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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고전이라 할 만한 제레미 리프킨의 대표작 <엔트로피>를 펼치면 우리는 바로 위의 글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주위를 가만히 둘러보면 그가 언급한 희망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이 처음 출판된 것이 1980년이니 벌써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말이다. 사람들은 그가 말한 진리를 받아들이기에 너무나 소극적이고 여전히 잘못된 환상을 품은 채 살고 있다.

그것은 그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진리가 너무나 심오하고 어렵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진리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다음 세 가지 속담과 격언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도 쉽고 이해하기 쉬운 것이어서, 구태여 '엔트로피'라는 과학 용어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될 정도다.

제레미 리프킨은 우리가 자주 사용하면서도 그 진정한 의미를 놓치고 있는 그 말들을 엔트로피 법칙을 적용하여 다시 해석해 냄으로써 그 진의를 더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의 책 <엔트로피>는 이를테면 이 세 가지 속담과 격언에 대한 아주 과학적이고 분석적인 주석이라 할 것이다.

1. "이미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

열역학 제2법칙은 자연 상태에서 열은 항상 고온에서 저온으로만 흐른다는 법칙이다. 이렇게 온도차로 인해 발생한 에너지 흐름이 증기기관의 터빈을 돌린다. 그러나 온도차가 사라져서 열 평형상태에 이르면 에너지 흐름은 멈추고 증기기관도 움직임을 멈춘다.

자명해 보이는 이 물리적 현상을 보고 독일의 루돌프 클라우시우스는 '엔트로피'라는 말을 처음 만들어냈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엔트로피는 더는 일로 전환될 수 없는 에너지', 즉 쓸 수 없게 된 에너지를 뜻한다.

따라서 열역학 제2법칙을 엔트로피 개념을 이용하여 다시 정의하면, '물질과 에너지는 한 방향으로만 변하며 그 때 엔트로피의 총량은 평형상태에 이를 때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고 말할 수 있다. 즉 물질과 에너지는 항상 유용한 상태에서 무용한 상태로, 획득가능한 상태에서 획득불가능한 상태로, 질서있는 상태에서 무질서한 상태로 변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더욱 쉽게 직관적으로 표현한 말이 있다. 바로 "이미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라는 속담이다.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엎질러진 물처럼 에너지는 유용한 상태에서 무용한 상태로 변하고,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에너지는 별도의 에너지를 투입하기 전까지는 완전한 회복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엔트로피 법칙은 우리 눈에 보이는 물리적 세계뿐만 아니라 우주와 생명 그리고 인간의 문화와 사회에 이르기까지 그 적용범위가 너무나 넓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엔트로피 법칙을 모든 과학의 제1법칙이라 주장했고, 아서 에딩턴 경도 이 법칙을 전 우주를 통틀어 최상의 형이상학적 법칙이라고 말했다.

제레미 리프킨은 인류의 역사조차도 엔트로피 법칙을 벗어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많은 역사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인류의 역사가 결코 진보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서 주위를 돌아보더라도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단 한 순간에 전 인류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핵무기를 지닌 현대가 화살과 창검으로 싸우던 고대보다 더 진보했다고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사실 고대 그리스의 순환적 세계관이나 중세 유럽의 기독교적 세계관에서는 대부분 현대인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역사를 쇠락의 과정으로 보았다. 당시 사람들은 '엔트로피'라는 말은 알지 못했지만 역사를 지배하는 법칙이 엔트로피 법칙임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2.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다"

그럼에도 '역사는 진보한다'는 환상을 우리가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에 베이컨, 데카르트, 뉴턴이 만든 기계론적 세계관이 아직도 우리의 의식구조와 삶의 방식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세계관에 따르면, 우주는 까마득한 옛날에 위대한 기술자(신)가 시동을 걸어놓은 기계이며 인간의 역사는 그러한 우주의 정교함을 지구상에 그대로 재현하는 기술 발달의 과정이며 진보의 과정이다. 따라서 정착농경 역시 수렵채취를 대체하여 등장한 진보된 기술로 여겨진다.

