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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의 한 농장에서 사육되는 미국산 생우. 이 소들 중 8마리가 블루텅병에 감염된 것이 확인돼 지난 10월 살처분됐다.
전남 나주의 한 농장에서 사육되는 미국산 생우. 이 소들 중 8마리가 블루텅병에 감염된 것이 확인돼 지난 10월 살처분됐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전남지역 한우농가들이 미국에서 수입된 생우(生牛. 살아있는 소)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10월 21일 미국에서 수입된 생우 753두 중 8마리가 제1종 가축전염병인 블루텅(Blue-Tongue)병에 걸려 살(殺)처분된데 이어, 미국의 광우병 발생 확인으로 국내에서도 광우병 소가 출몰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등애모기에 의해 전파되는 블루텅병은 소나 양, 사슴 등 반추동물이 감염되면 일정한 잠복기를 거쳐 호흡곤란 증상이나 사산을 유발하며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발생되지 않았다.

소각 처리된 8마리를 제외한 나머지 745두의 미국산 수입 생우는 경기도 화성의 한 목장에 300여두가 입식되고 나주시 왕곡면에 위치한 목장에 153두, 영암군 신북면의 한 목장에 300여두가 입식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나주와 영암의 한우농가들은 미국산 수입 생우가 입식되던 12월 20일부터 해당 농장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요구사항이 관철될 때까지 무기한 천막농성을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농민들은 수입 생우나 수입 쇠고기가 유통과정에서 한우로 속여 판매되는 경우가 많다며, 쇠고기 유통질서가 정직하고 투명하게 확립되지 않는다면 한우농가는 초토화될 것이라는 걱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블루텅병과 광우병, 그리고 쇠고기 유통문제로 한숨짓는 농민들을 만나기 위해 나주시와 영암군을 찾았다.

미국산 생우 사육농장에 사료가 반입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나주지역 농민들이 농장 진입로에 주차해놓은 트랙터들.
미국산 생우 사육농장에 사료가 반입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나주지역 농민들이 농장 진입로에 주차해놓은 트랙터들. ⓒ 오마이뉴스 안현주

나주 농민들, 농장 진입로 막아 미국산 생우 사료 반입 저지

나주와 영암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농민들은 753두의 수입 생우를 미국으로 다시 돌려보내거나 정부에서 미국산 생우를 모두 수매해 살처분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립검역소에서 철저한 검사를 했다지만 이미 블루텅병에 걸린 8두의 소들과 40여일이 넘도록 생활을 함께 한 나머지 소들도 블루텅병이 잠복해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접한 후로 미국산 수입 생우가 있는 나주와 영암지역 한우농가들은 더욱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승현 수입생우 저지를 위한 나주지역 대책위원회 부회장은 "조류독감이 사전 관리에 구멍이 생겨 전국적으로 번지지 않았냐"며 "정부는 조류독감의 경우를 교훈 삼아 미국산 생우에 대한 철저한 대책을 수립해 시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광우병과 관련해 이 부회장은 "광우병은 소들을 도축해 일일이 뇌를 검사하지 않고는 사전에 알아낼 방법이 없다"며 "원산지인 미국에서 들어온 소가 700여두밖에 되지 않으니 정부가 모두 수매해서 살처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700여두 15억원 아끼려다 나중에 광우병이 생겨 수조원의 피해를 보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영암에서 한우를 키우고 있는 오재명(39)씨도 정부의 미온적인 대처에 불만을 토로했다. 오씨는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이 돌 때는 일정반경내의 모든 가축들을 살처분하던 정부가 국내에는 없는 1종 전염병인 블루텅병에는 8마리만 소각처리하고 나머지는 다 보급했다"며 "정부가 미국의 눈치를 봐도 너무 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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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전국 확산 땐 엄청난 재앙 누가 책임지나"

김남배 전국한우협회 전남도 지회장은 "정부는 지난 27일 미국의 광우병 발생이 사실상 확인됨에 따라 미국산 쇠고기와 관련제품의 수입금지는 물론 시중에 유통중인 특정위험물질도 회수하고 있지만, 어찌된 일인지 특정위험물질 전체를 포함하고 있는 미국산 생우는 살처분하지 않고 있다"며 "정부에 대책을 내놓으라고 촉구해봐도 아무런 답변이 없다"며 답답해했다.

