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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메이징 쇼 중의 이집트쇼. 게이쇼는 다양한 볼거리는 있으나 전문성은 없어 보인다.
ⓒ 김정은
동남아 관광의 트렌드 '게이쇼'

태국을 여행한 사람 치고 게이쇼 구경을 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정도로 테국은 게이쇼라는 상품으로 톡톡히 외화벌이를 하고 있다. 그런 태국을 본받으려는 듯 필리핀도 <어메이징쇼>라는 게이쇼를 만들었다. 이제 게이쇼는 동남아 관광의 독특한 트렌드로 자리잡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게이쇼가 열린다는 마닐라 필름센터로 향했다.

겉 보기에 이런 쇼를 하기에 적합하지 않게 생긴 마닐라 필름센터는 원래 필리핀 영화 산업 육성을 목적으로 이멜다에 의해 개관되어 필리핀 영화 산업의 중심 역할을 했다. 그 속깊은 사연은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게이쇼 공연장으로 이용된다는 소리를 들으니 왠지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

▲ 어메이징 쇼 중 알라딘과 요술램프 편. 게이쇼의 특성은 100%로 립싱크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 김정은
태국 파타야의 '알카자 쇼'나 푸켓의 '사이먼 쇼'장은 입구부터 네온 사인으로 뒤범벅을 하고 화려한 극장식 카바레 쇼의 분위기를 맘껏 뽐낸다. 이에 반해 이 어메이징쇼는 입구부터 너무나 점잖다고나 할까? 마치 무슨 음악회 구경을 온 것 같은 분위기라서 좀 의아했다. 원래 용도가 게이쇼 전용 극장이 아니어서 다른 게이쇼장의 분위기와 다른 게 아닌가 한다.

매일 오후 7시와 9시 두 차례 공연이 이루어지는 이 쇼의 내용은 일반 게이쇼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마디로 100% 립싱크로 이루어진 각국 무용의 흉내 내기쇼라고나 할까? 쇼의 내용은 그야말로 흉내내기에 불과했을 뿐 전문성은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우리 나라의 전문 가수도 방송 중에 대부분을 립싱크를 하는 상태인데 하물며 흉내만 내는, 가벼운 볼거리인 게이쇼에서 예술성이라든가 숙련성, 라이브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겠지만 말이다.

내용은 별다른 줄거리는 없이 그냥 이집트의 파라오의 로맨스가 나오다가 에덴 동산의 아담과 이브와 뱀이 나오더니 갑자기 알라딘의 요술램프로 바뀌기도 하고 대나무춤처럼 보이는 필리핀 전통춤에서부터 훌라춤, 볼룸 댄스에 이르기까지 좋게 말해서 버라이어티(?)하고 나쁘게 말하면 잡탕의 느낌이 나기도 한다.

▲ 어메이징쇼 중 한국편. 뾰족 구두를 신고 한복을 입은 무희들이 야광부채를 들고 윤도현의 <아리랑>에 맞춰 부채춤을 추고 있다.
ⓒ 김정은
물론 주 관광 대상 국가인 한국, 일본, 중국과 관련된 코너도 있다. 한국은 윤도현의 <아리랑>에 맞춰 한복에 하이힐을 신은 무희들이 야광 부채를 들고 부채춤을 추고, 중국편은 빨간 옷을 입은 남녀 가수 여러 명이 나와 중국 가요를 합창하는 식으로 점잖은 편이다. 일본편은 기모노를 입은 못생기고 뚱뚱한 두 게이가 나와서 예전 엔카에 맞춰 과장된 연기를 하며 웃음을 유도하면서 일본인을 약간 희화화시키고 있었다.

단기간이었지만 과거 일본에 침략을 받았던 역사 때문에 일본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아서일까? 일본인이 아닌 사람들은 배꼽을 잡으며 맘껏 웃었겠지만 일본인은 이 쇼를 보고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졌다. 쇼는 쇼일뿐 거창한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고 보면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민감한 건지도 모르겠다.

