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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쇄원 전경, 야트막한 담장에 '소쇄처사양공지려'라는 글자가 소박하게 새겨져 있다.
ⓒ 김정은
소쇄원은 조광조의 문하생이였던 양산보의 별장이라고 볼 수 있다. 양산보는 원래 본관이 제주로, 스승인 조광조를 따라 한양으로 올라와 과거에 응시해 어찌어찌 합격의 영광을 얻었으나 당시 지나치게 합격자를 많이 뽑았다는 여론에 밀려 두 사람을 낙방시켰는데 재수없게 두사람중에 포함되어 탈락의 고배를 마신 지독히도 운 나쁜 사람이였다.

그런데 양산보의 관운은 이것으로 끝이었는지, 바로 그해 기묘사화가 일어나 스승인 조광조가 화순 능주로 유배를 가 결국 사약을 받고 죽자, 양산보는 세상의 덧없음을 깨달아 입신양명의 뜻을 꺾고 고향으로 돌아와 30대에 시작해서 40대가 될 때까지 10년간 온 정성을 다해 소쇄원을 지은 후 55세인 1557년에 죽을 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쇄원에는 양산보의 청정년시절의 한과 정성이 그대로 배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죽하면 후세에게 이 정원은 결코 남에게 팔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겠는가?

그러나 겉에서 바라본 소쇄원은 단순 소박의 극치였다. 이게 바로 조선조 민간 정원예술의 극치란 말인가? 하는 의문이 들만큼 그 흔한 대문 하나없이 대숲을 지나 개방된 이곳에 '소쇄처사양공지려'라 써진 야트막한 흙담장을 경계로 손님을 맞는 광풍각과 주인이 사는 제월당이 서있는 구조인데 그나마 계곡에 인접해 있는 광풍각은 얼마 전 내린 집중호우로 지붕 일부가 허물어져 내려 지붕 위에 천막을 씌워 두고 사람들의 출입을 금하고 있고 계곡과 일체를 이룬 기막힌 어울림을 볼 수 없어 아쉽다.

그러다 보니 워낙방 한칸에 마루 한칸이 달랑인 제월당만 보고 가기에는 좀 뭔가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제월당 마루에서 목판에 붙어있는 김인후가 지었다는 소쇄원 48영과 고경명이 쓴 한시들을 쳐다보면서 나의 생각이 단견이었음을 문득 깨닫게 되었다.

"등에는 무거운 청산을 지고
벽옥같은 시내로 머리를 돌렸네.
긴긴 세월 자리 잡혀 놀지 않으니
대각이 영주보다 오히려 낫네."
-소쇄원 48영중 부산오암(負山鼇巖) -

소쇄원을 보려면 저 멀리 무등산 자락부터 내려와야 한다는 말처럼 제월당 마루에 앉아있으니 등 뒤에는 도원명의 시에서 유래한 듯 보이는 '복사 동산'이 펼쳐져 있고 앞으로는 백옥같은 계곡물이 정원 안에 들어서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배산임수 형태이다.

한 이랑이 다 못되는 네모진 연못
그런대로 맑은 물은 모을만 하네.
고기떼가 인영을 놀리어 대니
낚시대를 드리울 마음 없어라.
-소쇄원 48영중 소당어영(小塘魚泳)-

맨 위쪽 흙돌담 밑으로 계곡물이 흘러 내려오는 곳에 위치한 오곡문이라는 수문이 있다. 주변 암반 위에서 계곡물이 갈 지(之)자 모양으로 다섯 번을 돌아 흘러 내려간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인데 이 수문을 만들기 위해 양산보가 제주에서 직접 장인을 초빙하여 쌓게 하는 등 온갖 정성을 기울인 곳이라고 한다. 얼핏 보기엔 허술해보이는 이 수문은 아무리 장마나 집중호우에도 끄덕없이 견고할 뿐 아니라 아무리 물이 많아도 연못의 중간을 넘지 않았다고 하니 어떤 과학적인 건축술이 숨어 있는지 갑자기 호기심이 일어났다.

▲ 가을 빛이 완연한 소쇄원의 담장.. 김인후는 이 아름다움을 파사한 빛이라고 표현했다.
ⓒ 김정은
가을 드니 산골짝 쓸쓸하여라
단풍잎 일찍이 서리를 놀랬네.
역력히 채색 너울 흔들어 대니
거울에 비치어라 파사(婆娑)한 그 빛.
-소쇄원 48영중 영학단풍(暎壑丹楓)-

계곡물에 비치는 단풍이 물든 가을 소쇄원의 전경을 김인후는 파사한 빛이라고 표현했는데 파사한지는 모르겠지만 단아한 아름다움이 건물 자체에서 뿜어져 나온다.

