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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7일자 <중앙일보>의 한 기사 제목을 보는 순간 "이럴 수가…"라는 생각이 들어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고3 교실 파행수업…교육부 암행 단속'이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고3 교실의 수업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도록 교육인적자원부가 적극적인 지도에 나선다'는 것과 '고3 교육과정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 지도점검반을 구성해 연말까지 시·도교육청과 고교를 대상으로 불시 점검을 할 예정'이라는 내용이다.

감사 결과 '무리한 단축수업과 행사 위주의 교육활동 그리고 법적인 출결처리 등 교육과정을 파행적으로 운영하는 학교에 대해서는 행정 조치를 할 방침'이라고 한다.

우리 속담에 '버스 지난 뒤 손든다'는 말이 있다. 교육부가 하는 일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나라의 교육정책을 입안하고 이끌어야할 교육부가 학교를 몰라도 이렇게 모르고서야 어떻게 한 나라의 교육을 책임질 수 있을까?

▲ 참고서와 교과서를 폐휴지 처리장으로 보내는 학생
ⓒ 김용택
대부분의 고3 학생들은 수능 하루 전날 교과서며 참고서를 묶어 폐휴지 처리장으로 보낸다. 그런데 이제 와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고3 교실의 수업이 정상적으로 운영하는지의 여부를 감사하겠다'는 지침으로 현장 교사들의 조소거리가 되고 있다.

교육부가 정말 수능과 함께 고3 학생들의 수업이 끝난다는 것과 교과서를 폐휴지 처리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하는 소릴까? 만약 알고서 이런 지시를 했다면 국민을 기만하는 일이요, 모르고 이러한 지침을 내렸다면 직무유기다. 교육부는 아직도 학교가 시험문제를 풀이하는 학원이 됐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면 교육부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교육부의 한심한 '고3 교실의 정상수업 지침'과는 상관없이 수능 끝난 고 3 교실은 사실상 졸업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새벽 같이 등교해 '선생님 집에 다녀오겠습니다'는 인사가 나올 정도로 시험문제 풀이를 반복해 왔다. 성적 부풀리기는 물론 심지어는 수능이 아닌 과목은 수능 과목으로 대체해 시험을 치르기도 한다.

문제풀이로 밤을 새는 학교에서는 일류대학 입시전형이 교육과정보다 우선이다. 교육부도 일류대학에 몇 명을 더 입학시키느냐의 여부에 따라 학교를 서열매겨 왔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류대학 입학이 교육목표가 된 학교에서 우수한 교사는 교육자가 아닌 시험문제를 족집게처럼 풀어주는 사람이다. 더불어 사는 지혜를 가르쳐 주는 교사가 아니라 시험문제를 잘 풀어주고 아이들에게 입시정보를 많이 제공해 주는 교사가 우수한 교사가 된다. 혹시 수능 출제에 당첨된 친구라도 있는 선생님은 그와의 대화에서 얻은 정보로 족집게 교사가 되는 행운을 잡을 수도 있다.

교육이 실종된 학교의 교사들은 아이들 앞에 참으로 부끄럽다. 삶을 가르치지 못하는 교사. 쏟아지는 잠을 깨우며 일류대학을 위해 시험문제를 풀이해 주는 교사들은 자살로 항거하는 제자들 앞에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교육부가 존재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학교를 교육하는 곳으로 만드는 일이다. 이러한 사실을 외면하고 시간만 있으면 전국의 초등학생까지 진단평가를 실시해 학교간 우열을 가리겠다고 한다. 사람의 가치를 점수 몇 점으로 서열을 매기는 교육부의 사고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우리 교육의 미래는 없다.

교육부는 답해야 한다. 일년에 단 한번. 전국의 고 3학생과 재수생을 합해 60여만명을 평가하는 시험이 교육과정을 얼마나 잘 이수했는지의 여부인지 아닌지를. 그것이 아니라면 학교는 교육을 하는 곳이 아니라 학원이라고 해야 옳다.

학교가 교육하는 곳이라고 인정한다면 수능성적(교육과정을 외면하는 평가)으로 학생들을 서열 매겨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학교는 절대로 일류대학에 좋은 실적을 올릴 수 없다. 뿐만 아니라 12년 동안 교육을 그것도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우열을 가린다는 것은 만용에 가까운 일이다.

솔직히 말해 수능 끝난 고3 교실에는 학생은 없다. 출석일수 때문에 등교는 하지만 이들에게 교육과정이나 학칙을 적용할 수 없다. 솔직히 이러한 사실은 교육부가 더 잘 알고 있다.

그런 교육부가 갑자기 암행감사를 하겠다는 것은 교육부의 잘못을 단위학교에 떠넘기려는 기만책에 다름 아니다. 수능지도에 지친 일선교사들은 '교육부가 눈꼽만큼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어떻게 그런 지시를 할 수 있느냐'고 분통을 터뜨린다. 수능 끝난 고3 교실에 수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진심이라면 '자기네들이 와서 수업을 해 보라'며 분개하고 있다.

기만의 시대는 마감해야 한다. 대부분 고 3학생들은 수능이 끝나기가 바쁘게 미용강좌며 성교육, 그리고 입시설명회에 동원되기도 한다. 교육과정은 휴지가 되고 원칙도 기준도 없이 담당선생님의 아이디어나 혹은 학생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학의 요구에 따라 시간 보내기 세월이 계속된다.

교육부가 진심으로 이 나라의 교육을 걱정한다면 전국의 수십만명의 학생과 수만명의 고 3지도 교사들이 무려 4개월이나 방황하는 현실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교육과정은 있어도 배울 것이 없는 학생과 월급을 받으면서 가르칠 것이 없는 교사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교육부가 풀어야 할 시급한 과제다.

수능 이후 고3 교육과정 운영 정상화 기해야
중앙일보 교육인적자원부 관련 보도자료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수능이후 고3 교육과정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 '지도점검반'을 구성하여 올 연말까지 시 도교육청 및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불시 점검을 실시할 예정이다.

점검 결과 무리한 단축수업이나 편법적인 출결처리 등 교육과정을 파행적으로 운영하는 학교에 대해서는 시 도교육청을 통해 적의 조치하도록 유도하고 향후 시 도교육청 평가에도 반영할 예정이다.

이와 같이 수능이후 교육과정 운영에 대한 장학지도를 강화하는 이유는 수능시험 이후에도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한 교사 학생 학부모의 인식도를 제고함과 더불어 행사 위주의 교육활동을 실시하거나 단축수업을 실시하는 등 교육과정을 파행적으로 운영하는 관례를 개선하기 위함이다.

이를 통해 초 중등교육기관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공교육에 대한 신뢰도를 제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동안 수능이후 교육과정 정상 운영과 관련하여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수능이후 교육과정 정상 운영을 고려한 학교 교육과정을 편성하도록 지시하였고('2003교육과정운영기본계획') '2003 시 도교육청 평가'시 수능이후 교육과정 운영 관련 항목을 평가한 바 있다. 또한 지난 10월에는 시 도 부교육감회의 및 공문 등을 통해 수능이후 고3 교육과정이 파행 운영되지 않도록 시 도별로 자체계획에 의거 장학지도를 철저히 실시하도록 지시했다.

장기적으로는 수능이후 졸업까지 교육과정 운영 기간이 너무 길어 단위학교에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2005 대입 수능 일정을 약 2주 정도 늦추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시 도교육청을 통해 수능이후 교육과정 운영 우수사례를 발굴하여 안내할 예정이다.

/교육인적자원부 학교정책과
등록일 2003.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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