아리랑 반주에 맞춘 한국의 부채춤은 이곳 어메이징쇼뿐 아니라 태국의 알카자쇼나 사이먼쇼에서도 등장하는 소재이다. 하지만 아리랑 곡조도 어설프고 한복은 더 어설프기 마련이다. 이곳에서는 그래도 윤도현의 <아리랑>이라는 최신 버전(?)을 들고 나와 좀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쇼가 끝난 후 이 쇼가 한국의 월드컵 이후로 생겼냐고 물었다. 월드컵 이전에는 태국의 쇼처럼 그냥 보통 아리랑을 반주로 이용했는데 월드컵 이후에 윤도현이 부른 <아리랑>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역시 월드컵의 파급 효과는 대단했다.

게이쇼의 원조는 필리핀?

쇼가 끝나고 촬영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일렬로 줄 서 있는 게이들의 행렬을 어색하게 통과하며 호텔로 돌아가려니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한다. "유명하다는 파타야의 알카자쇼도 설립 초기만 하더라도 태국의 게이들이 부족해 필리핀의 게이들을 불러와 만들었다. 오늘날의 알카자쇼가 있기까지는 필리핀 게이들의 노고가 컸다." 그리고 태국에서 '카토이'라고 부르는 태국 게이들과는 다른, 필리핀의 문화적 성향에서 자연스럽게 출현된 필리핀 게이의 역사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의 등교하는 뒷모습. 필리핀은 스페인 식민지 교육이 영향으로 여성들의 교육 수준이 더 높다.
ⓒ 김정은
내면적 계층 상승 욕구의 표현, 필리핀 게이

필리핀은 다른 이웃 국가보다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고 지위 또한 높다. 이는 스페인이 취한 독특한 식민 교육의 영향 탓이기도 한데 그 식민 교육의 요지는 폭동을 일으킬 위험이 큰 건장한 필리핀 남성들은 교육을 시키지 않는 대신 비교적 조정하기 쉽다고 본 필리핀 여성들을 교육시킨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분위기 탓에 지금도 필리핀 여성들의 교육 수준은 매우 높은 편이다.

이러다 보니 계층을 상승시키고 싶다는 내면적인 욕구가 남자보다 더 대접받는 여성이 되고 싶다는 여성 선호 의식으로 발전되면서 나름대로 표현된 형태가 바로 필리핀 게이가 아닐까 한다는 추측성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듣다 보니 과연 그러한 경제적 사회적 이유만으로 본래의 성을 바꿀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어느 정도 그런 분위기의 영향도 있을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기준은 자신들만의 정체성 때문이 아닐까?

갑자기 <나의 장미빛 인생>이란 영화에서 스스로를 여자라 확신하는 7살 남자 아이 뤼도빅의 대사가 떠오른다.

"원래 나의 염색체는 XX였는데 신의 불찰로 X 염색체 하나가 Y 염색체로 바꿔버렸다. 언젠가는 신이 나에게 바뀌어진 X 염색체를 가져다 주실 것이리라."

아마 게이쇼에 나오는 그들 또한 뤼도빅처럼 신이 X 염색체를 가져다 줄 것을 기다리다 지쳐 외형만으로도 여자가 되고자 한 사람들이 아닐까.

'관광도 산업이다'라는 명분에서 너도 나도 게이쇼를 상품화에 열 올리고 있는 분위기를 보면서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게이쇼와 함께 한 필리핀의 밤은 쇼 안에서의 현란한 조명이 꺼진 무대 뒤의 공허함을 안겨 준 채 그렇게 지나갔다.

허기진 배를 달래려 과일 가게를 들려 풍부한 열대 과일을 여러 종류를 한가득 사서 배가 부르도록 먹었지만 정체 모를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은 채 필리핀의 두 번째 밤이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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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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