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혜정 연세대 교수(사회학)의 대안공동체에 관한 특강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가 13일 오후 2시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렸다.
기독여민회 주최로 열린 이번 강연에서 조한 교수는 가족 해체와 경제불안을 경험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작고 안전한 공동체'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조한 교수는 근대와 탈근대의 개념을 들어 문화적 활동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사회, 즉 '서태지의 신화'가 존재하는 사회를 근대로, 그 신화가 깨져버린 사회를 후기근대로 규정했다. 후기근대 사회에서 가족은 과거와 달리 당위적 요소가 아니다. 가족 해체는 이미 진행될 만큼 된 상태이며 "20대에게 가족은 더 이상 대단한 고민거리가 못된다".
"부모는 회사에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자식은 밤늦게까지 학교에 있어요. 경제뿐만 아니라 교육제도 역시 가족 해체의 원인이 되고있는 거죠. 실제적으로 가족이란 자녀가 학교에 가기 전까지만 존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해체 화 된 사회에서 청소년·소녀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은 부모들이다. 어느 정도의 경제력을 갖춘 부모들은 자식이 이른바 '일류 대학'에 진학해 좋은 직장을 얻고, '적당한' 나이에 이르러 결혼을 해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들은 끝없는 경쟁과 사교육으로 이루어진 게임에 기꺼이 참가한다. 반면 경제력이 없는 부모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돈을 벌어 자식들을 게임판에 집어넣으려 한다.
그는 이렇게 자라난 '후기근대 세대'들은 자생력이 없어 항상 불안하다고 지적한다.
"물이 반정도 들어있는 컵을 보고 '물이 곧 없어지겠구나'하고 걱정하는 거죠. 그러한 불안감은 실제적으로 고실업과 고용불안정 등의 형태로 가중되구요."
조한 교수는 강의를 통해 만났던 대학생들을 예로 들면서 후기근대 사회의 젊은이들이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불안함과 자기중심적 특성을 꼬집었다.
"신자유주의적인 마인드를 가진 부모와 교사가 적당히 주물러서 만들어낸 아이들은 언제 깨질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예요. 다른 사람에 대한 호기심도 없어요. 항상 자신들만 무대의 주인공인 공주, 왕자들인 셈이죠."
그는 이러한 경향이 지속될 경우 "20:80의 사회가 아니라 2:98의 사회가 초래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이같은 '위험사회'에서 젊은이들이 어떻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고 또한 어떻게 그들의 목표를 이루어나갈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이에 대해 조한 교수는 "길이라고 알던 것이 길이 아님을 인식하는 것이 시작"이라고 자답했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스스로 탐색하는 경험이 중요합니다. 무엇이든 직접 해보면서 느끼고 깨달아 가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거죠."
그는 그러한 경험들이 반드시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모든 것을 부모가 책임지려다보니 부모의 부담과 자식에 대한 간섭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들을 길러내는 학교와 지역공동체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시시한 걸보고도 재미를 느끼는 공동체를 만들어야겠죠. 괴상한 악기소리와 유치한 몸동작에도 웃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고 딸이기 때문입니다. 부모 자식간이 아니라도 함께할 수 있는 공동체, 동네 축제같은 운동회가 제가 그리는 그림들입니다."
조한 교수는 원자화된 청소년·소녀들에게 삶이 살 만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은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두시간여에 걸친 강연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