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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지나고 들녘이 비워져 편안해 보이는 즈음 추곡수매를 한다. 학교 앞길에 논밖에는 새벽부터 트럭이나 경운기에 실려온 벼들이 쌓여있다.

벼 가마니 사이로 동네 사람들은 집안 대소사 안부와 농사이야기, 요즘 돌아가는 농업정책 때문에 웃기도 하고 인상도 쓰면서 모여든다.

작년에는 처음 보는 광경이 신기해서 교사인 내 호기심만 충족시키기에 바빴지만 오늘은 좀 느긋하게 아이들을 데리고 이것저것 함께 구경하기로 했다.

▲ 나도 타보고 싶어요
ⓒ 신영숙
컨베이어에 올라가고 있는 벼 가마니가 신기하다면서 한참을 들여다보던 상준이 녀석은 "선생님, 나 좀 저기 태워줘요. 나도 타 보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놀이기구처럼 재미있을 것 같다면서 타보고 싶단다. 하지만 탈 수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컨베이어에 탄 똑같은 무게, 똑같은 포대에, 똑같은 벼들이 되어 똑같이 트럭에 실려 가는 것을 바라지 않기에 난 아이들을 태우지 않을 것이다(물론 위험하기도 하다).

수매장에서 일하는 아저씨들은 아이들이 벼 가마니 사이로 다니는 것이 귀찮을 것 같은데, 웃는 얼굴로 교사인 나보다 더 가르쳐주려고 하신다.

▲ 이것이 갈고리라고? 후크선장 손이네.
ⓒ 신영숙
"이것은 갈고리인데 한 번 만져 봐라."

갈고리 두 개로 콕 찔러서 컨베이어에 올라탄 벼들은 봄, 여름, 가을 수고로운 농부의 노고에 수매장 한 장 쥐어주고 트럭에 실려 가버린다.

등급을 매기는 검사원이 찍는 도장이 특등, 1등, 2등, 3등, 잠정등외로 서열을 정하는 것을 보고 특등이라고 하면 "좋겠어요. 좋아요"하고 환호하고, 2등이라면 "에이-. 에이-"한다. 아이들도 농사 지은 벼에 등수를 정한다는 것이 못내 껄끄러운지 "아저씨, 다 1등 해줘요"라고 애교도 부려본다.

▲ 세상에 이런 저울도 있구나!
ⓒ 신영숙
추곡 수매장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제일 관심 갖게 하는 것은 저울이었다. 처음 보는 아이들은 이것은 무엇하는 것일까? 묻는 내 질문에 "태우고 가는 것이에요"라고 말한다.

이동할 때 쓰는 수단으로 생각하자. 옆에서 듣던 할아버지 두 분이 오셔서 친절하게 추부터 설명하신다. 추는 10kg 두 개, 20kg 한 개가 있다고 보여주고 만져보게도 해주시더니 한 명 한 명 올라서 보라고 하시곤 몸무게를 재 주신다.

"어이쿠, 한 놈으론 부족하다. 너까지 올라가 봐라. 봐라. 여기 둘이서 올라가니 추가 위로 딱 붙지?"

마냥 신기하기만 한 아이들에게 뒷동네 아저씨 한 분은 등급을 매기려고 빼낸 벼를 보여 주곤 손으로 비비면서 "이 건 벼인데 이 것을 방앗간으로 가서 껍질을 벗기면 쌀이 된단다"라고 알려준다.

▲ 아저씨, 제발 1등하게 해주세요.
ⓒ 신영숙
"너희들, 빵먹지 말고 우리 농산물을 먹어야 한다. 밥 많이 먹으라고-. 알것지?"
"예-."

가지고 간 종이를 가마니에 대고 추곡 수매장에서 보았던 것을 그려보라고 했더니 아이들 그림엔 모두 할아버지가 있다.

아이들 눈에 추곡수매장에 계신 시골 사람들이 모두 할아버지만 보였으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러고 보니 작년보다 수매하려고 나온 벼들이 더 적다.

올 태풍으로 수확이 적어서인지 힘들어서 산골짜기 논배미들을 묵힌 것인지. 아이들과 돌아오는 길에 운동장에서 성민이는 자꾸 묻는다.

"선생님, 그런데 판다고 해놓고 돈은 왜 안 주는 거예요?"

▲ 마음에 추곡수매장 풍경 담기
ⓒ 신영숙
교실에 돌아와서 얻어온 '추곡수매증'을 보여주면서 농협 가서 찾아 오는 거라고 했더니 효심 넘친 우리 선규는 날 따라다니면서 집에 갈 때까지 '추곡수매증'을 달란다.

"우리 아빠 돈 없으니까 줄건데…."

그냥 내내 웃기만 하니 와서 등까지 툭툭 치면서 조른다.

"왜 웃기만 하고 안줘요?"

농산물 개방이 추곡수매장마저 과거 속의 추억의 풍경으로 떠오르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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