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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걔들이' 남자들을 어떻게 미워하는지, '걔들이' 본성 그리고 신에 대해 어떤 식으로 어깃장을 놓고자 하는지, '걔들이' 어떻게 하나같이 레즈비언인지, '걔들이' 어떻게 다들 직장을 잡아가지고는 백인 남자들의 밥그릇을 빼앗아 세상 살기 힘들게 만들어 놓았는지."

급진적 흑인 페미니스트 벨 훅스는 페미니즘에 대한 편견들을 위와 같이 옮긴다. 아직까지도 적지않은 사람들이 페미니즘을 '털많고 못생긴 여자들의 악다구니, 남자처럼 되고싶어 날뛰는 성난 여자들 패거리'쯤으로 떠올린다. 훅스는 그러한 선입관이 "몇번씩이나 돌고 돌아서 그들에게로 온 공포감과 환상"이라고 지적하면서, "조금만 더 가까이 가보면 페미니즘이 그동안 상상해왔던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될 것"이라고 말한다. 훅스는 그들에게 페미니즘에 대한 직설적이고 명쾌한 책을 들려주기 위해 <행복한 페미니즘>(백년글사랑, 2002)을 썼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단언한다.

"더 가까이 오라. 그러면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 페미니즘은 우리 모두에게 좋은 것임을."

진정한 페미니즘, 모든 성차별주의와 폭력에 반대

ⓒ 백년글사랑
벨 훅스는 페미니즘이란 '성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종식시키는 운동'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이 명제가 남성을 적으로 상정하고 있지 않고, 동시에 그 행위자가 누구든간에 모든 성차별주의적 사고와 행동을 문제의 핵심으로 보기 때문에 마음에 든다고 말한다.

훅스가 이 책에서 비판하는 것은 크게 두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성차별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개혁주의 페미니즘이다. 그는 성차별주의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까지도 억압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여자는 예쁘고 목소리가 작아야 하며 정숙해야 한다'는 따위의 고정관념은 남자에게도 존재한다. 약골에다 목소리도 작은 많은 남성들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부정하고 '사내다워지도록' 훈련받는다. 성차별주의가 강조하는 모성본능은 여자에게는 어머니될 것을 강요하고 남자에게는 양육자로서의 권리를 박탈하도록 하는 양날의 칼이다.

훅스의 또 다른 화살이 향하고 있는 쪽은 페미니즘 내부이다. 그는 "한번도 대중적 페미니즘 투쟁에 정치적으로 투신한 적이 없으면서 페미니즘이 자신의 계급 이동을 추동할 때는 페미니즘의 자리와 수사학을 채택하는 여자들을 가리켜 기회주의자"들이라고 비난한다.

아프리카의 여성할례를 미국의 성차별주의보다 더 야만적이고 미개하다고 떠드는 서구 여성들에게는 '신식민주의적 온정주의'라는 이름표를 달아준다. 이러한 일단의 움직임들을 "계급권력을 가진 개별 페미니스트 여성들이 여성에 대한 제국주의적 환타지를 지구적으로 투사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에도 망설임이 없다.

가까이, 더 가까이 와서 보라

벨 훅스의 <행복한 페미니즘>은 19장에 걸쳐 페미니즘에서 논의되는 많은 이슈들을 짚어간다. 훅스는 특유의 분명한 어조로 여성의 몸과 아름다움에서부터 페미니스트 남성성과 영성(靈性)까지 차례차례 훑어나간다. 이 많은 내용을 한권에 담기란 쉽지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설명이 부족하거나 논의가 채 마무리되지 않은 부분들이 눈에 띄는 것이 사실이다. 번역상의 오류도 더러 발견되고.

급진적 흑인 페미니스트 벨 훅스

인종·젠더·계급·문화의 정치학에 관하여 수십 권의 비평서를 집필한 작가이자 흑인 페미니스트 사상가. 지은 책으로 <나는 여자가 아닙니까: 흑인 여성과 페미니즘(Ain't I a Woman: Black Women and Feminism)>이 있다. 이 책은 '퍼블리셔스 위클리'에서 선정한 지난 20년간 여성이 쓴 책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책에 꼽힌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을 둘러싼 전반적인 논쟁들을 이처럼 간략하고 개괄적으로 다룬 책이 드물다는 점에서 훅스의 작업은 적지않은 가치를 지닌다. 뿐만 아니라 <행복한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동시에 새로운 호기심을 부추긴다. 자유로운 결혼과 파트너쉽, 페미니스트 부모되기 등의 소주제는 실제 생활에서 페미니즘이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할 것이다.

특히 이 책은 'Feminism is For Everybody'라는 원제가 뚜렷이 보여주듯 페미니즘에 대한 가장 견고한 오해-페미니즘은 반남성적이다-를 조목조목 반박해낸다.

훅스는 이 책을 통해 페미니즘으로 더 가까이 다가오도록 손짓한다. '이 책은 페미니즘의 전부가 아니라 시작'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한번쯤 그 유혹에 넘어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법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페미니즘의 바다에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또한 유쾌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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