한우농가들이 광우병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광우병의 특성 때문이다. 잠복기가 3∼8년에 이르고, 생후 24개월 이상 된 소에게서 발생하는 광우병의 특성에 비춰볼 때 14∼15개월 된 미국산 생우들이 도축되는 6개월 후에 검역을 해도 광우병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한우농가들의 주장이다.

이승현 수입생우 저지를 위한 나주지역 대책위원회 부회장은 "만약 '광우병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발표만 믿고 도축된 미국산 생우를 먹은 사람이 광우병에 걸리거나, 광우병이 전국으로 확산된다면 엄청난 재앙의 책임은 누가 질 것이냐"고 주장했다.

현재 미국산 생우가 반입된 나주 왕곡면의 한 목장 진입로에는 농민들이 몰고 온 10여대의 트랙터가 길을 막아 미국산 생우가 먹을 사료의 반입을 저지하고 있다. 또 130여명의 농민들이 5개조로 편성돼 철야로 미국산 생우를 감시하고 있다.

영암도 마찬가지다. 나주처럼 사료 반입을 막고있지는 않지만 미국산 생우들의 유통경로라도 파악하기 위해 6개조 150여명이 24시간 농장앞을 지키고 있다. 또 장성과 곡성 등 다른 지역의 한우농가에서도 나주와 영암에 지원을 나오고 있다.

한편, 국립수의검역과학원 관계자는 "블루텅병의 잠복기는 15일 정도인데, 미국산 생우의 경우 40일간 격리시켜서 정밀검사를 실시했다"며 "이 소들이 나중에 블루텅병에 걸려 병이 퍼질 가능성은 0%라고 봐도 좋다"고 말했다.

영암지역 미국산 생우를 감시하기 위해 들여놓은 컨테이너박스안에서 농민들이 쇠고기 유통시장 교란문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영암지역 미국산 생우를 감시하기 위해 들여놓은 컨테이너박스안에서 농민들이 쇠고기 유통시장 교란문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정부가 나서서 미국으로 전량 반송하던지 살처분 하라"

농민들은 블루텅병이나 광우병도 큰 걱정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우의 씨가 말라버릴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농민들은 한우농가가 직면해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유통의 투명성 확보라고 지적한다.

수입 생우나 수입 냉장·냉동육, 소뼈, 내장 등이 유통과정에서 한우로 둔갑해 소비자와 한우농가는 손해보는 반면 유통업자만 이득을 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 외국에서 수입된 생우는 국내에 들어온 후 6개월이 경과되면 '국내산 육우'로 인정해주므로 이를 소비자가 한우로 착각하는 사례도 많다고 한다.

김문선(53·나주)씨는 "외국에서 수입된 생우는 국내에 들어온 후 6개월이 지나면 국내산 육우라고 인정해주는 법조항 때문에 소비자가 한우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것이 소비자들을 둘러먹는 함정"이라고 주장했다.

또 식당에서 한우와 육우를 구별하지 않는 것 역시 문제점 중의 하나라는 목소리도 높다. 오재명(39·영암)씨는 "우리나라 육우는 홀스타인으로 불리는 젖소가 대부분"이라며 "이중 암컷은 우유 생산용이고 수놈이 육우로 유통되고 있는데, 어느 식당에 가봐도 '홀스타인 젖소고기 판매'라고 붙여놓은 곳은 없고 무조건 한우라고만 한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소비자가 한우와 국내산 육우를 혼돈해 생기는 문제는 그나마 약과다. 한우농가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도축된 수입 생우가 아예 한우로 둔갑하는 범죄행위로 인한 시장교란이다.

