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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감들의 탐스런 빛깔과 곱게 물든 단풍이 어우러진 풍경은 나로하여금 그 근원 조차 알 수 없는 향수에 젖게 한다. 누구처럼 그러한 풍경을 동무삼아 들판을 뛰놀며 자란 것도 아니고, 감나무가 있는 너른 뜰이 있는 집에서 자란 것도 아닌데 감나무를 보면 고향, 향수, 그리움, 정겨움, 휴식, 어린시절, 추억 등과 같은 단어들이 줄줄이 떠오르면서 뭔가가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달렸다.
ⓒ 장영미
지금껏 살아오면서 감나무에 대해 추억할만한 그 어떤 계기도 갖지 못했으니 '결국 내게 있어 감나무에 대한 이러한 감상은 외부로부터 주어진 ‘이미지’에 불과하다. 주렁주렁 매달린 먹음직스런 감 덩어리들은 내게 있어 고향과 추억, 향수를 주제로 만들어진 영화를 한편 보는 것과 같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 내게도 감과 관련하여 어렴풋이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있으니 바로 ‘곶감 말리기’가 그것이다. 시골의 작은 할아버지 댁에서였는지, 서울의 우리 집에서였는지 기억은 가물가물한데, 뚜렷이 떠오르는 것은 감을 깎아 실에 꿰어 주렁주렁 매달아 두었던 기억이다. 곶감이 되어지기를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렸던지….

일본에서도 곶감을 만들어 먹는다는 것을 알고 무척 놀랍고도 반가웠다. 수퍼마켓이나 일반 식품점에 진열된 곶감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반가웠던지…. 그러나 그것도 동네를 산책하며 발견한 곶감 말리는 풍경에서 받은 감동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작년 이맘 때 어떤 집 2층에 창가 가득 줄줄이 매달아 놓은 곶감줄을 보았다. 짙어가는 가을녘 평범한 2층 집 창가에 걸린 곶감줄의 뚜렷한 주황빛은 멀리서도 눈에 띌 만큼 강렬한 것이었다. 가을 햇살과 맑고 푸른 하늘과 길게 매달린 주황빛 곶감줄들. 그것은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셋팅이었다.

▲ 앞 집의 베란다에 걸린 감덩이들
ⓒ 장영미
어제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보니, 앞 동의 1층 베란다에 감을 깎아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종 모양의 큼직한 감 덩어리 수십여개가 온화한 햇살 아래에 속살을 드러내고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앞서 말한 그 ‘이미지’가 작동을 하기 시작했다. ‘아름답다, 먹음직스럽다, 정겹다, 따뜻하다’는 생각이 든 다음 순간, 뭔가가 마구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 감빛과 가을 하늘의 푸른빛은 상생의 조화를 느끼게 한다.
ⓒ 장영미
아! 집에 가고 싶다
대문을 박차고 뛰어 들어가
곶감 하나 빼먹고,
햇살을 이불삼아 발 뻗고 누울 수 있는
그 집으로…

눈물이 나려한다
집에 가기엔 너무 먼 곳
하릴없이
추억 속으로

… 눈을 감아도
집에 갈 수가 없다….

무수한 이미지의 파편들만이
15초 광고인 양 번쩍일 뿐

추억 조차 먼 발치에
꽁꽁 묶인 채
요지부동!

벌써,
감 널어 말리는데

아! 집에 가고 싶다

(2003-11-07, 장 영미)


▲ 감을 먹은 것은 까마귀였을까, 산새였을까? 파리와 개미를 위해 조금 남겨 둔 것일까?
ⓒ 장영미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맞으러 나갔을 때 감을 널어 말리는 앞 집의 부인을 만났다. 60대 중반에 접어든 그 부인 역시 도시 출신이었다. 집 근처에 있는 밭의 한귀퉁이를 얻어 딸기며 콩, 오이, 고구마 등 종류를 바꿔가며 소일거리 삼아 가꾸는 분이었다.