결코 화려하지 않은, 아니 화려하기는커녕 단촐해보이기까지 하는 이 건물이 단아하고 정갈해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자는 이를 가리켜 자연의 미라고 한단다.

"숲, 돌, 물을 자연에 가장 가까운 모습으로 되살려 내고 자연의 일부를 '사람이 필요한 만큼'만 최소한으로 손질했다는 점, 또한 자연을 가꾸되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물소리, 새소리를 듣고 꽃 향기를 맡으며 열매를 따 먹는 등 사람의 다섯 가지 감각을 골고루 느낄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는 점에서 소쇄원의 숨은 매력이 있다고..."

사진을 찍다보니 소쇄원을 너무나 사랑한다는 어떤 분이 다가와 이런 말을 한다.

"이 소쇄원은 얼핏 모두 자연스럽게 그대로 있던 자리에 놓여진 것같아도 그 나무 하나 돌 하나 하나 주인의 주도면밀한 계산 위에 짜여진 곳입니다. 이 외나무 다리 하나를 보더라도 물 속에 자신을 비추어 마음을 정돈하고 항상 정갈히 하라는 의미가 들어있답니다. 또한 이 계곡은 주자의 이상향인 무이구곡을 축소시킨 것이구요."

그러나 단아한 자연미의 백미 소쇄원도 끊임없이 모여드는 행락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행락객들로 소쇄원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라고 화장실 문 앞에 누군가 써붙인 쪽지 하나가 오늘의 소쇄원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것은 아닐른지.

그림자가 쉬고 있는 곳, 식영정

어떤 지날 손이 성산에 머물면서
서하당 식영정 주인아 내 말 듣소
인생 세간에 도흔 일 하건마는
어찌 한 강산을 가지록 나이 여겨
적막 산중에 들고 아니 나시는가
송근을 다시 쓸고 죽상에 자리 보아
적은 덧 올라 앉아 어떤고 다시 보니
천변에 떴는 구름 서석을 집을 삼아
나는 듯 드는 양이 주인과 어떠한고
창계 흰 물결이 정자 앞에 둘렀으니
천손 운금을 뉘라서 버혀 내어
잇는 듯 펴치는 듯 헌사토 헌사할사
산중에 책력 없어 사시를 모르더니
눈 아래 헤친 경이 철철이 절로 나니
듣거니 보거니 일마다 선간이라
-정철/ 성산별곡중-


▲ 식영정 밑 송강 정철의 가사문학비 , 가을 빛이 완연하다.
ⓒ 김정은
소쇄원을 지나 가사문학관을 지나 머지 않은 곳에 우뚝 서있는 식영정은 김성원(金成遠 1525∼1597)이 장인이자 스승인 석천 임억령(林億齡 1495∼1568)을 위하여 지은 건물로 송강 정철이 성산별곡의 배경이 된곳이다. 솔숲에 아늑하게 덮인 정자와 바로 앞으로 내려다보이는 광주호의 풍경이 그윽하다.

여기서 식영이란 그림자도 쉬고 있다는 뜻인데 장자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식영정기에 의하면 "장자에서 말하기를 옛날에 자기 그림자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이 그림자에서 벗어나려고 죽을힘을 다하여 달아났다. 그런데 그림자는 이 사람이 빨리 뛰면 빨리 쫓아오고 천천히 뛰면 천천히 쫓아오며 끝끝내 뒤에 붙어 다녔다. 그러다 다급한 김에 나무 그늘 아래로 달아났더니 그림자가 문득 사라져 나타나지 않더라"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그러자 사람과 그림자의 관계는 그렇지만 그럼 선생이 스스로 자기 빛을 숨기고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은 자연의 순리와 관계없는 일이 아니지 않느냐고 김성원이 임억령에게 되물으니 임억령은 " 내가 이 외진 두메로 들어 온 것은 한갓 그림자를 없애려고만 한 것이 아니라 시원하게 바람 타고 자연 조화와 함께 어울리며 끝없는 거친 들에서 노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림자를 두려워하는 사람이라. 그림자가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 왜 그림자를 두려워할까?

문득 신독(愼獨)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군자는 모름지기 어두운 방에 홀로 있어도 부끄럽지 않게 행동한다는 의미와 비슷한 의미일까?
숙제 하나를 안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는 귀경길을 서두르는 단풍 행락객들의 자동차로 도로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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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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