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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진해 누워있는 삼성 해복투 노동자들
ⓒ 송민성
11월 10일 국가인권위원회 점거 농성을 진행 중인 삼성생명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삼성해복투) 노동자들을 찾았을 때 그들은 차례로 진료를 받고 있었다.

삼성생명의 부당 해고에 맞서 5년 동안 투쟁해 온 삼성해복투 노동자들은 지난 10월 8일 상경, 13일부터 대한상공회의소 앞 노숙단식투쟁을 진행했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게 되자 지난 11월 4일 국가인권위원회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그들은 현재 삼성생명의 여성 차별·인권 탄압과 남대문 경찰서가 삼성생명 앞 집회 신고를 대리했다는 의혹에 대해 진상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삼성해복투는 11월 11일 현재 30일째의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대부분이 40대 이상인 노동자들은 오랜 단식으로 인한 어지럼증, 저혈압, 몸살 등의 증상을 공통적으로 보였다.

"어지럽고 힘이 없어요. 무릎도 아프구요."

"15일 정도 단식을 하고 보식 중인데 단식 후유증으로 속이 너무 아파요. 찬 곳에서 한 달여간을 지내다 보니 뼈마디도 쑤셔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소속 의사 박태훈씨가 혈압을 측정하고 청진기로 몸의 이상을 살핀다. 진료를 도와줄 이가 없어 노동자들을 눕히고 링거를 꽂아주는 것도, 당뇨 수치를 측정하는 것도 박태훈씨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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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건약) 조직사업국장 육혜경씨는 처방전에 쓰여진 대로 약을 조제하는 한편 노동자들의 건강 상담을 해 준다.

"같은 여성이다보니 좀 더 편하게 이야기를 털어놓으세요."

임신인 줄 모르고 단식을 했던 한 노동자가 태아의 건강을 걱정하자 육혜경씨는 임신 과정까지 그림으로 그려가며 그를 안심시킨다.

그들은 각각 인의협과 민주노총의 긴급 협조 요청을 받고 이곳을 찾았다. 육혜경씨는 "노동자들의 상태가 생각보다 좋지 않다"고 우려했다.

"단식으로 인한 기본적 위장 장애, 불규칙한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 이로 인한 당뇨나 빈혈 등의 지병 악화 등등 여러 가지죠. 추운 곳에서 장기간 농성을 하다보니 감기 몸살은 기본이구요."

삼성해복투 노동자들에게 단식에 관한 건강 교육을 실시한 바 있는 육혜경씨는 단식의 위험성을 거듭 강조했다.

▲ 인의협 소속 의사 박태훈씨
ⓒ 송민성
"단식을 '칼 안 대는 수술'이라고 하는 것 아세요? 단식을 잘 하면 건강해질 수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편안한 생활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고 어디 이 분들이 그런가요? 방법이 없어 투쟁의 마지막 방식으로 어쩔 수 없이 택한 거잖아요."

이러한 단식은 몸 전체를 민감하게 할 뿐만 아니라 심리적 불안과 위축을 초래하기도 한다.

"원초적인 욕망까지 포기하고 싸우는데도 회사 측에서는 미동도 안 한다고 하네요. 그렇게 힘든 선택을 해도 성과가 없으니 얼마나 억울하겠냐구요."

그는 "사람을 한 달씩이나 단식시키게 하는 데가 어딨냐"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제대로 된 의료 기구 하나 없는 곳에서 그들이 해 줄 수 있는 처방은 극히 기본적인 수준이다.

"해열제, 위장약, 몸살 감기약, 탈진한 분들을 위한 링거액 정도죠. 이대로 방치하면 큰 병으로 악화될 위험이 있는 분들도 있지만 이 정도밖에 해드릴 수가 없네요."

▲ 건약 조직사업국장 육혜경씨
ⓒ 송민성
박태훈씨는 "이런 처방은 특별한 치료라고 하기도 어렵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래도 전문가들이 오면 한결 안심하세요. 단식 투쟁을 하면서 느끼는 불안감, 건강에 대한 위협 등을 우리에게 털어놓으면서 덜어내시는 것 같아요."

육혜경씨는 자신들이 "이처럼 약으로 기대할 수 없는 부분을 치유해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임산부에서 60대 어르신들까지 단식을 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항의 전화를 하든, 항의 메일을 하든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삼성해복투는 국가인권위원회 박경서 상임위원과 11일 새벽 면담했다. 그 결과 ▲진정안을 외면한 처사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측의 공식 사과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 사업 계획의 여성 차별 부문에서 삼성생명 내부의 여성 차별에 대한 실태 조사 상정 및 진정 발생시 우선 조사 등을 요구해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다고 밝혔다.

박경서 상임위원은 남대문 경찰서가 허위 집회 신고를 했고 노원경찰서가 묵비권을 행사하는 노동자들의 사진을 찍고 강제로 지문을 채취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조사를 하겠다'고 답변했으나 기한을 정할 수는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삼성 해복투는 언제까지 조사를 완료할 수 있는지 여부를 서면으로 답변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답변의 내용을 보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철수할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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