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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 영산포지역 농민들이 칼슘쌀 입고식을 치르고 있다.
전남 나주 영산포지역 농민들이 칼슘쌀 입고식을 치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승후

한국농업의 위기극복을 위해 뜻있는 농민들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기능성쌀을 개발한데 이어 그간 정부나 농협수매에 의존하던 방식을 탈피, 보다 높은 가격에 직접 판로를 개척하는 등 살길을 모색하고 있다.

나주지역 농민들의 이같은 노력은 정부의 농산물 개방정책과 쌀 감산정책으로 영농의욕을 상실하고 실의에 빠져 있는 농민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커, 향후 이들의 성공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14일 오전9시 나주농민회 영산포지회(회장 유상욱)는 칼슘이 함유된 쌀을 개발하기 위해 2년간의 시험재배를 거친 후 올해 정식으로 수확한 5500가마의 '칼슘 두배 최고 쌀' 입고식을 가졌다.

나주 금성도정공장(사장 윤준호)에서 열린 입고식에는 신정훈 나주시장을 비롯 60여명의 농민들이 참석했다. 특별한 식순도 없는 조촐한 행사였지만 입고식 분위기는 진지했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 기능성 쌀을 수확했고 수매가도 농협보다 높게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주농민회 영산포지회가 재배와 수확을 감독하고 직접 수매에 나선 이유는 "이대로 앉아서 죽기만 기다릴 수는 없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유상욱 나주농민회 영산포지회장은 "개방농정의 여파로 쌀의 존재가치가 상실되고 있지만 쌀은 여전히 민족의 한이 깃든 농업소득의 핵심이다"고 말했다. 유 회장은 "붕괴되는 농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쌀을 살려야하고, 그러기 위해 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기능성 쌀 개발에 눈을 돌리게 됐다"며 칼슘쌀 개발 계기를 설명했다.

칼슘이 뼈를 튼실하게 만들뿐 아니라 인체에 영양분이 골고루 전달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는 데 착안한 유 회장은, 지난 2001년 연구에 착수한 끝에 굴껍질에서 추출한 칼슘을 물에 녹일 수 있는 이온화에 성공해 칼슘비료를 만들었다. 칼슘비료로 재배한 쌀을 지난 10월 한국식품연구원에 조사 의뢰한 결과 칼슘성분이 일반쌀은 3.3mg/100g인데 반해 칼슘쌀은 6.7mg/100g이 함유된 것으로 확인됐다.

재배농민들 "값 높게 쳐줘 정말 좋다"

지난해 11월, 칼슘쌀을 재배하면 농민회에서 높은 값으로 수매하겠다는 제안을 받은 영산포 농민들의 첫 반응은 탐탁지 않았다고 한다. 농협보다 높은 값을 쳐준다는 약속이 농민회의 '데모 이미지'와 겹쳐져 설득력이 크지 않았기 때문.

그래서 올해는 농민회원들이 중심이 된 80여 농가가 칼슘쌀을 재배해 5500가마를 수확했다. 수매시기가 다가오자 나주농민회 영산포지회 간부들이 연대보증을 서 은행으로부터 3억원을 대출 받아 수매재원을 마련했다.

12일 입고식을 치른 후 창고에 칼슘쌀을 풀어놓은 영산포 농민들은 40kg당 6만원을 받았다. 대부분의 농협들이 1등급 쌀을 40kg당 5만4천∼5만5천원에 수매한 것과 비교하면 높은 가격에 수매한 셈이다.

한 농민이 흐뭇한 표정으로 수매대금을 세고 있다.
한 농민이 흐뭇한 표정으로 수매대금을 세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승후
박경배(62)씨는 "처음엔 시중보다 돈을 더 준다는 농민회 말을 못 믿었지만 오늘 수매대금을 받고 보니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이 가격에 수매해주는 곳은 없다"고 웃었다.

150가마를 출고한 송기수(53)씨는 "가격도 더 받고 브랜드쌀도 생산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며 "지난 여름 뙤약볕에서 3번이나 칼슘비료를 뿌리며 고생한 보람이 있다"며 흡족해했다. 송씨는 "내년에는 칼슘쌀 재배 희망자가 더 늘어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칼슘쌀을 재배한 농민들은 병충해에도 강해 농약을 덜 쓰게된다고 주장한다. 김시경(57)씨는 "보통 농약을 3∼4번 뿌리는 데 칼슘쌀은 2번만 해도 문제없었다"며 "특히 문고병에 강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나주농업기술센터 장형규 계장은 "칼슘성분이 들어간 벼들은 잎과 줄기가 뻣뻣해져 덜 쓰러지고 탄소동화작용이 용이해 밥맛이 좋다"고 덧붙였다.

칼슘쌀 재배농민들은 수매대금을 받았지만 추후 정산될 추가 수입을 기대하느라 각자 예상판매실적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농민회가 수매대금과는 별도로 판매실적에 따라 추가로 돈을 나눠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칼슘쌀 재배 제안을 처음엔 못미더워하던 농민들도 이제는 농민회의 추후정산을 믿고있다.

