꼭 부모님을 대동하란다. 면접이 시작되었다. 면접관은 한 분이었다. 질문은 대학 면접수준이었다. 아딧줄이 농촌지역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묻기를, "지난 번 이경해씨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경의선이 완공되면 우리나라에 어떤 이점이 있겠는가?" "이 학교에 와서 어떤 식으로 공부할 것인가" 등등 이었다. 아딧줄은 바짝 긴장해서 개미목소리로 대답한다. 영락없는 촌놈이다.

면접관은 '우리 아딧줄이 얼마나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고 자기 주관이 뚜렷한가?'는 모를 것이다. 인재를 뽑는다면서 정말 필요한 것은 묻지 않는다. 면접을 마치고 나오자 아딧줄은 차 안에서 펑펑 운다. 실력 발휘를 못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나는 그런 아딧줄을 보면서 마음이 짠해진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아딧줄의 현재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아딧줄은 한번도 시골을 떠난 적이 없었다. 농촌에서 자란 것이 무슨 잘못인가?

아딧줄이 아직은 내 키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발 크기는 같다. 같은 크기의 운동화와 양말을 신는다. 덩치는 크지만 마음이 여리다. 아직 어린애다. 한번도 뭘 사달라고 떼를 써본 적이 없었고 한번도 잘못을 저질러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이 없었다.

ⓒ 느릿느릿 박철
아딧줄이 중학교 입학을 며칠 앞두고, 친구 목사를 따라 용산전자 상가에 갔다가 신용카드를 빌려 펜티엄 컴퓨터를 사 준적이 있었다. 나는 아딧줄이 좋아서 펄쩍펄쩍 뛸 줄 알았다. 그런데 별로 좋아하는 눈치가 아니다. 자기 엄마가 무슨 돈이 있어서 컴퓨터를 샀냐고 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 이상하게 잠이 안 왔다. 아내가 '왜, 안 자냐?'고 묻는다. 그때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이 무슨 돈으로 컴퓨터를 샀냐고 걱정하지만, 나는 우리 아딧줄이 그렇게 갖고 싶어 하는 컴퓨터를 사 주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처음으로 아비노릇 한 기분이 들었다고, 아딧줄이 돈 걱정하는 엄마 때문에 자기 마음을 숨기고 있는 것이 마음 아프다고, 앞으로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때 그 말을 아내가 기억하고 있을까?

돌아오는 길, 창가에 낯익은 시골 풍경이 지나간다. 충청도에서도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산비탈에 가을 햇살이 따사롭더니 산모롱이를 지나자 이내 산 그림자가 비친다. 감나무에 감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추수가 끝난 빈 들판이 썰렁하다.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아딧줄의 장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아무것도 장담할 것이 없다.

나는 아버지로서 아딧줄에게 해준 것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딧줄의 장래를 제도권 교육에 의존하고 맡길 수밖에 없는 현실이 부담스럽다. 막연한 생각이지만, 아딧줄은 좀 더 넓은 세상으로 보내고 싶다. 어차피 자신의 인생은 자기가 선택해야 되는 것, 좀 더 일찍 그 경험을 터득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딧줄은 차 뒷좌석에서 긴장이 풀렸는지 코를 골면서 자고 있다. 아딧줄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그게 궁금하다. 아딧줄이 애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든지, 나는 아딧줄을 사랑한다. 그게 솔직한 내 마음이다.

사랑한다. 내 아들 아딧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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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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