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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적인 보수신문인 '조중동'을 정면으로 비판해 관심을 모은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 4일자 기사에 대해 <오마이뉴스>는 전문을 번역해 실었다. <조선일보> 역시 당일 인터넷판에 관련기사를 실으면서 전문을 번역해 게재했다. 그런데 <오마이뉴스>와 <조선>의 번역문은 표현과 내용에서 큰 차이를 나타냈다. 일부 문장의 경우 완전히 상반된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어느 쪽 번역이 옳으냐'는 독자들의 질문이 의견쓰기에 계속 올라오고 있다.

<오마이뉴스> 번역을 담당한 김정란(불어불문학) 상지대 교수는 독자들의 혼란을 막고, <르몽드> 기사의 실제 내용이 무엇인지를 밝히기 위해 <조선> 번역문을 다시 점검한 글을 보내왔다. 김 교수는 이 글에서 "사실을 보도해야 할 언론사의 무책임한 태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한 뒤 "다른나라 말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도 이같은 오역은 꼼꼼하게 짚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편집자 주)


번역이 100% 가능하다는 믿음은 미신에 가깝다. 역사와 문화가 다른 두 나라 사이의 말을 완벽하게 옮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오역의 가능성은 언제나 남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초적인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된다.

기초적인 사실은 번역의 본질적 불가능성과 상관없이, 얼마든지 정확한 전달이 가능하다. 특히 사실을 다루는 언론은 기본적인 팩트를 왜곡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문화적 통설이 지니고 있는 섬세한 논의 뒤에 숨어서 오리발을 내밀 수 있는 성격의 잘못이 아니다. 그것은 분명한 오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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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 대통령과 전쟁하는 족벌"

그러나 한국의 거대 언론사들은 툭하면 외신을 왜곡한다. 그 왜곡은 걱정스러운 수준에 와 있다. 멋대로 짜깁고, 콘텍스트 무시하고 자기들에게 유리한 말만 따다가 침소봉대하기 등이 거의 일상화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르몽드에 났던 한국 언론관계 기사도 예외가 아니다.

기본적인 프랑스어 구문도 이해하지 못했다

나로서는 <오마이뉴스>의 부탁을 받아서 그 기사를 번역했고, 따라서 조선일보가 명백하게 왜곡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조선일보 기사를 읽고 그것을 그대로 믿는 독자들이라면,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질 정도로 전혀 다른 번역이니 나로서는 나의 번역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라도 잘못된 번역을 바로잡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터넷 조선일보에 올라온 번역은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기본적인 프랑스어 구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번역이다. 하나하나 손을 대어서 지적하려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아서 크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되는 점을 중심으로 기술하도록 하겠다. 편의상 조선일보 번역에 행을 따라 번호를 매겼다.

<조선> 번역을 퐁스 기자에게 보여준다면...

우선 리드부터 잘못돼 있다. 조선일보는 "한국 국영 방송사와 재계를 대표하는 3대 일간지가 더욱 독립성을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고 옮겼다. 그러나 원문에는 "방송사와 3대 일간지가 독립성을 확보해야 할 필요"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국영방송과 3대 일간지의 무게가 (너무 무겁기 때문에 그들과 관계 없는 일반적인 의미의) 보다 독립적인 언론의 필요성을 야기시키고 있다고 쓰고 있다.

1행. 김영희 부사장이 <빈정대듯(narquois) 대답했다>에서 부사를 빼먹었다. <조중동> 동업자에 대한 예우인 듯.

2행. <최악의 판결>. 아마도 condamnation을 이렇게 번역한 듯하다. 그러나 <저주>를 의미하기도 하는 이 단어는 사실 관계를 말할 때, 그렇게 강한 종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유죄판결> 정도의 뜻이다,

즉, IPI가 <문제있음>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는 단순 보고에 불과하다. 굳이 뉘앙스를 살린다면 "강한 비판"정도로 옮길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 "이 판결은 비난이 난무하고 있는 국가에서 좌파가 우파 언론을 자극하고 있다는 것이었다"는 완벽한 작문이다.

