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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람들 앞에서 말하려는 이유는, 우리처럼 속으로 앓으며 자신의 진정한 이야기를 하지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혼자 울고 혼자 지우는 고통을 끝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동안 하지못해 가슴앓이 해야했던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울고 웃고 소리지르고 떨쳐내면서, 갑갑하게 쌓였던 앙금을 털어내보자는 것입니다. 진정 우리가 자유롭게 벗어나기 위해서 말입니다. - 생존자가 보내는 편지 중에서

흔히 '생존자'라고 하면 재난이나 사고에서 어렵게 살아남은 사람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생존자들은 다름아닌 성폭력 피해자를 말한다. 그러나 당사자인 그들은 정작 자신들을 '피해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일방적으로 피해를 당한 수동적이고 약한 존재로 머무르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피해를 극복하고 이겨내 살아남는다는 자부심과 희망을 담아 스스로에게 '생존자'라는 이름표를 스스로 달아주었다.

이들을 위한 '제1회 생존자 말하기 대회(일명 스피크아웃)'가 11월 22일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열릴 예정이다. 생존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으며 고통을 치유하는 스피크아웃은 이미 외국에서는 15년 전부터 정기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행사를 주최하는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은 "지난 13년간 상담소를 찾은 4만5천여 명 생존자들의 변화를 보면서 '말하기'가 치유의 시작임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스피크아웃을 통해 "생존자들은 말하는 힘을,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듣게 될 지지자들은 공감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대회는 '그림과 시로 하는 생존자의 말하기'와 '말과 노래, 연극으로 하는 생존자의 말하기'로 나뉘어 진행된다. 생존자와 지지자들을 위한 상담방 운영과 생존자들의 그림 및 벽보 전시, 생존자들의 릴레이식 생존기 발표회 등이 준비되어 있다.

또한 생존자들을 최대한 배려하기 위한 다양한 규칙들도 마련했다. 생존자는 무대에 오르기전 긴장을 풀 수 있는 공간에서 쉴 수 있으며 원하는 사람과 함께 무대에 오를 수 있다. 생존자 스스로가 자신의 경험이 공개되는 정도를 선택할 수 있고, 언제라도 이야기를 그만두어도 괜찮다. 사후 상담과 같은 지원도 받을 수 있다.

지지자들 역시 일정한 규칙을 지켜야 한다. 카메라와 전화기 등은 일체 반입할 수 없으며 생존자들의 경험을 공개해서는 안된다. 무대에 선 생존자들이 외면을 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으므로 자리를 뜨는 것도 삼가야 한다.

성폭력 상담소 권김현영씨는 "생존자들은 공감받고 지지받는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경험을 말할 수 있는 곳이 절실히 필요하다"며 이번 행사가 "생존자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조심스럽게 한발을 내딛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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