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기 폭사사건 진상규명에 큰 힘이 되고 싶었습니다."
소설 <배후>의 저자 서현우씨의 말이다. <배후>는 20세기 최대 미스터리인 KAL기 폭파사건을 다룬 최초의 소설이다. 서현우씨는 이 사건이 김정일의 지령을 받은 김승일과 김현희가 저지른 일이 아니라는 가정 속에서 미스터리를 풀어나간다.
주인공이자 안기부 공작원인 조용훈이 KAL기 폭파 임무를 수행하나, 이후 안기부는 사건의 은폐를 위해 조용훈을 제거하려 한다. 그러나 조용훈은 필사적으로 도주하고, 그 과정에서 안기부와 CIA, 그리고 KGB의 역공작이 긴박하게 벌어진다.
소설 <배후>는 그 과정을 풀어내면서 KAL사건에 제기된 의혹들을 끄집어 낸다.
서현우씨는 "이 사건을 대중적으로 공론화시키기 위해서 소설을 썼다"며"의혹을 제기하면서도 무겁지 않게 오히려 흥미롭게 이야기를 다룰 수 있어서 소설이라는 형식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단순한 소설로만 보이지 않는다. 이 작품은 다양하고 무수히 많은 자료들을 수집한 결과물로 일종의 다큐멘터리 성격으로 읽힌다.
실제로 서현우씨가 늘 가지고 다니는 커다란 여행가방에는 관련 서적들과 한국신문, 일본의 주간신조와 아사히신문 등 많은 외신 자료들, 그리고 대한항공 수색일지와 교통부 등에서 입수한 자료, 또 김승일 부검 감정서, 수사보고서, 판결문 등 상당한 자료가 있다.
그는 현재 'KAL 858기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 내 진상조사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고, 한 방송사와 KAL기 폭파사건에 대한 의혹을 다룬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새로운 의혹 추가해 보강판 출간
서현우씨는 "원래 이 사건이 터진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의혹의 목소리가 대학가의 대자보나 재야의 목소리로 그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 하다가 수지김 사건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아 소설을 집필할 결심을 구체화하게 되었다"고 소설을 쓰게 된 계기를 밝힌다.
서현우씨는 보강판을 내게 된 이유에 대해 "자료를 계속 수집하고 사건을 추적하면서 사건에 대한 의혹이 더 생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소설 <배후>의 초판은 아부다비에서 내린 15명의 정체, 바레인의 야코비안 박사가 김현희는 음독한 적이 없다는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서 제기한 의혹, 외신에 근거한 김현희의 출신에 대한 의혹, 군사전문가의 견해를 빌은 콤포지션4와 액체폭탄 PLX라는 폭약에 대한 의혹을 담았었다.
서현우씨는 "책 출간 이후 더 많은 자료들을 수집하고 취재해 이번 보강판에는 더 구체적인 자료에 근거해서 더 많은 의혹들을 담았다"며 "김현희와 김승일의 행적이라든가, 대한항공과 정부 당국의 이해할 수 없는 초기대응, KAL 858기 기체 내역 등에 대한 의혹을 첨가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보강판에는 사진 자료도 추가했다.
정형근과 <배후>
지난 7월 9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는 정형근 국회의원이 고영구 국정원장에게 소설 <배후>가 KAL기 사건 조작설을 제기하는 것에 대한 대응책을 요구한 일이 있었다. 정형근 의원은 "말도 안되는 내용으로 진실을 호도하면 되겠느냐"며 국정원에 대응책을 촉구한 것이었다.
서현우씨는 이 소식을 듣고 7월 22일 각 언론사에 공개질의서와 보도자료를 돌렸으나, 어떤 언론도 다루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언론이 사건에 관심을 갖지 않아 많이 섭섭했겠다는 기자의 말에 "그동안 가족들이 얼마나 서럽고 외로웠을까 하고 느끼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386세대로 민주화운동을 하다 '별'을 달기도 했다. 또한 그는 여행광이기도 한데, "가까운 일본부터 유럽대륙, 미국과 중남미대륙 등 수많은 곳을 여행했으며, 그 여행들이 소설을 쓰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서씨는 현재 이 사건에 대한 수많은 의혹들을 10가지 정도의 카테고리로 분류해 관련 자료집을 정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민족문제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의 대북정책, 그리고 동북아 정세에 많은 영향을 미친 이 사건을 놓아두고선 역사가 진전할 수 없다"며 "지금 진상규명의 기회가 왔다"며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 | <배후>에서 나온 새로운 의혹 | | | 다른 부유물과 350k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구명보트 | | | |
| | | ▲ 인양 결과 보고서에서 나온 구명보트와 발견 위치 | ⓒ서상일 | 소설 <배후>는 소설이라는 틀을 빌리면서도 신뢰할 만한 자료를 바탕으로 사건에 의혹을 제기한다. 예를 하나 들면, 구명보트가 발견된 장소가 다른 부유물들이 발견된 장소와 전혀 다르다는 의혹이다.
1987년 12월 10일과 12일 미해군 초계기 P3C가 어디스(URDIS, 미얀마 남부 해안의 항공기 위치 통보 포인트) 남서쪽 해상 부근에서, 그리고 12일 버마 공군 F-27기가 어디스 남방 코코섬 부근에서 부유물을 발견한다.
미공군과 버마 공군의 수색보고에 따르면, 이 부유물들은 비행기의 잔해가 틀림없는 노란색 또는 오렌지색 구명조끼와 비상탈출 미끄럼대 등이었다. 그리고 그 부유물들이 발견된 위치는 어디스 부근, 즉 북위 13도, 동경 94도 부근이었다.
해상 수색이 시작되자 이렇게 부유물들이 막 발견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때, 전혀 다른 곳에서 구명보트가 발견된다. 구명보트의 발견 위치는 북위13도 동경 97도 부근으로 다른 부유물들과는 약 350킬로미터나 떨어진 버마 연안이었다.
즉 당시 언론의 관심에서 사라지고 공개되지 않은 다른 부유물들은 모두 북위 13도 동경 94도 부근에서 발견되었는데, 이상하게도 언론에 공개된 구명보트만이 북위 13도 동경 97도 부근인 엉뚱한 곳에서 발견된 것이다.
<배후> 152쪽부터 153쪽까지 이러한 내용을 설명하는데, 이는 상상으로 꾸며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자료에 근거를 두고 작가가 구성한 것이다(사진참조). 이 순간 <배후>는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다큐멘터리같은 느낌이 든다. / 서상일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