원문에는 "대한민국 노무현 대통령의 중요한 독립 언론을 겁먹게 하고 괴롭히려는 지속적인 시도에 대한 비판이" a soulevé dans le pays un tollé de la presse de droite comme de gauche. 라고 되어 있다. 조선일보의 번역대로라면, "이 판결은..." 이라는 주어 뒤에 다른 문장이 와야 한다. 그러나 이 문장은 단문이다. 즉 주어는 "IPI의 비판"이고, 막바로 동사 a soulevé 가 따라오고 있다. 달리 번역될 여지가 없다. IPI의 (상기 내용의) 비판이 나라 안에서 좌파뿐 아니라, 우파 언론으로부터도 강력한 비난(tollé)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좌파가 우파 언론을 자극했다"는 말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5행 "마치 근거가 없다는 듯이"라고 옮김으로써, 상당한 근거가 있는데, 우리 정부가 IPI의 비판을 거부했다고 읽힐 수 있는 소지를 주는 위험한 번역이다. 원문은 "rejetées par le gouvernement comme non fondées"라고 되어 있다. 이때 "comme non fondées"는 "마치 근거가 없다는 듯이"가 아니라,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어 거부되었다고 옮겨야 옳다. 조선일보의 번역이 맞으려면 comme가 아니라 comme si(as if)가 되어야 하며, 원문에서처럼 막바로 형용사를 붙일 수 없고, 그 뒤에 다시 주어와 동사가 와야 한다.

9행은 문제 없는 번역이다. 그러나 10행의 "무엇보다도 3개의 중요한 언론이 글쓰기를 통해 집중하는 것이 무엇인가 살펴보아야 한다"는 역시 완벽한 작문이다. 원문은 Que la liberté de la presse ne soit pas en cause ne signifie pas que le monde médiatique sud-coréen n'ait pas problèmes : d'abord, celui de la concentration de la presse écrite entre les mains de trois quotidiens nationaux au tirage important (plus de 2 millions d'exemplaires chacun)로 되어 있다.

이 문장의 주어는 "Que....에서 cause"까지이다. 즉, "언론 자유가 문제 없다는 사실"이 주어이고, 동사는 "의미하다"(한국의 미디어 환경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이다. 그리고 이어서 나오는 콜론은 앞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명시하는 역할을 한다. Celui 는 문제(problèmes)를 받는 대명사이다.

즉, 200만부 이상씩 찍어내는(르몽드 기사는 독자가 200만 명이라고 쓴 바 없다. 단지 그만큼 찍어낸다고 쓰고 있을 뿐이다) 거대 언론의 <집중concentration>이 첫번째 문제라는 것이다. "3개의 중요한 언론이 글쓰기를 통해 <집중>하는 것을 알아보아야 한다"는 말은 원문 어디에도 없다. 르몽드 기사는 여론의 집중이 문제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르몽드 기자가 두 번째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는 "정부에 의한 사실상의 TV 통제" 역시 조선일보 번역에서는 무책임하게 부풀려져 있다. 조선일보는 "또한 정부는 두 개의 중요 방송국을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즉, KBS와 MBC는 사실상 대통령의 라인에 걸쳐있는 방송국이다"라고 옮겼다. 이러한 표현은 원문에는 없다.

원문은 "Ensuite, le contrôle de fait par le gouvernement de deux des principales chaînes nationales de télévision : les présidents des chaînes KBS et MBC sont en effet nommés par le chef de l'Etat."로 되어 있다. 르몽드 기자는 <사실상의de fait 통제>라는 유보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완전히 직역한다면, "그리고, 정부에 의한 국가의 중요한 두 텔레비전 방송국의 사실상의 통제라는 문제가 있다. KBS와 MBC 사장은 국가의 수반에 의하여 실제로 임명된다"로 옮길 수 있다. 이 단순한 문장에서 복잡한 언론장악 시도를 읽어내는 조선일보 번역에서는 단순한 오류를 넘어서 의도된 악의마저 읽힌다.

