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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한해동안 지구촌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갈등과 전쟁 위기, 두 차례에 걸친 이라크 파병 논란,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 악화,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테러 공포 등으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평화의 위기를 겪어야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평화의 위기는 2004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대결이 장기화되고 있는 반면에 6자회담의 전망은 불투명하기만 합니다. 미국의 이라크 점령, 이란의 핵사찰 수용, 그리고 리비아의 대량살상무기 포기 등으로 미국에 '맞장' 뜨고 있는 유일한 나라가 북한이 되면서, 국제 사회의 이목이 한반도로 모아지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11월 2일에 있을 미국 대선은 한반도의 운명을 가르는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할 정부와 정치권은 온통 기득권 지키기와 4.15 총선에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오늘날의 상황을 강대국들에게 휘말려 나락으로 떨어졌던 구한말에 비유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평화네트워크와 함께 연중기획으로 '위기를 넘어 평화로'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본 기획을 통해 "우리의 운명을 앉아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개척해나가야 한다"는 정신으로 지속가능하고 공고한 평화를 만드는데 밑거름이 되고자 합니다.

본 연중기획에서는 국내외 전문가와 활동가들과의 광범위한 의견 수렴을 바탕으로 한반도의 정세를 심층적으로 분석·전망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 나갈 것입니다. 또한 '희망의 근거'를 찾아 힘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해나갈 것입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편집자 주>



교수신문이 2003년 연말 76명의 교수들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2003년 한해를 표현하는 사자성어'로 `우왕좌왕'(右往左往)이 뽑힌 바 있다. 그만큼 정치, 경제, 사회, 외교·안보 등 각 영역에서 정부와 사회가 무게중심을 잡지 못하고 혼란에 혼란을 거듭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2004년을 대표하는 말은 무엇일까? 아마도 '불확실성(不確實性)'이 아닐까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과 '10분의 1' 발언, 그리고 '대통령 측근 비리 특별검사제'는 대통령이 임기 중간에 하야할 수도 있다는 사상 초유의 '불확실성'을 잉태하고 있다. 또한 '대선자금 비리 수사'와 '세대교체 및 물갈이론'이 국회를 강타하면서 4.15 총선은 '커다란 이변'을 예고하고 있기도 하다.

경제와 민생 역시 불확실성으로 가득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세계 경제가 기나긴 불황을 뚫고 호황의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한국경제가 되살아날 뚜렷한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또한 생존의 벼랑끝에서 허덕이고 있는 신용불량자와 실업자들, '코리안 드림'이 악몽이 되고 있는 외국인노동자와 중국 동포들, 그리고 '일한 만큼 대우해 달라'는 당연한 요구조차 외면 당하면서 분신의 행렬을 이루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이르기까지, 이들이 불확실한 미래에서 희망을 길어 올리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가 직면한 불확실성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체감하지 못하고 있지만, 민족공동체의 운명 역시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북핵 위기'라고 표현되는 '북미간의 대결'은 6자회담을 통해 일단 봉합된 상태이지만, 6자회담의 전망은 불투명하기만 하다.

6자회담 자체가 상처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이뤄졌다기보다는 상처가 곪아터지기 일보 직전에 중국 등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봉합된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6자회담의 실패는 한반도 위기의 크기를 더해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2004년은 한반도의 운명과도 직결된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이다. 2000년 플로리다의 작은 해변도시인 '팜비치'의 투표 용지 수백장이 한반도의 운명을 뒤바꿔놓았듯이 2004년 대선은 그 이상으로 우리의 운명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한반도의 운명과도 직결된 6자회담과 미국 대선에 이렇다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현재의 구조에서 남한은 스스로의 운명을 적극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당사자'로서의 지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껏해야 북미 갈등의 중재자, 혹은 한미공조의 하위 파트너로서의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중재자'의 역할마저도 중국이 하고 있는 실정에서, 우리의 운명을 좌우할 6자회담 구조에서 남한이 설자리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구한말 한반도의 운명이 강대국간의 이해관계 조정으로 판가름났을 때와 대단히 흡사하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제 한반도에서도 지난 50년간 유지해온 '불안한 평화' 상태인 정전체제가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앞이 보이지 않는 길고도 어두운 터널에 들어선 상태이다. 터널 끝 새하얀 희망의 빛을 발견하고는 새롭고도 평화로운 시대로 향해 나아갈 수도 있고, 반대로 어두운 터널을 헤매다가 헤어나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또한 갈 곳을 찾지 못해 헤매다가 터널 끝 벽에 부딪쳐 민족공동체가 돌이킬 수 없는 전흔(戰痕)을 입을 수도 있다.

