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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컴퓨터는 필요없다> 겉그림입니다.
ⓒ 양문
<1> 컴퓨터가 아닌 손으로 글쓰기

요즘은 원고지에 글을 쓰는 사람이 드뭅니다. 편지를 종이에 써서 보내는 사람도 드물고요. 우표를 붙여서 보내는 편지도 오래지 않아 가지만, 몇 초만에 날아가는 인터넷편지로 보내곤 해요. 따지고 보면 손으로 쓸 때보다 자판을 두드릴 때가 더 빨리 오래 쓸 수 있다는 좋은 대목이 있어요.

.. 속도나 편리함, 분량은 내 기준이 아니다. 나는 내가 펜으로 글을 쓰면서도 너무 빨리, 너무 쉽게, 너무 길게 쓴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다. 나는 더 훌륭한 글을 쓰고 싶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기계가 아닌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 <46쪽>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습니다. 자판을 두드려 더 빨리 오래 많이 쓰는 만큼 글 깊이와 너비는 줄어들게 마련입니다. 생각이 쏟아지는 대로 글을 쓸 수 있으나 이미 쓴 글을 다시 살피고 돌아보는 시간은 그만큼 줄어요.

.. 내가 글을 쓰는 동안 자연을 약탈하는 일에 연루된다면 양심상 어떻게 자연 파괴에 반대하는 글을 쓰겠는가? 똑같은 이유로 나는 전기 불빛이 필요 없는 낮에 글을 쓴다 .. <22쪽>

<나에게 컴퓨터는 필요없다>가 말하는 웬델 베리는 또다른 까닭을 말해요. 셈틀(컴퓨터)을 자꾸 쓰자면 전기를 써야 하고, 전기를 자꾸 써야 하면 그만큼 자연을 무너뜨리는 발전 산업이 굴러가야 한다고요. 그래서 전기를 쓰지 않아도 되는 손으로 글을 쓰고 햇볕 아래에서만 글을 쓴답니다.

자신은 환경 운동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되도록 자연과 가깝고 자연을 살릴 수 있는 쪽으로 살기에 셈틀을 쓰지 않는답니다. 셈틀을 써서 더 낫고 더 좋은 운동을 할 수도 있으나 셈틀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으며 셈틀을 쓰지 않고 할 수 있는 더 나은 일을 찾는다고 할까요.


<2> 쓰레기가 아닌 삶을 살며 쓰레기를 낳지 않는다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방법'인 손으로 글쓰기를 해 봅니다. 자판을 두드릴 때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리고 손목도 더 많이 아파요. 하지만 그만큼 자신이 쓰는 글을 여러 번 더 돌아볼 수 있더군요. 그래서 그 다음 이야기인 쓰레기 문제도 배워 봅니다.

.. 국기는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훼손하는 행위에 반대하면서, 그것이 상징하는 대지 자체를 모독하는 것은 어떻게 용서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이제 제정신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하지만 쓰레기 문제는 생산자의 잘못만은 아니다. 그것은 위로부터 아래까지 전부 사치스럽고 낭비적인 경제의 책임이다 .. <82쪽>

웬델 베리는 쓰레기가 넘쳐나는 큰 까닭을 둘로 나누어 말합니다. 먼저 우리 사회 틀이 낭비와 소비만을 부추기는 경제 틀로 짜인 까닭이 하나입니다. 다음으로는 우리들 자신이 게으르며 수동으로 움직이며 자신이 지나치게 소비하는 일에는 관대한 까닭이 둘이라고 말해요.

생각해 보아요. 우리 사회 틀도 사회 틀이지만 우리들 스스로도 넘쳐나는 소비 사회를 퍽 즐기잖아요. 고칠 마음을 안 품어요.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새로 삽니다. 쓰다가 쉽게 버리고 아무 데나 아무렇게나 버려요.

웬델 베리는 이어서 "교육제도는 우리의 젊은이들을 데려다가-농촌지역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미래의 세계'를 준비하게 하고, `전문가적' (다시 말해 매우 막연한) 개념들만 가진 사람들로 만들어 돌려보낸다(135쪽)"고 말해요.

사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지나친 소비생활을 느끼지 못하고 고치지 못하는 깊은 까닭은 제도권 교육 틀에서 길들여지기 때문이라고, 현실을 배우지 못하는 뜬구름 잡는 교육 틀 탓이라고 말해요.

.. 우리는 사람의 일생에서 12년이나 16년, 혹은 20년 동안 교육받는 데 수천 달러를 들이고도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인격을 위해서는 한푼도 들이지 않고 생각조차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 <185쪽>

이 대목을 읽으며 책장을 한동안 덮었습니다. 너무도 맞는 말이라서요. 우리는 요새 대학교나 대학원까지 다니며 배우잖아요. 하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많은 돈을 들이며 배우는 것은 `지식쪼가리'이지 `사람답게 사는 마음'은 아니에요. 그렇게 많이, 그렇게 오래 배우지만 서로를 헤아리는 마음, 우리 삶을 가꾸려는 마음, 모든 생명체가 어우러지며 좋은 터전에서 살아가도록 가꾸는 마음은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않잖아요.


<3> 사람과 자연과 물건 모두 조화롭게

.. 정체성과 성인으로서의 책임감을 갖추지 못한 어린 참새를 길에 풀어놓지 않는다. 역사상 어떤 시대에 자신이 태어난 나라의 역사보다 스포츠에 대해 더 잘 아는 `교육받은' 사람들이 있으며, 자신의 가족사나 고향의 역사를 전혀 모르는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는가? .. <43~44쪽>

웬델 베리는 교육 문제를 틈틈이 이야기합니다. 그래도 웬델 베리가 살아가는 서구는 우리보다 훨씬 발돋움한 곳임에도 교육 문제가 참 크다고 말해요. 적어도 우리보다 앞선 나라라고 하는 서구인데. 그곳에서도 사람들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채 자기 스스로를 보거나 아는 마음과 머리가 없다면? 우리들은 어떠할까요.