15행 '조동중'이라는 표현에 대해 르몽드 기자는 명백하게 "stigmatiser(낙인을 찍다, 비난하다, 상처자국을 내다)하기 위해서"라는 강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 동사는 조선일보 번역에서 빠져 있다(일반적으로 긍정적인 가치 판단이 포함되어 있는 <거인>이라는 번역도 상당히 문제가 있지만, 넘어가기로 하자. 원문은 그냥 3 Grands이다. 우리 식으로 "3빅" 이상의 뜻이 아니다). 이어지는 "신문출판의 제국을 건설하고 노무현 대통령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에서 중요한 그리고 미묘한 형용사가 빠져 있다.

원문은 분명히 "des empires éditoriaux et familiaux"로 되어 있다. 직역하면, "언론의, 그리고 가족의 왕국"이라는 뜻이다. 번역자는 "familiaux"를 뺐다. 이 표현은 "족벌 언론의 왕국"으로 옮길 수 있다. "족벌"이라는 말이 가지는 부정적 함의는 프랑스어로 번역이 불가능하다. 기자는 한국에서의 취재 과정에서 "족벌"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로서는 "familial" 이상의 프랑스어는 찾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에도 "전쟁" 앞에 "ouverte(공개적인, 노골적인)"이라는 형용사가 들어가 있다. "아예 내놓고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뉘앙스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17행의 "최고의 지도자는 올 여름에 이 세 개의 일간지를 향한 정의의 행동에 착수했다" 라고 옮긴 부분에서 번역자는 "법적 행동"을 "정의의 행동"으로 잘못 옮긴 듯하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이 세 개의 일간지는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과 얽혀있는 불명확한 돈 문제에 관해 공격을 가했고, 우려를 표명했다"는 그야말로 무책임한 번역의 진수를 보여준다.

원문은 "Le chef de l'Etat a entamé cet été une action en justice contre les trois quotidiens exigeant des dommages et intérêts pour des articles sur des affaires financières peu claires auxquelles seraient mêlés ses proches, dont son épouse."라고 되어 있다. "우려를 표명했다"는 동사는 어디에서 튀어나온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보다는 이 번역자가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과 얽혀있는 불명확한 돈 문제"라고 단정적인 어투로 옮기고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이다.

이 대목에서 기자는 직설법(객관적 사실을 진술하는 어법)이 아니라, 조건법 과거(일어나지 않은 사실을 진술하는 어법. 영어의 가정법)로 기술하고 있다. 즉, 언론사의 보도 내용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분명하게 전달하는 어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정확하게 옮기면, "국가 원수는 이번 여름에, 그의 아내를 포함한 그의 측근이 연루되었을지도 모른다고 하는 불분명한 재정적 문제에 대한 기사에 대해, 3개 일간지를 상대로 명예훼손 보상을 요구하는 법적 행동에 착수했다"가 될 것이다.

다음 문장은 "이를 시발점으로 집권 대통령이 전례없이 방탄막을 치고, 임기가 끝날 때까지 소송을 연기시키는 뒷걸음을 쳐야만 했다"라고 되어 있는데, 원문은 "대통령의 조치"가 "방패 들어올리기를 촉발시켰다"고 쓰고 있다. 방패막을 친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언론이었다는 원문의 견해가 완전히 거꾸로 번역되어 있다.

22행의 "노 대통령은 민감한 대통령의 지위를 통해 언론을 강하게 개혁하기보다는, 이들의 목을 조르기를 원했던 것 같다"도 완전히 왜곡된 번역이다. 원문은 "il a semblé vouloir juguler plutôt que de réformer un secteur si malmené par les dictatures qui a une sensibilité à fleur de peau."로 되어 있다. 대통령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했다"는 표현은 어디에도 없다. 뿐더러 "민감한"이라는 표현은 "분야"를 수식하는 관계대명사절로 처리되어 있다.

