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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대 대표단은 21일 최병렬 대표를 만나 한나라당의 수신료 분리징수 개정안 철회를 거듭 촉구했다.
국민연대 대표단은 21일 최병렬 대표를 만나 한나라당의 수신료 분리징수 개정안 철회를 거듭 촉구했다. ⓒ 신미희

"KBS가 매달 시청자들에게 직접 심판받도록 하겠다."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TV수신료 분리징수를 위해 방송법 개정을 강행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로써 한나라당과 방송법 개정을 반대하는 학계·사회노동단체 등 시민진영의 전면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최 대표는 21일 오후 '공영방송지키기국민연대(국민연대)' 대표단과의 면담에서 "그동안 KBS는 공정성을 심대하게 상실했고 경영에도 문제가 많았다"면서 "공정성을 확보해달라고 계속 요구했지만 더 이상 얘기가 안돼 결국 '법대로' 하기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날 국민연대에서는 신학림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 위원장, 김영삼 언론노조 KBS본부 위원장, 최승호 언론노조 MBC본부 위원장, 이상철 언론노조 EBS지부 위원장, 이명순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 신병호 통일연대 대표, 진관 스님 등 7명이 참석했다.

한나라당에서는 최 대표를 비롯해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한나라당 간사인 고흥길 의원과 비서실장 임태희 의원, 당 실무자 등이 배석했다.

"KBS 보도는 괜찮은데 일부 프로그램이 문제"

한나라당 "반드시 통과시킨다"
방송법 개정안 '강경방침' 고수할 듯

한나라당과 시민사회진영의 '수신료 분리징수'를 둘러싼 전선은 어떻게 될까. 한나라당은 현재 이번 회기에 방송법 개정안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는 21일 '공영방송지키기국민연대'와의 면담에서도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상황까지 와버렸다"고 밝혔다. 고흥길 의원도 지난 19일 서울YMCA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KBS가 차제에 다소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한나라당 주요 당직자회의에서는 "만약 KBS와의 정치적 협상으로 이번에 개정안이 처리되지 못한다면 KBS측 요구에 말려드는 것"이라는 강경론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도 "정기국회 내에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게 한나라당의 생각"이라고 거듭 밝혔다.

그러나 국회에서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이 거부될 경우 국회 일정이 달라지므로 방송법 개정안 추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 구영식 신미희 기자
최 대표는 KBS에 공정성과 관련, 수개월 동안 여러차례 의사를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또 지금과 같은 직접적인 대립으로 가지않기 위해 구체적인 요구를 하는 등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덧붙였다. 최 대표는 "그러나 KBS에서는 끝까지 제대로 된 말 한마디 없었고, 오히려 KBS PD협회는 한나라당을 비난하고 나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대표는 KBS가 공정성을 상실한 사례이자 수신료 분리징수를 검토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로 '송두율 교수' 관련 프로그램을 거론했다. 또 '생활정치네트워크 국민의힘'과 관련해 두차례 프로그램을 방영한 것도 편파적인 경우로 꼽았다.

그는 "DJ정부 시절부터 북한 노동당 서열 23위인 송두율을 민주 투사인 것처럼 만드는 게 공영방송인가"라며 "라디오와 다른 시사프로그램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목했다. 이에 반해 "KBS 보도는 공정성에서 치명적인 침해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며 호평을 보냈다.

최 대표는 "KBS는 관련 책임자를 징계하지도 않고, 정연주 사장이 국정감사에서 구두 사과하는데 그치는 등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비효율적인 경영에 대한 문제도 제기했다.

이에 따라 수신료를 거두는 방식을 바꾸면 KBS가 직접 돈을 내는 시청자를 의식, 공정성 확보에 신경쓸 것으로 보고 방송법 개정을 추진했다는 게 최 대표의 일관된 주장이다. 최 대표는 면담 내내 "수신료 분리 징수는 KBS 자금줄을 차단하는 게 아니라 돈받는 방식을 바꾸는 것"임을 강조했다. 수신료나 공영방송 자체를 없애자는 차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 대표는 "국민도 KBS가 공정하지 않으면 수신료를 내지 않을 권리가 있다"며 "KBS가 좀더 긴장해서 공정성을 담보하자는 차원일 뿐 다른 뜻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결국 시청자들이 KBS 프로그램을 매달 평가해서 공정하다고 생각하면 수신료를 내고 그렇지 않으면 내지 말게 하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최 대표는 수신료를 주요 재원으로 하는 EBS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EBS는 사교육 문제해결에 긍정적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인정한다"며 "이번 건과 별개로 EBS 재원은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영방송 근간을 흔들겠다는 의도"

