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03년도 이제 달력을 한 장 남겨놓고 있다. 누구라도 연말이면 그 해에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반추하게 마련이다. 올 한 해도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참으로 다사다난했다. 하지만 내가 40년 이상을 살면서 올해처럼 다사다난했던 한 해는 다시 없었기에 이처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오마이뉴스 2003년 나만의 특종 원고>에 글을 올린다.

최근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세계 1위라고 한다. 최근 주변에서 이혼하여 괴롭게 살고 있는 지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결혼식을 올릴 당시엔 모두가 "해로동혈을 하겠다"고 약속했던 사람들이 그처럼 이혼을 여반장하듯 하니 참으로 안타깝다.

부부란 무엇이며 또한 가정이란 무엇인가. 부부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가면서 '인생'이라는 여정을 함께 하는 동반자이며, 가정이란 평온과 가족간의 사랑만이 가득해야 할 곳이리라.

그럼에도 IMF 때보다도 더 지독한 경제난으로 이혼의 파경을 맞고 그에 따른 수순인 가정해체가 가속화되고 있어 우려하는 바가 적지 않은 것이다.

돈이야 없으면 다시 벌 수 있고, 악화된 건강도 치료를 하면 다시 회복될 수 있다지만 한 번 깨진 가정은 유리병과도 같아 회복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파경'은 그 회복이 불가능함을 인식하게 하여 더욱 견고한 가정의 정립에 최우선을 두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각설하고 비로소 고백하건대 나는 금년 1월에 22년을 살아왔던 아내와 이혼을 했다. 그건 해일처럼 닥쳐온 빈곤이 불러온 필연적인 일이었다.

카드사들의 "연체된 카드대금을 갚으라"는 빗발치는 독촉은 가히 저승사자를 능가하는 고문이었다. '가난이 앞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은 옆문으로 달아난다'는 속설을 실증적으로 느꼈다.

법원에서 판사의 명(命)에 의해 우리 부부의 협의이혼이 성립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1분도 안 되었다. 하지만 아내와 이혼 후에 절망의 늪에 빠진 나는 세상살이에 대한 의욕을 모두 잃어버렸다. 허구한 날 폭음으로 낮과 밤을 모른 채 비치적거렸으며, 아내에 대한 분노와 세상에 대한 저주의 서릿발을 곧추세웠다. 우울증과 자살의 망령이 그림자처럼 달라붙었다.

믿음직한 아들도, 여전히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고 있는 딸도 다 필요 없다고 여겼다. 머저리처럼 살아온 지난 날 내 생의 여정이 부끄럽기만 했다.

"세상의 반은 여자인데 무얼 고민하느냐? 보란 듯이 재혼하여 떵떵거리고 살아라. 그게 복수다"는 혹자의 권유는 나에게는 말도 안 되는 궤변이자 형식적인 수사일 따름이었다. 그래서 두 번이나 자살을 기도했다. 그러나 그 기도가 미완(未完)으로 그치자 입대를 앞둔 아들과 고등학생인 딸이 눈물로 호소했다.

겨우 정신을 추스르고 나 자신을 돌이켜 보았다. 나이는 불혹과 지천명의 중간 언덕에 서 있지만 하는 사업마다 늘상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도 모자라 배신과 이용만 당하면서 고통의 질곡에 빠져 버렸다. 그래서 지금도 이런저런 빚이 대추나무에 걸린 연처럼 많다.

사업을 정리한 후에 취업한 직장은 '비정규직'이라 하여 사람 대접조차도 해 주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적은 급여로 인해 사는 꼴은 늘상 빈곤했으며, 아내는 많이 힘들어 했다. 그러함에도 개도 안 물어 가는 오만과 진부한 조선시대 가부장적 사고에 물들어 있던 작자가 바로 나였다.

하여 나는 두 번의 자살미수 끝에 비로소 이혼하여 가출한 아내를 돌이켜 보게 되었다. 모든 건 이 부족한 가장인 나의 탓이다! 그래서 처제집에 있던 아내를 찾아가 나의 부족함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설득한 끝에 어렵게 집으로 데리고 와서 지난 봄에 '복혼'했다.

복혼 후에 카드빚의 변제를 위해 달동네로 이사를 했으며, 승용차의 처분에 이어 핸드폰까지도 해지하였다. 하지만 이미 눈덩이처럼 불어난 카드 빚은 '이자'라는 새끼가 또 새끼를 치는 형국으로 발전하여 도무지 방법이 없었다.

카드사들의 독촉이 거세져서 다시금 아내가 재이혼을 요구할까 더럭 겁이 났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법원에 개인파산신청을 했다. 그 신청이 받아들여지려면 아직도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건이 받아들여진다면 정말 좋겠다. 나의 경제적 형편은 현재 말 그대로 적수공권(赤手空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만은 더욱 옹골차게 다지고 있다. 날씨가 엄동설한으로 접어들고 있다. 마치 나의 마음처럼. 그러나 겨울이라고 해서 만물이 모두 생장을 멈추고 있는 건 아니다.

삭풍이 몰아치고 있는 황량한 벌판에 홀로 서 있는 나목(裸木)일지라도 내년 봄에 다시 펼칠 약동을 위해서 정중동의 움직임을 멈추고 있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내가 바로 그러하다.

지금은 비록 참으로 신산한 빈한지경이지만 다시금 경제적 부흥을 위해 도약하리라. 이제 얼마 후면 지난 여름에 입대한 아들이 첫 휴가를 나온다. 아들이 입대할 때 실로 다행이었던 것은 아내와 함께 아들의 논산훈련소 입소식을 보고 배웅을 했다는 것이었다.

아들이 돌아오면 내 살아가는 의미이자 버팀목인 녀석과 통음을 하고 목욕도 함께 갈 작정이다. 아울러 아들에게 나의 부덕함과 무능했음을 사과하고 싶다. 남의 집은 자식이 속을 썩인다는데 우리 집은 그동안 내가 실로 무능하여 외려 자식들 속까지도 무던히도 상하게 했다. 이에 진심으로 반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2003년을 보내면서 수렁으로 빠졌던 내 소중한 가정을 가까스로 건져냈다는 것이 그나마 올해의 최대 수확으로 느껴진다.

가정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절감한 올해도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조용히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도래할 신년엔 제발(!) 흉(凶)보다는 길(吉)한 나날만이 연속으로 펼쳐지길 염원한다. 그러려면 내가 먼저 나서서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장벽을 쾌도난마로서 헤쳐나가야 하리라.

비가 온 뒤의 땅은 더 굳어진다는 속설을 믿으며 더욱 열심히 생업에 매진할 작정이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 저서: [초경서반]&[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 대전자원봉사센터 기자단 단장 ▣ 月刊 [청풍] 편집위원 ▣ 대전시청 명예기자 ▣ [중도일보] 칼럼니스트 ▣ 한국해외문화협회 감사 / ▣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CEO) 수강 중

이 기자의 최신기사[사진] 단오엔 역시 씨름이죠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