개발과 건설을 하는 우리들은 자연 생태계 문제를 헤아리지 않아요. 크나큰 재앙이 된 시화호도 그렇지만 새만금도 마찬가지고 동강댐도 영종도 국제공항도, 핵발전소 열폐수 문제와 수많은 공장들 문제는 생각하지 않아요. 조화를 이루는 마음,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마음,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어우러지는 마음을 배우지도 못하고, 베풀거나 나누지도 못한달까요.

.. 개발하고 착취하는 유흥산업이 존재하며, 그것이 번창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경제가 즐거움과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우리의 일터와 가정에서 즐거움이 사라졌다 … 우리는 점점 더 일 속에는 당연히 즐거움이 없다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즐거워지기 위해서는 저녁이나 주말이나 휴가나 은퇴를 기다려야만 한다. 점점 더 우리의 농장과 숲은 공장과 사무실을 닮아가고, 또 공장과 사무실은 점점 더 감옥과 닮아간다 .. <163쪽>

일하는 시간은 괴로운 시간이 아니었어요. 일하는 시간이란 `혼자 따로 뚝 떨어진' 때가 아니라 온 식구와 이웃사람과 피붙이가 모여서 함께 어우러지는 시간이었어요. 웬델 베리는 자신이 어릴 적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담배 썰기는 1년 중 가장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사회적, 친목적 행사이다. 이웃들은 서로 함께 일한다. 그들은 일주일 내내 매일 하루 종일 같이 있게 된다(166쪽)"고 말해요. 우리도 그렇잖아요. 봄여름가을겨울 사철 내내 농사일을 하든 물일을 하든 산일을 하든 함께 일했어요. 그리고 또 하나. 함께 일하고 함께 놀았습니다.

.. 아이들은 자신들의 놀이장소에서뿐 아니라 어른들의 일터에서도 논다. 놀면서 아이들은 일을 배우게 되고, 어른들과 자기 동네를 배우게 된다. 그리고 노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은 반드시 어른들도 가끔씩 논다는 것을 의미한다 .. <167쪽>

아이들이 일터에 있으면 어른들에게 걸리적거린다고 생각하기 쉽죠? 하지만 아니에요. 아이들은 어른들과 함께 있기를 바라요. 일에 도움이 안 되더라도 가까이에 있으며 놀기를 바라요. 그러다가 어른들도 잠깐씩 일손을 놓고 쉬며 아이들과 어울려요. 아이들은 놀면서 어른들이 하는 일을 본따거나 배우죠. 그러는 가운데 일이 지닌 소중함을 배우고 고마움을 배우며 시나브로 커나갑니다.

이 이야기는 <나는 컴퓨터가 필요없다>에서 큰 고갱이(핵심)에요. 교육 틀이란 일과 놀이가 하나되는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자기 혼자만 뚝 떨어진 지식 집어넣기가 아니라 살아가는 가운데 뭇사람들과 어울리는 우리 삶 속에서 꼭 익히고 지녀야 할 마음 씀씀이까지 담아내는 틀이어야 한다는 거죠.


<4> 사랑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 옳은 일을 하는 데, 어째서 다른 많은 사람들이 할 때까지 하지 않고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단지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고 저녁식사를 하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의회에서 그것이 법안으로 통과될 때까지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다 .. <53~54쪽>

옳은 일은 `법'으로 못박혀야만 할 일일까요? 아니겠죠?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나누고 사랑하고 믿는 일도 마찬가지예요. 도덕률이나 법으로 못박아야 사랑을 나누는가요? 텔레비전에서 외치고 신문과 책에서 외쳐야 사랑을 하고 믿음을 주고 정과 애틋함을 나누나요? 아니겠죠?

"사랑은 절대 추상적이지 않다. 사랑은 우주나 지구나 국가, 제도나 직업에 천착하지 않고 거리의 참새 한 마리 한 마리, 들판의 백합, 형제 중 가장 낮은 자에 천착한다(136쪽)"고 말하는 웬델 베리입니다.

<나에게 컴퓨터는 필요없다>는 현대 기계문명이 지닌 두동짐과 모자람을 이야기하는 책인데, 실제로 읽으니 문명 비판이라기보다는 문명에 길들어가는 우리들 비판이에요. 문명이 아무리 잘못되었더라도 우리들 스스로 깨닫고 느껴서 올바르게 살아가면 된다는 이야기를 담아요.

`폐수를 버리지 말라'고 법안으로 내놓기 앞서까지는 폐수를 버려도 좋을까요?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법안으로 내놓기 앞서까지는 사람을 죽여도 좋을까요? 어떤가요? 우리 삶을 사람이 사람답게 살며 좀더 아름답고 알차게 가꾸는 일이란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법으로 못박혀서도 아닌, 우리 스스로 즐겁게 나서서 할 일입니다.

웬델 베리가 지은 <나에게 컴퓨터는 필요없다>는 `컴퓨터' 한 가지에 얽매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컴퓨터'로 대표 되는 기계문명이 지닌 큰 문제를 살피면서 우리들 모두에게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는 잘못과 모순을 보고 느끼자는 책이에요.

나에게 컴퓨터는 필요없다

웬델 베리 지음, 정승진 옮김, 양문(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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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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