그러나 국민연대는 최 대표 주장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국민연대는 "특정 프로그램이 문제가 있으면 법적 절차를 통해서 조처하면 될 것"이라며 "굳이 수신료 분리징수를 강행해 공영방송의 근간인 재원구조를 흔들겠다는 의도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국민연대는 KBS 프로그램의 공정성에 대한 기준이나 평가에 대해서도 시각을 달리 했다. 이명순 민언련 이사장은 최 대표에게 "송 교수를 다룬 <한국사회를 말한다>와 문제가 있다는 프로그램을 직접 봤는가"라고 묻고 "그동안 방송을 모니터해본 결과, 현재 KBS 프로그램이 30여년 역사에서 가장 공정하다는 게 시청자들의 평가"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최 대표는 과거 권위주의 시절과 달리 정권으로부터의 독립이 상당 부분 이뤄졌다는 방송사 노조위원장들의 인식에 대해 "이제는 공영방송들이 자발적으로 정부 편을 들더라"며 이견을 나타냈다.

또 수신료 분리징수가 단지 징수방식의 변경에 그치지 않고, KBS는 물론 MBC와 EBS 등 전체 공영방송의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는 게 국민연대의 우려이다. 김영삼 위원장은 "수신료를 분리징수하면 KBS 재원이 큰 타격을 받게 돼 1TV도 광고를 다시 해야만 한다"며 "이로 인해 광고주와 시청률의 영향을 더 받게 돼 한나라당이 의도한 공정성 확보는 훨씬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국민연대는 한나라당이 내세우는 공영방송의 공정성 강화와 시청자의 방송선택권을 위해 방송법을 개정하려면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학림 위원장은 "새시대 방송환경을 담을 수 있도록 전체 틀에서 방송법을 개정해야지 '분리징수' 단서조항 하나 넣는 법안 제출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영삼 위원장 역시 "수신료를 매달 직접 걷으라는 것은 국회의원 세비를 국민들에게 매달 받으라는 얘기와 마찬가지"라며 "사회적 합의를 거치지 않고 급박하게 추진 중인 이번 방송법 개정을 철회해 줄 것"을 요구했다. 더불어 "수신료 제도 개선을 포함한 방송법 개정에 시민단체와 국민 의견을 타진할 수 있도록 KBS에 답할 시간을 달라"고 주문했다.

국민연대 대표단은 한나라당의 수신료 분리징수 개정안 철회를 거듭 촉구했으나 최 대표는 "한나라당 의원들도, 나 자신도 KBS가 잘해주길 바란다"는 원론적인 답변에 그친 채 즉답을 피했다.

한편, 최 대표는 이날 KBS에 대한 한나라당의 속내를 엿볼 수 있는 언급으로 눈길을 끌었다. 최 대표는 "솔직한 얘기로 더이상 (KBS와) 얘기가 안된다"는 표현을 수차례 사용했다. 또 "공정성 확보를 해달라는 요청에도 조금도 개선되지 않아 'KBS가 알아서 하는데 달렸다'는 엄청난 경고까지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방송과 전면전을 벌이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는 점을 역설하기도 했다. 최 대표는 "KBS 상대로 대립관계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KBS PD협회가 사과하라고 한번도 아니고 몇 번이나 말했으나 대꾸 한마디 없었다, KBS는 그간 계속 우리당의 이야기를 무시했다, 그래서 나도 어쩔 수 없다, 이같은 상황에서 논리는 더 이상 안된다"고 말했다.

'최틀러식 호통 면담' 긴장 팽팽
최 대표 책상 내리치며 격앙...기선 제압용?