감을 널어 말리는 풍경이 아름답다고 말을 건넸다. 실에 꿴 것이냐고 물었더니 감꼭지에 붙은 가지에 끈을 달아 옷걸이에 걸어 놓은 것이란다. 그러면서 우리 동의 마당에 심어진 감나무를 가리키며 아직 몇 개 남아있으니 시험삼아 만들어 보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아이를 위해 좋은 교육이 될 것이라면서 말이다.

베란다에 빨래나 이불을 널 때 그 작은 감나무에 감이 열린 것을 신기하게 여기며 내려다 보곤 했었다. 그리곤 ‘아무도 따지않으니 까마귀 밥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정작 내가 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정원용 가위와 봉지 하나를 들고 아이와 함께 감을 따러갔다. 지난 여름에 베어낸 잡초들이 벌써 무릎까지 자라 있었다. 부인이 일러준대로 감꼭지 위에 T자 모양으로 가지가 남도록 심혈을 기울여 가지를 잘랐다. 감은 동그스름했고 내 주먹보다 작았다. 워낙 작은 나무였고, 그동안 까마귀들이 열심히 먹었는지 쓸만한 감은 별로 남아있질 않았다. 그럭저럭 10개를 따서 봉지에 담아왔다.

젖은 행주로 감을 닦아 깎으려고 보니 감꼭지 사이사이에서 작은 개미들이 날벼락이라도 맞은 듯 허둥지둥 기어나오는 것이었다. 개미들을 잡아내면서 까마귀들에게도 개미들에게도 몹쓸 짓을 하는구나 싶어 마음이 찜찜했다. 귀한 음식을 까마귀들과 개미들에게서 나누어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다보니 그 감들이 더욱 귀하게 여겨져서 껍질도 얇게 깎고, 행여 꼭지나 가지가 떨어질새라 정성껏 다루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는 실이나 꼬챙이에 꿰어서 말리는 것 같은데 이곳에선 가지에 끈을 묶어 매다는 모양이었다. 끈의 길이를 달리하여 묶었더니 옷걸이 하나에 10개 전부를 매달 수 있었다.

혹여 먼지라도 묻을새라 그것을 조심스럽게 들고 베란다로 나갔다. 빨래를 널어 말리는 막대기의 가장자리에 걸어 놓으니 마음 속의 그 ‘이미지’가 실현된 것만 같았다. 아직 물기가 마르지않은 감 덩어리들이 햇빛을 받자 마치 황금덩어리 처럼 빛났다. 한 덩어리는 ‘고향’이고, 또 한 덩어리는 ‘향수’, 그리고 다른 한 덩어리는 ‘추억’이고, 또 다른 한 덩어리는….

▲ 베란다에 매달아 놓은 10개의 황금덩이
ⓒ 장영미
어떤 황금 덩어리 10개가 이만한 행복과 기쁨을 안겨 줄 수 있을 것인가? 베란다에 걸린 10개의 황금덩이를 올려다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부자가 된 듯 뿌듯했다. 이런 논리로 치면 앞 집 부인은 억만장자? 후후후….

덕분에 베란다를 뻔질나게 드나들 또 하나의 이유가 생겼다. 우리 집 황금덩이가 무사한지 수시로 확인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을 것 같다. 딸아이는 혹시 까마귀가 자기 것이라고 물고 가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이 태산이다. 사실 나도 그게 제일 걱정이다. 한국에선 까치를 위해 감나무에 감을 남겨 둔다고 했는데 일본에선 까치를 본 적은 없고 아마 까마귀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모양이었다.

모든 고난을 헤치고 우리 집의 황금덩이가 무사히 곶감다운 곶감으로 변신해 줄 것인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빨리 그 날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먼 훗날 딸아이가 ‘아! 집에 가고싶다’라고 부르짖을지도 모를 그 집의 베란다에 나는 10개의 추억덩이를 매달아 놓았다.

▲ 도랑 곁의 감나무
ⓒ 장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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