"민감한 대통령의 지위"라니, 이 번역자는 어떻게 이렇게 수식어를 마음대로 아무데나 가져다 붙이는 용기를 발휘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대통령은 독재정권에 의해 그토록 억압을 당해 왔기 때문에 아주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분야를 개혁하는 대신, 억누르고 싶어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도로 옮길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장의 함의는, 대통령이 군사독재정권시절부터 워낙 억압을 당해 왔기 때문에, 약간의 자극만 받아도 아주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언론이라는 분야를 개혁하는 본질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임기응변적으로 누르려고 했던 것이 패착이었다, 라는 것으로 보인다.

(중략)은 왜 들어갔을까? 생략된 내용이라야, 거대 언론사들이 누리는 혜택의 짧은 리스트 뿐인데...

35행의 "조·동·중과 끊임없이 싸운, 민주화 인사였던 전임 김대중 대통령"이라는 번역은 현재분사와 과거분사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해서 생겨난 오역이다. 원문은 "Attaqué sans arrêt par "Chodongjoong", l'ex-président Kim Dae-jung"이라고 되어 있다. Attaqué는 동사 공격하다attaquer의 과거분사가 형용사적으로 쓰인 경우이다. 과거분사가 형용사로 쓰일 때에는 거의 언제나 수동적 의미로 쓰인다. 따라서 "조동중에 의하여 끊임없이 공격당했던"으로 옮겨야 옳다.

만일 조선일보 번역자의 번역이 맞으려면 현재분사를 사용해서 "attaquant sans arrêt"가 되어야 하며, 동작주를 끌어오는 전치사 par(영어의 by)가 빠져야 한다. 하기는 늘상 남들을 물어뜯을 줄이나 알았지, 억울하게 당하는 사람 심정을 모르는 조선일보로서야 과거분사가 수동적인 의미의 형용사로 쓰이는 걸 알 턱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40행의 "체계적으로"라는 번역은 오역이다. systématiquement이라는 단어는 주어진 맥락에서는 "체계적으로"가 아니라, "철저하게", 좀더 구어적 표현으로 하면 "지독하게"에 가깝다.

이외에도 여러 부분들에 문제가 많지만, 한없이 길어질 것 같아 이쯤에서 맺는다. 나는 르몽드의 이 기사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 기사는 외국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한국의 특수한 언론상황에 대한 심층적 이해가 완전히 빠져 있다. 그리고 외국인 기자로서 속 편하게 일반론의 입장에서 기계론적 중립성을 표방하고 있다.

1등 언론이라는 자찬에 맞게 처신하길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쓰여진 사실은 쓰여진 그대로 투명하게 전달돼야 한다. 반박할 부분이 있다면, 다른 경로로 반박하면 되는 것이다. 조선일보사처럼 자신들의 구미에 맞도록 꼬리 떼고 머리 떼고, 그 자리에 엉뚱한 것을 가져다 붙여서야 되겠는가? 만일 조선일보 번역을 다시 프랑스어로 번역해서 퐁스 기자에게 보여주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김정란 교수
김정란 교수
이 기사를 쓰면서 나는 두 가지 점에서 씁쓸함을 느꼈다. 첫째, '1등 언론'이라고 자찬하는 이 기이한 언론은 어째서 툭하면 외신 왜곡을 할 정도로 자존심이 없는 것일까. 그토록 자신이 없나?

둘째, 한다 하는 대한민국의 인재란 인재는 다 모였다고 큰소리치는 이 언론사의 외국정보 처리능력이 이것 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어째서 그토록 많은 인푸트(input)를 집어넣으면서 이토록 초라한 아웃푸트(output)밖에는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일까?

조선일보여, 외신 번역에서만이라도 반역하지 말기를. 그대들은 공동체를 상대로 이미 충분한 반역을 저질러 오지 않았던가? 조선일보사가 어느 날 갑자기 훌륭한 언론으로 환골탈태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도 않는다. 다만 사실만이라도 충실하게 전달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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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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