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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산이나 드높고 푸른 하늘, 공원에 가득 쌓인 낙엽이 어찌 어른들만의 것이겠는가. 어찌 어른들의 감성만 살찌우는 어른들만의 전유물이랄 수 있겠는가. 가을은 아이들의 눈에도 충분히 아름다울 것이고, 그래서 누리고 싶은 계절일 것이다.

▲ 가을을 담는 아이
ⓒ 장영미
어른들은 입으로 탄복하며 아름다움을 토해낼 것이지만, 아이들은 반짝이는 까만 눈망울 속에, 순진한 마음 한 켠에, 뇌리 깊숙한 세포 쪼가리의 어느 한 구석에 순간순간의 가을을 차곡차곡 담아 둘 터이다. 아이들은 결코 미사여구를 동원해 아름다움을 노래하지 않는다. 다만 빛나는 미소로, 쌩쌩 달리며 일으키는 바람 소리로, 깔깔거리는 웃음 소리로, 어설픈 장난으로 가을을 노래할 뿐이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얕고 높은 산들로 둘러쌓인 작은 분지 도시이다. 베란다에 나가서 빙 둘러 보면 북쪽과 동쪽으로는 야트막한 산이 가까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조금 얕은 산등성이 뒤로 '미나미 알프스'라 불리는 눈덮인 산악지대가 눈에 들어온다. 물론 남쪽으로도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있다. 그리고 우리집에서는 보이지않지만 시야가 탁트인 곳에서는 동남쪽으로 그 유명한 후지산이 버티고 서 있다.

이런 곳에 살면서 자연을 만끽하지 못한다면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것 같아서 오늘도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집을 나섰다. 이틀 동안 비가 내렸건만 햇살이 눈부셨던 오늘 하루는 정말 따뜻했다.

이틀 새에 산의 나무들이 더욱 아름다운 옷으로 갈아입은 걸 신기하게 여기며 바라보았다. 아이는 어젯밤 꿈에 빨갛게 물든 산을 보았노라며 그게 꿈이 아니었던 모양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자연이 부리는 조화에 이 나이에도 가슴이 널뛰 듯 하니, 이것도 병이다 싶다.

투명한 공기를 뚫고 쏟아지는 온화한 햇살을 받으며 자건거를 내달려 간 곳은 어떤 신사 옆에 있는 넓은 운동장이 딸린 공원이었다. 산 끝자락에 닿아있는 놀이터였는데 거기엔 아직 가을의 여운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단풍과 낙엽, 알록달록한 놀이기구들과 그 위로 비치는 귀로의 햇살, 아이들의 건강한 몸놀림이 더없이 평화로운 한 때를 만들어주었다.

공원으로 들어서자 처음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좀 실망스러웠는데 혼자 자라는 우리아이는 별로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놀이기구를 향해 질주해 가는 거였다. 우리아이의 소리를 들었는 지 산자락의 수풀 새에서 여자아이 두 명이 정답게 걸어 나왔다. 몸집으로 보아 우리 아이와 비슷한 또래이거나 어리겠구나 싶었는데 말을 걸어보니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이었다.

▲ 돌려라 돌려! 지구를 돌려라!
ⓒ 장영미
한국 아이들에 비해 일본 아이들이 좀 작은 모양인지 사람들이 우리 아이를 제 나이보다 한 두살 쯤은 더 크게 본다. 오늘 만난 아이들은 일본 아이들 중에서도 작은 편인 것 같았는데 아주 귀엽고 깜찍한 외모를 갖고 있었다. 우리 아이가 머쓱한 말투로 "같이 놀자"고 말을 건네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래"라고 선뜻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고있자니 아이들의 천진스러움에 저절로 미소가 배어나왔다.

▲ "이건 나이 순서대로 타자"
ⓒ 장영미
한편으론 부러웠다. 이것저것 따져가며 사람을 사귀는 내 모습이 떠올랐고 순간 부끄러웠다. 이상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사람사귀기가 쉽지않다. 저 사람이 과연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몰라 경계부터 하게 되고, 혹시 내게 해를 끼치는 사람이 아닐지 살피게 되고, 말이 통하는 사람일지 떠보게 된다. 내 편인지 적인지 알게 될 때까지는 결코 속마음을 내보이지도 않는다.