ⓒ오마이뉴스 이종호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와 국민연대의 면담은 시종일관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최 대표는 면담 시작과 함께 국민연대 대표단이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에 대해 잇따라 항의하자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최 대표는 5분여 동안 두세 차례 책상을 내리치고 대표단에게 호통을 치는가 하면, 얼굴을 붉히는 등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강단 있고 불같은 성격으로 인해 붙여진 '최틀러'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최틀러(최병렬+히틀러)'는 <조선일보> 재직 시절, 나태해진 후배들의 분위기를 휘어잡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면 딱 한 사람을 지목해 눈물날 정도로 혼을 냈던 그의 스타일에서 비롯된 별칭이다.

그러나 여론수렴을 위해 마련된 시민·노동단체 대표자들과의 면담에서 보여진 최 대표의 이같은 언행은 공당 대표로서 적절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날 면담의 한 참석자는 "국민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할 야당으로서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라며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다른 참석자는 "기선 제압을 위해 그렇게 한 듯하지만, 감정적인 처사에 매우 실망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험악했던 5분여 동안 양측이 벌인 격론이다.

신학림 언론노조 위원장 "이 방에 들어오니 5공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다. 아래 의원들로부터 언론에 대한 잘못된 법안이 올라오고 하면 최 대표가 제지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최병렬 대표 "우리 입장에서는 여기까지 안 오도록 (KBS에) 몇 번이나 얘기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KBS와 악연 있는 사람이다. 예전 KBS 노조가 불법파업하고 방송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서 공권력을 투입, 문제를 해결하는데 대해 언론인 출신으로 엄청난 부담을 느꼈다. 지금도 KBS에 대해 마음 한 구석이 개켜 있다.

끝까지 이런 식으로 안 가도록 나름대로 여러차례 알아들을 만큼 얘기했고, 구체적으로 요구를 한 적도 있다. 그런데 (KBS가) 끝까지 제대로 된 말 한마디 없이 여기까지 왔다. 물 쏟아지고 나서야 사장도 간부도 찾아왔지만,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상황까지 와버렸다."

최승호 언론노조 MBC본부 위원장 "한나라당 방송법 개정안 배경에 KBS에 대한 감정이 있다는 뜻인가."

최 대표 "기본적으로 두 가지 점이 있다. 수신료 자체에도 문제가 있고 프로그램 내용의 공정성 문제도 있고 양면성이 있다. 어느 한 면만 갖고 얘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김영삼 언론노조 KBS본부 위원장 "프로그램의 공정성 문제가 있다고 해서 수신료 징수를 분리하겠다는 것은…."

최 대표 "방송을 제대로 하는 것을 전제로 수신료를 한전에 연결시켜서 한 것 아닌가."

김 위원장 "방송이 공정하지 못했을 때는 방송위원회 심의 등 법적 절차와 장치 등이 있다. 그런데도 공영방송 재원문제 자체를 건드려서 손을 보겠다는 발상은…."

최 대표 "공영방송 자체를 건드리는 게 아니다. 공영방송 재원조달 방식을, 그동안 턱도 없이 도움 주던 것을 정상화시키자는 것이다. (목소리 높아지며) 내가 언제 수신료 폐지하자고 했는가? 왜 말을 그렇게 하는가?"

김 위원장 "이윤성 의원은 수신료 문제를 핵폭탄이라고 했다."

최 대표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책상 내려치면서) 나한테 그런 말하려면 그동안 KBS와 우리 사이에 무슨 얘기 있었는지 알고 해라. (고성) 몇 번이나 (KBS에) 얘기 했잖는가, 몇 번이나. 말 한마디 없이 갈 데까지 가버려 놓고. 그렇게까지 얘기했는데도 지금 와서 어떻게 하란 말이냐."

김 위원장 "감정적인 언사 갖고 말하면…."

최 대표 "무슨 감정적인 언사냐."

김 위원장 "공당 대표로서."

최 대표 "공당 대표로서 틀린 말 한 게 없다. KBS가 제대로 하는 것을 전제로 수신료를 전기요금하고 연결시켜준 것 아닌가.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수신료 제도 없애라는 것 아니다. 징수방법을 바꾸라는 것이다."

고흥길 의원 "진정하고 얘기하자."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 "우리가 언쟁하자고 여기 온 것 아니다. 한나라당에서 우리 입장을 고려하고, 방송법 개정에 대한 문제의식을 들어달라는 요구를 하러 온 것이다."

최 대표 "말을 그렇게 하니까 그렇지 않느냐. 그런 식으로 남의 얘기에 시비를 걸면 어떡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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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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