수매대금을 손에 쥔 농민들은 수입개방 얘기를 꺼내자 금새 안색이 어두워졌다. 농민들은 "이제는 농사지어서 해먹을 게 없어 큰일났다"며 한숨을 쉬었다. 특히 "수만평 농사짓는 사람들이야 살아남겠지만 우리같은 소농들은 어쩌란 말이냐, 답이 없다"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농산물 품질 우위확보가 관건…정부·농협 도움 절실"

나주농민회 영산포지회의 대안모색을 위한 작은 출발은 분명 의미가 크지만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다. 한국 농업을 향해 해일처럼 밀려오는 수입개방의 파도 앞에 이들의 노력은 애처로운 몸부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정부와 농협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유상욱 나주농민회 영산포지회장
유상욱 나주농민회 영산포지회장 ⓒ 오마이뉴스 이승후
유 회장은 "WTO 농업협상이나 한·칠레 FTA, 쌀개방 재협상을 앞두고 우리 쌀을 애용해달라고 소비자의 막연한 애국심에만 호소할 수는 없다"며 "품질의 우수성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농민들의 노력만으로는 힘에 부친다고 토로했다.

유 회장은 "정부는 고품질 쌀 생산을 장려하지만 종자개발보다는 친환경자재사용 권장이나 물관리 교육 등 영농환경 개발에만 치우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 회장은 "기능성 쌀 개발을 농민들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정부나 지자체, 농협이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유 회장은 농협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그는 "농협 전체자산이 삼성보다 많은 250조원"이라며 "주인인 농민은 가난한데 머슴인 농협이 부자라는 현실은 거꾸로 된 것이다"고 비판했다. 유 회장은 "이제라도 농협이 신용사업 중심에서 탈피해 판매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제적으로 저금리 추세가 강세를 보이는 지금, 신용사업은 더 이상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라는 것이 유 회장의 주장이다.

유 회장은 지난 11일 '농업인의 날' 행사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이 "향후 10년간 119조원을 투융자하겠다"고 발표한 '농업10개년 계획'도 문제가 많다고 주장한다. 유 회장은 "문민정부때 44조원, 국민의 정부시절 45조원을 쏟아 부었지만 농민들은 더 어려워졌다"며 "농가소득을 실질적으로 올릴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입고식에 모인 농민들이 느끼는 위기의식은 심각했다. 농민들은 "수입농산물이 엄청나게 들어오면서 가격안정이 안된다"며 "제값을 못 받으니 수확물이 현금화가 안되고, 그래서 빚을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가 거창한 투자계획만 발표하지 말고 낮은 곳의 상황을 잘 헤아려달라는 것이다.

농민들은 정부가 주도하는 농산물 유통구조 개혁 역시 마뜩찮다는 반응이다. "유통을 개혁하려면 산지유통구조부터 손 봐야 하는데 큰 도시에 대규모 유통시설만 세우려고 한다"고 원망했다. 농민들은 "대도시에 큰 유통단지가 들어서더라도 주변지역 농산물 흡수에는 한계가 있다"며 "오히려 개미시장 등 틈새시장을 활성화시켜서 농민과 소비자가 거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작은 출발이 큰 성공으로 가기 위해 넘어야 할 산

칼슘쌀을 창고에 저장하기 위해 농민들이 몰고 온 트럭이 길게 늘어서있다.
칼슘쌀을 창고에 저장하기 위해 농민들이 몰고 온 트럭이 길게 늘어서있다. ⓒ 오마이뉴스 이승후
마을 농민들의 좋은 반응을 얻으며 첫 출발한 '칼슘쌀'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많다. 우선 내년부터는 칼슘쌀 재배 희망자가 대폭 늘어날 것이 예상되므로 생산과 교육을 관장할 시스템의 정비가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다.

또 수매규모가 커질수록 수매단가가 낮아져 재배의욕의 저하를 불러올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판매망 구축과 대도시 소비자의 기호에 맞는 마케팅 전략도 전문적으로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칼슘쌀의 생산 과정은 민관협력의 모범사례로 불릴만하다. 농민회에서 아이디어 생산과 연구활동을 담당하고 나주농업기술센터가 재배프로그램을 작성해 칼슘비료와 농약살포 시기를 조정하는 한편, 나주시에서는 2500만원을 지원해 칼슘비료와 농자재 확보에 도움을 줬다.또 민간기업인 금성도정공장에서는 창고를 무상으로 대여하고 도정비도 원가에 맞춰 책정해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유 회장은 "내년에는 인체 면역기능을 강화시킬 수 있는 쌀을 생산하기 위해 약초들을 대상으로 연구중에 있다"며 "성공하면 40kg에 8만원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우리쌀을 세계시장에 역수출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농민들의 이러한 노력은 한계가 있다. 엄청난 자본력을 가진 다국적 곡물메이저 회사들이 한국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지금, 이들의 작은 출발은 몸부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주농민회 영산포지회의 성과가 한국 농업에 하나의 대안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관계당국의 관심과 연구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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