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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에게 전쟁범죄국이라는 오명을 입게한 장본인이자 아시아 민중들의 인권을 유린한 범죄자들이 묻혀있는 곳이다. 더 이상 일본 고위정치가들의 신사참배와 아시아 피해국들의 반대입장 발표 등 해결없이 반복순환되는 상황은 그만두어야 한다."

지난 7일 591차 수요집회에서 성명서를 낭독하는 신혜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상임대표의 얼굴은 굳어있다.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스승이었던 이효재 당시 정대협 공동대표의 권유로 '위안부' 문제에 매달린 것이 꼭 13년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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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잠도 제대로 못자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최선을 다한 것 같은데 여전히 일본대사관의 문은 굳게 닫혀있다. 사과와 배상은 못해줄 망정 고이즈미 일본총리는 새해 첫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전쟁 피해자들의 가슴에 또 한번 못을 박았다.

전세계에 '위안부' 문제를 고발하다

▲ 13년째 정대협을 지키고 있는 신혜수 상임대표
ⓒ 송민성
'위안부' 문제가 처음 제기된 것은 한국교회여성연합회의 국제심포지엄 '여성과 관광문화'에서였다. 이를 계기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관심과 이 문제를 해결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민간인이 데리고 다녔을 뿐"이라며 정부 개입을 부정했다. 이에 분노한 37개 여성단체와 개인이 모여 90년 11월 16일 정대협이 결성되었고, 91년 김학순씨가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증언했다.

이 즈음부터 신 대표는 정대협의 국제협력위원장으로 일하게 된다.

"정대협에 참여한 그해 '위안부' 문제를 유엔인권위원회에 상정했어요. 이를 시작으로 '위안부' 문제를 국제적으로 알리기 위한 작업에 몰두했죠."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인권위원회의 '여성에 대한 폭력' 특별보고관 라디카 쿠마라스와미가 남·북한, 일본 등을 방문했고 96년 '위안부' 문제를 다룬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의 보고서가 채택됨으로써 '위안부' 문제가 여성폭력의 하나라는 사실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어요. 유엔의 공식문서는 전 세계 사람들이 언제든지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의미있는 성과였죠."

"일왕 히로히토는 유죄"

2000년에는 도쿄에서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을 열기도 했다. 전세계 인권·여성운동가들이 힘을 모아 만들어낸 전범법정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비용을 충당하느라 어쩔 수 없이 기자들에게까지 입장료를 받아야 했지만 법정의 한 층을 가득 메울 정도의 보도진이 몰려왔다.

"각국에 흩어져있는 피해자 할머니들이 한 곳에 모인 전무후무한 사건이었어요. 대단했죠. 그러고도 못 들어간 기자들이 있었고, 하루에 기자회견을 두 번씩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리고 그 곳에서 일왕 히로히토가 유죄판결을 받았어요."

이후 국제노동기구(ILO) 전문가 위원회는 일본에 국민기금이 아닌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방법으로 배상할 것을 여러 차례 권고했고, 유엔의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 또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권고했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뚜렷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이기는 방법은 기억하는 것

▲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신사참배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 송민성
"일본의 근본적인 입장이 변하지 않는 상태에서 투쟁을 계속해나가는 것이 쉽지 않죠. 인정하지 않겠다는 일본의 목을 억지로 끌고 올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이런 일본을 이기려면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의 범죄를 기록하고 피해자들의 증언을 남겨 다음 세대들이 역사의 비극을 기억하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대협에서는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명예와 인권의 전당(임시이름)'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피해자들의 인권과 명예를 회복하고, 유사 범죄 재발을 예방하기 위한 거죠. 나아가 전쟁 중 빈번하게 일어나는 여성인권유린 해결을 위한 연대와 지원도 기념관 건립의 목적이에요."

이를 위해 할머니들의 사진과 증언을 보존하는 등의 자료 수집도 부지런히 하고 있다. 그 중에는 외국의 논문과 자료집들도 다수를 차지한다.

"한국 국민들이 아는 것 이상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외국의 관심은 높아요. '위안부'를 주제로 한 연구들도 많이 나오고 있죠."

신 대표는 홀로코스트 박물관이 세계 곳곳에 있는 것처럼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장소와 모임도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고 덧붙인다.

그가 말하는 풀뿌리 실천 세 가지

"남한 사람들, 냄비근성이라고 하죠. 금방 달아올랐다 쉽게 식어버리는 것. 3·1절이나 광복절 같은 때만 일시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거죠."

그에 반해 일본은 '밑이 튼튼한' 나라라고 한다.

"오키나와에서 홋카이도에 이르기까지 '위안부'에 관한 소규모 그룹이 100여개가 넘어요. 그런데 그런 힘들을 모아 사회적으로 표출해내는 건 또 약해요. 뜻이 조금만 달라도 같이 하질 않거든요."

▲ 591차 수요집회를 마치고 참가자들과 함께
ⓒ 송민성
신기한 것은 남한에서는 반대로 큰 단체의 활동들이 밑으로 잘 확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두 가지 힘이 양쪽 나라에 모두 갖추어져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풀뿌리에서 시작하는 실천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신 대표가 제시하는 '풀뿌리 실천'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올해 한번이라도 수요시위에 참여해 할머니들을 격려하고 적은 돈이라도 기념관 설립에 보태는 것, 일본 대사관 게시판에 항의의 글을 쓰는 것이 그가 바라는 움직임들이다.

밝은 웃음을 지어 보이는 신 대표는 기어이 한마디를 덧붙인다.

"오마이뉴스의 독자라면 해볼 수 있는 것들 아닌가요?"

그날 그가 읽어내려간 성명서의 마지막 문구는 다음과 같았다.

"… 우리는 2004년에는 반드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어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와 정의가 해결되기를 바라며 그날까지 우리의 싸움은 멈추지 않을 것임을 밝힌다. 2004년 1월 7일 591차 수요집회 참가자 일동."

그것은 희망을 잃지 않겠다고 스스로를 다잡는 강한 다짐인 동시에 국민들이 피해자들을 기억하고 격려해줄 때 그 희망을 놓지 않을 수 있다는 간절한 호소였다.

'명예와 인권의 전당' 건립에 함께하려면

'명예와 인권의 전당'은 정대협을 중심으로 13년 이상 전개되어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운동의 성과를 계승발전시킨다는 데 큰 의의를 둔다. 정대협은 기념관 건립이 '위안부' 문제 해결운동의 지속성을 확보하는 한편 현장성과 실천성을 겸비한 인권·평화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대협의 구성계획에 따르면 기념관은 ▲우리, 함께하다 ▲여성, 일어나다 ▲할머니, 기억하다 의 세가지 테마로 채워질 예정이다.

'위안부'의 역사자료, 피해자의 증언과 함께 전쟁과 인권 관련 자료 등이 전시된다.

이를 위해 건립위원회(윤정옥·이효재 공동대표)가 조직되었고, 지난 18일 열린 기념관 사업 점화식에서는 황금주씨를 비롯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기념관의 '씨앗자금'을 내놓았다.

기념관 건립 후원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후원자는 기념관에 영구히 이름을 보존한다. 자세한 문의는 02-365-4016, 정대협 홈페이지 www.k-comfortwomen.com을 통해서 하면 된다.

후원계좌 308-03-009542 (예금주: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 송민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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