나도 처음부터 그런 식으로 사람을 사귀지는 않았다. 지금 눈 앞에 있는 아이들처럼 누구하고든 스스럼없이 친구가 되었고, 철이 들면서 조금 따지게 되긴 했어도 낯가림을 하거나 만남을 주저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점점 낯가림을 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동안의 낯선 환경 탓에 주눅이 든 것일까? 내게 호의적인지 아닌지를 살피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상대의 요모조모를 따지게 된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인터넷 속에서 내 낯가림은 더욱 심해진다. 상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채팅을 하고 생각을 나누는 행위들이 얼마나 의아하게 여겨지는지 모른다. 나 자신이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표방하는 인터넷 신문에 글을 올리고 있으면서도 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에 적잖이 소극적인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아이들을 본다. 늦가을 속에 웃음을 뿌리며 재잘거리는 아이들이 보인다. 아직 어눌하기만한 일본어로 맘껏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는 한 아이가 거기에 있고, 자기들보다 키가 큰 동생을 상대로 놀이를 설명하는 두 아이가 있다.

▲ 뱃머리 회담
ⓒ 장영미
초등학생과 유치원생이란 차이가 가져온 것인지, 일본 아이와 한국 아이라는 차이에서 비롯된 것인지, 친한 사람과 낯선 사람이 어울린 때문인지 두 아이가 원하는대로 놀이가 이루어지지않는 모양이었다. 제가 좋아하는 다른 놀이기구로 달려가는 아이와 실망스러운 듯한 두 아이가 그 뒤를 쫓는다. 그래도 다투지않고 놀이를 이어가는 아이들이 새삼 고맙다.

어느 틈엔가 좀 멀리 떨어진 긴의자에 앉아서 지켜보고 있던 아이의 엄마가 내게로 다가왔다. 한마디 인사만 나누었는데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고, 차분하고 조용한 사람이란 느낌이 들었다. 역시 어른들은 쉽게 친구가 되지 못했다. 몇 마디를 나누고는 더이상 할 말이 없어졌다.

아이들이 간식을 달라고 그이에게 달려갔다. 마침 우리도 물 대신 야쿠르트 3병을 챙겨서 왔는데,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을까, 세 아이들에게 한 병씩 나누어 줄 수 있었다. 우연히도 세 아이 모두 외동딸로 외롭게 자라는 아이들이었다. 서로 욕심내지 않고 사이좋게 나눌 줄 아는 걸 보니 흐뭇하다.

▲ 가을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타고...
ⓒ 장영미
우주선과 배를 오가며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늦가을 녘 오후를 수놓고 있었다. 아이들도 이렇게 아름다운 햇살과 낙엽과, 단풍이 어우러진 멋진 장면을 마음 속 어딘가에 담고 있겠지. 지금은 별 생각 없이 그것들을 쭈욱 빨아들이고 있겠지만, 그렇게 해마다 찾아오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아름다움을 차곡차곡 쌓아서 언젠가는 시를 쓰고, 글을 끄적이며, 노래 하는 때가 오겠지….

높고 낮은 산들로 둘러쌓인 이곳은 해가 일찍 저문다. 게다가 해가 지는 서쪽으로 ‘미나미 알프스’의 준령들이 솟아있어서 짧은 햇길을 더 짧게 만든다. 4시를 지나면서 햇님은 벌써 자취를 감추었고 어슴푸레하게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놀이에 손발을 맞출 수 있게 되었는데 어느덧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아이들은 친해지기 쉬운 만큼 헤어지기도 쉬운 모양이다. “잘 가, 다음에 또 놀자”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각자의 집으로 총총히 사라져간다. 그러나 다음에 만나리란 것을 기약하긴 어렵다. 곧 추운 겨울이 닥칠테고 당분간 이 놀이터에서도 아이들의 그림자를 찾긴 어려울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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