하지만 제레미 리프킨은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수렵채취에서 정착농경으로 전환한 것은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기존의 에너지원 고갈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즉,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다"라는 격언처럼 역사상에 등장한 수많은 기술은 남아도는 여분의 풍요로움 속에서 이룩한 진보가 아니라 기존의 에너지원이 고갈될 위기에 처하자 새로운 에너지원이 필요해서 불가피하게 선택한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역사란 엔트로피 법칙의 반영이라는 사실이다.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일정량의 에너지는 영원히 무용한 것이 되어 버린다. 그렇게 축적된 엔트로피로 인하여 사회는 에너지원 자체에 대한 질적 변화를 꾀하게 되고 바로 그때가 이른바 역사의 분수령이 된다는 것이다. 서유럽이 중세에서 현대로 전환한 것 역시 나무에서 석탄으로 에너지 기반이 변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엔트로피 법칙은 유용한 에너지의 획득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렇게 새로 형성된 환경이 앞선 환경보다 더 열악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 이유는 각 단계가 지날 때마다 이 세계가 갖고 있는 유용한 에너지는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세계의 전체적 무질서는 항상 증가하고, 유용한 에너지의 총량은 항상 감소한다. 인간의 생존이 유용한 에너지에 달려있기 때문에 이것은 사람이 삶을 영위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는 것, 그리고 갈수록 열악해지는 환경 속에서 버티려면 일을 덜 하는 것이 아니라 더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3. "세상에 공짜는 없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는 이런 점에서 가장 열악한 에너지 환경에 처해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무를 베는 것보다 석탄을 캐고 처리하는 것이 더 힘들고 유전을 개발하고 석유를 뽑아 올리는 것은 더 어렵다. 핵분열을 이용하는 원자력 발전은 이보다 더 어렵고 우리가 희망을 품고 있는 핵융합은 앞서의 모든 것들보다 훨씬 더 얻기 어려운 에너지원이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재생 불가능한 에너지원(석탄, 석유, 원자력 등)에 우리의 미래를 걸 수 없다. 이것은 단지 기술적 어려움 때문만이 아니라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말이 정확하게 의미하고 있듯이, 지구상의 재생 불가능한 에너지는 무한정 공짜로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나무처럼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조차도 그 소비가 많아지고 소비의 속도가 빨라지면 재생 불가능한 자원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에너지원은 태양 에너지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제레미 리프킨은 말한다.

하지만 태양에너지 시대는 단순히 기술적 전환만으로는 오지 않는다. 집중적이고 정체적인 화석연료에서 분산된 흐름의 태양에너지로 에너지의 기반을 바꾸는 것은 우리의 삶의 방식과 행동 양식의 전면적인 변화, 즉 세계관의 변화 없이는 힘들다.

그것은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엔트로피적 세계관으로 전환하는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즉, 우리 인간이 지구상에 행하는 모든 활동은 엔트로피 과정을 가속하거나 늦춘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지구상의 유용한 에너지를 가능한 천천히 소비할 수 있는 삶의 방식과 행동 양식을 선택하겠다는 굳은 의지와 실천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과학은 형이상학 및 윤리학과 만나게 된다.

새로운 엔트로피적 세계에서는 검약과 절제, 단순함, 자발적인 가난 이 미덕이 되며, 건강하고 존엄한 삶을 누리기 위해 생산과 소비는 적을수록 좋다. 노동이야말로 의식의 계몽상태에 도달하려는 우리의 노력에 핵심 요소가 되며 공공에 대한 책임과 의무라는 개념이 중요한 사회 요인으로 떠오를 것이다.

또 태양에너지 시대에 농업은 다양화된 유기농법으로 바뀔 것이다. 인류 역사상 현대 사회 이전의 모든 사회가 그랬듯이 다가오는 태양에너지의 시대에는 농업에 기반을 둔 삶이 사회의 근간이 될 것이다.

따라서 제레미 리프킨은 제일 먼저 할 일은 우리 자신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의 생각과 행동을 영원히 버리고 새로운 세계관을 택하고 난 뒤에야 인류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질서는 과학·교육·종교를 혁명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이처럼 제레미 리프킨이 <엔트로피>에서 새롭게 드러내고 있는 위 세 가지 속담과 격언의 진의는 놀랄만한 통찰을 담고 있는 것이어서 우리를 충격한다. 그의 말대로 우리가 알게 모르게 지니고 있던 세계와 역사와 과학기술 문명에 대한 환상이 여지없이 깨지고 만다. 그 깨진 환상의 조각들을 보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희망은 분명히 그 깨진 환상의 조각 위에 세워질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그 희망이 우리의 현실이 되도록 만드는 일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엔트로피>를 읽어야 할 것이다. 희망도 기쁨처럼 나누면 나눌수록 더 커지고 더 강력해지기 때문이다.

제레미 리프킨은 누구인가

현장과 학문을 연결하는 폭넓은 시야와 균형감각으로 세계의 지성으로 인정받고 있는 제레미 리프킨은 미국의 문명비평가이며 환경철학자이다.

펜실베니아 대학과 터프츠 대학에서 경영학· 법학· 외교학을 공부한 그는 카터 행정부에서 80년대 미국 경제의 전망을 내놓은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미국 정부의 정책 수립에 관여해 많은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 세계 여러 나라의 지도자들과 정부 관료들의 자문역으로 세계 각국의 공공 행정 수립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기업들의 정책 결정에도 많은 자문역을 하고 있다.

현재는 워싱턴에 소재한 경제 트렌드 재단의 설립자이자 대표로 있으면서 펜실베니아 대학의 워튼 스쿨에서 과학·기술·세계 경제의 미래 경향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주목할 만한 책을 여러 권 발표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그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것은 <엔트로피>다. 그는 이 책에서 기계론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현대문명을 비판하고 에너지의 낭비가 가져올 재앙을 경고하였다.

그의 현대문명 비판은 이후에 출간된 <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 <육식의 종말>에도 계속 이어져서 그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문명비평가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의 이론이 지나치게 비관적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미래에 대한 전망과 현실 비판은 큰 호소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는 반문명론자들 사이에서 꽤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 정철용

엔트로피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창희 옮김, 세종연구원(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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