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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희
강남 갔던 제비들이 돌아올 무렵에 핀다고 하여 '제비꽃'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합니다. 두견새가 울 무렵에 피는 꽃은 '두견화(진달래)'라고도 부릅니다. 이렇게 꽃 이름 중에는 조류의 이름을 딴 꽃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제비꽃의 다른 이름은 오랑캐꽃, 병아리꽃, 외나물, 앉은뱅이꽃 등 많은 별칭을 갖고 있는데 그만큼 우리들과 친숙한 꽃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겠지요.

별칭 중에서 '오랑캐꽃'은 이 꽃이 필 무렵에 오랑캐가 쳐들어와서 지어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꽃의 모양새가 마치 오랑캐의 머리채와 같아서 붙여진 것이라고도 합니다. '병아리꽃'은 따스한 봄날 양지를 찾아 삐약거리며 어미 닭을 좇아 다니는 병아리를 연상했기에 붙여진 이름이겠죠.

제비꽃의 꽃말은 '겸양(謙讓)'이며, 흰제비꽃은 티없는 소박함을 나타내고, 하늘색은 성모 마리아의 옷 색깔과 같으므로 성실·정절을 뜻하며, 노랑제비꽃은 농촌의 행복으로 표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 김민수
제비꽃은 이른 봄날 피어나 늦은 가을까지 피어있어서 동네 개구쟁이들에게도 친숙한 꽃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제비꽃을 따서 가장 많이 했던 놀이는 '반지 만들기'였습니다. 예쁜 꽃반지를 만드는 데 제비꽃처럼 간편한 것이 없었습니다. 꽃의 뒷부분을 살짝 잘라내고 기다란 줄기를 꼽기만 하면 예쁜 꽃반지가 되었거든요.

그렇게 꽃반지를 만들어 누님들에게도 끼워 주고, 투박한 어머니의 손가락에도 끼워 주고, 콩딱콩딱 뛰는 마음으로 짝사랑하던 소녀에게 얼굴을 붉히며 끼워주던 기억도 납니다.

그뿐 아니라 나물로도 먹었는데 푸르고 연한 이파리들을 살짝 데치면 약간 시큼한 듯한 풀내음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고향의 맛이었습니다.

제비꽃의 색은 하양 색과 노랑 색과 보랏빛을 간직한 색깔이 주종을 이룹니다만 어느 색이든지 요란하지 않습니다. 화려하지도 않습니다. 수줍은 듯 살포시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더욱 그런 느낌을 받는지는 모르겠지만 참으로 소박합니다. 꽃들 중에는 이렇게 살포시 고개를 숙이고 피어나는 꽃들이 많습니다만 아주 어릴 적부터 아예 고개를 숙인 형상으로 피어나는 꽃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피어남에서 '겸양(謙讓)'이라는 꽃말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제비꽃과도 같은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스스로 낮아짐으로 높아지는 그런 아름다움이 사라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낮아짐으로 높아지는 그런 사람이 그립고 그리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 김민수
제비꽃은 연인의 꽃이요, 사랑하는 사람들의 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따스한 봄날, 봄바람이 불어오면 우리의 마음에도 한들한들 봄바람이 불어옵니다. 봄처녀와 봄총각들의 마음이 마구 설레는 계절이 바로 봄입니다.

안도현 시인은 <제비꽃에 대하여>라는 시에서 이렇게 제비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제비꽃을 알아도 봄은 오고
제비꽃을 몰라도 봄은 간다

제비꽃에 대해 알기 위해서
따로 책을 뒤적여 공부할 필요는 없지

연인과 들길을 걸을 때 잊지 않는다면
발견할 수 있을 거야

그래, 허리를 낮출 줄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거야 자줏빛이지

자줏빛을 톡 한번 건드려봐
흔들리지? 그건 관심이 있다는 뜻이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봄은,
제비꽃을 모르는 사람을 기억하지 않지만

제비꽃을 아는 사람 앞으로는
그냥 가는 법이 없단다

그 사람 앞에는
제비꽃 한포기를 피워두고 가거든

참 이상하지?
해마다 잊지 않고 피워두고 가거든


안도현 시인의 글 중에서 '그래, 허리를 낮출 줄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거야 자줏빛이지'하는 대목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늘 그 자리에 있었던 꽃들, 그냥 바쁘게 살아갈 때에는 보이지 않았는데 조금 천천히 걸어가면서 허리를 낮추고, 눈을 낮추고 보니 그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지더군요.

그 아름다움에 매료가 되어 그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때로는 그들 보다 낮은 자리에서 그들을 올려다보며 흙과 밀착되는 나의 육신은 행복이라는 깊고 그윽한 삶의 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허리를 낮추는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꽃이 있는 것처럼, 이 세상의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일들도 허리를 낮추는 사람들에게만 보일 것입니다. 그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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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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