서창렬 한우협회 전남지회 총무는 "수입 생우는 6개월이 지나야 국내산 육우로 인정되기 때문에 반년동안 길러야한다"며 "그 기간동안 들어가는 돈이 국내에서 태어난 육우를 기르는 것보다 더 많이 들어가는데 이렇게 되면 수지가 맞지 않아 유통과정에서 한우로 속여 팔아 부당이득을 취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오재명(39·영암)씨는 "국내 쇠고기 시장에서 한우가 차지하는 점유율은 30%대밖에 되지 않는다"며 "그렇다면 식당이나 식육점들이 소비자에게 '한우만 취급한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느냐"며 허탈한 웃음을 보였다.

농민들은 무너져가는 한우업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유통의 투명성 확보가 가장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소의 종류, 원산지 표시 등이 최종 소비단계까지 정확히 드러난다면 한우농가들은 마음놓고 외국산 쇠고기나 생우들과 경쟁할 수 있다는 것.

김동구(36·영암)씨는 "같은 한우도 암놈과 수놈이 다르고 수놈도 거세 여부에 따라 육질이 틀리다"며 "한우의 종류, 수입 및 국내산 육우 종류, 수입 쇠고기의 종류 등 품질의 상태와 등급을 세분해서 소비자에게 정보를 투명하게 전달될 수 있는 공정한 감시체계만 확립되면 기쁜마음으로 경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영한 한우협회 영암군지회장은 "정부는 공산품 수출에 차질이 있을까봐 광우병·블루텅병 문제나 쇠고기 유통시장 교란 문제를 축소은폐하고 있다"며 "이제는 소비자단체들이 건강하고 투명한 유통질서 확립을 위한 활동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나주와 영암에 입식된 미국산 생우 350여두의 소유주인 장모(59)씨는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장씨는 "검역기관에서 철저한 검사를 거쳐 이상없음이 판명난 소에 대해 왜 문제삼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가 있으면 정부가 나서 조치하면 될 것을 왜 농민들이 나서느냐"며 농장 앞에서 농성중인 농민들에 대해 불만을 나타냈다.

장씨는 미국산 생우가 도축된 뒤 한우로 둔갑할 수 있다는 농민들의 우려에 대해 "농민들의 심정은 이해되지만 나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소비자가 피해보지 않도록 투명하게 일을 처리할 것"이라고 일축했다.

장씨는 "'이 소들이 나가게 될 때 당신들에게 보고하고 투명성을 지키겠다'고 말해도 믿어주지 않는다"며 "내가 여기서 더 이상 뭐를 더 할 수 있겠냐"고 답답해했다. 마음고생이 심해 이제는 소도, 돈도 싫다는 장씨는 "만약 소에 이상이 있고, 정부가 보상을 해주면 살처분에 응할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한우 농가들, 극도의 미국 불신감 표출

광우병으로 인해 우리 정부가 취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금지 조치 해결을 위한 미국관리들의 방한을 하루 앞둔 29일. 정부와 미국을 바라보는 한우농가의 시선은 차갑기 그지없다.

미국 관리들의 방한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농민들은 "이번에도 밀실에서 자기들끼리 어떤 결정을 할지 모른다"며 이구동성으로 불신을 표했다. 미국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나타낸 한 농민은 심지어 "미국이 한우를 멸종시키기 위해 일부러 블루텅병과 광우병에 걸린 소들을 한국에 보낸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하기도 했다.

농민들의 이같은 불신은 미국산 생우 수입과정에서 일어난 블루텅병과 광우병에 대한 정부의 대처를 겪으면서 더욱 깊어지고 있다.

김동구(36·영암)씨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시드니공항에 입국하던 한 축구국가대표 선수의 축구화 밑창에 한국 흙과 잔디가 끼어있는 걸 발견한 호주 당국이 그 선수의 입국을 보류시키고 철저히 세척했던 일이 있었다"며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는 수입 생우의 위생문제를 이렇게 처리할 수 있느냐"며 정부에 섭섭한 감정을 드러냈다.

김문선(43·나주)씨도 같은 주장이다. 김씨는 "우리 정부가 광우병을 이유로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금지했는데 왜 10월에 들어온 미국산 생우는 처분하지 않느냐"며 "광우병은 놔두고라도 블루텅병에 걸린 것이 확실한 소들을 몇 마리만 죽이고 나머지는 농가에 보급시키는 것이 상식에 맞는 짓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는 "이게 다 미국 눈치를 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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