남한보다 더 심각한 생존의 벼랑 끝에 몰린 북한은 희미한 호롱불을 들고 '반미 민족공조만이 살 길'이라며 남한에게 어설픈 손짓을 하고 있다. 북핵 공조를 한미동맹의 시험대로 삼겠다는 미국의 강경파는 '지금이야말로 북한을 무너뜨릴 수 있는 기회'라며 남한에게 악마의 속삭임을 하고 있다.

이러다가 자기도 낭패 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기 시작한 중국은 북한과 미국을 오고가면서 '이 길로 가자'고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힘겨워 보인다. 동시에 중국은 북미간의 대결이 지속됨에 따라 피로감이 누적되면서, 중국 내 일부에서는 부시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고 있기도 하다.

한반도 위기가 장기화되면 될수록, 미국과 중국 사이의 거래가 이뤄질 가능성 역시 높아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한반도를 놓고 미-중간에 거래가 성사되면 한반도의 운명은 우리 손을 떠나게 된다.

우리가 처한 현실이 이러한데도 어두운 터널의 길잡이 노릇을 해야할 정부와 정치권은 온통 선거에 목매달고 있는 실정이다. 집권과 함께 천형(天刑)처럼 북미간의 대결을 짊어진 노무현 정부는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최우선적인 목표로 내세우면서도, 이 문제 해결에 전력투구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북핵 문제'를 근거로 삼아, 전국 방방곡곡을 촛불로 수놓으면서 국민들이 요구했던 SOFA 개정도, "더러운 침략전쟁의 부역자가 되서는 안된다"며 2003년 한해를 뜨겁게 달구었던 파병 반대 여론에 대해서도,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며 국민들의 요구를 저버리고 말았다. 남한이 주도적인 역할을 모색하려는 노력보다는, '이라크 파병' 등 부시 행정부의 비위를 맞춰주는 '꼼수'에 의존해왔던 것이다.

국회는 더 한심한 모습을 보여왔다. 대한민국의 안보 걱정은 혼자 다하는 것처럼 틈만 나면 "안보, 안보"했던 국회가 정작 대단히 심각한 안보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는 오히려 '자신들의 안보' 지키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민의를 대변해야할 국회가 국회의원들의 부정부패에 대한 법과 국민들의 심판을 막는 '방패막이'가 되고 있는 현실은 그들이 말하고 있는 안보의 실체가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정치권의 현실을 보면 '망진자(亡秦者)는 호야(胡也)'라는 중국 고사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이 고사는 진시황이 진(秦)나라를 망하게 할 자가 호(胡=오랑캐)라는 예언을 듣고서 변방을 막으려 만리장성을 쌓았지만, 진(秦)나라를 망한 자는 호(胡=오랑캐)가 아니라 그의 자식인 호해(胡亥)였다는 뜻이다. 외부의 위협에만 주목하다가 내부의 문제를 소홀히 하면 망국(亡國)의 길로 빠져들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고사인 것이다.

우리가 '평화'에 주목해야 할 이유

우리에게 생소하기만 했던 S&P나 무디스와 같은 신용평가사가 우리 경제의 목줄을 쥐고 있는 저승사자와 같은 존재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은 1997년 IMF 위기 직후부터이다. 이 이후부터 이들 신용평가사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한국 경제는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이들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의존적인 태도는 재벌개혁에 대한 비판의 근거로, 혹은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도 이기주의로 매도하는 근거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두 여중생의 억울한 죽음과 SOFA 개정에 대한 요구도, 헌법까지 저버리면서 침략전쟁의 부역자로 나서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국민들의 목소리도, "한미관계가 불안해지면 국가신인도에 문제가 생긴다"는 논리로 제압하려고 해왔다.

그러나 정작 이들 신용평가사가 지적하는 한국경제의 최대 불안 요인에 대해서는 둔감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들 신용평가사는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대결과 이에 따른 전쟁 위기, 그리고 북한의 붕괴 가능성이 한국경제의 가장 불안 요인이라면서,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신용등급의 상향조정은 어렵다는 얘기를 수 차례 반복해오고 있다.

그러나 50년간 전쟁이 멈춘 상태에서 살아오면서 위기가 일상화된 탓인지, 아니면 미국을 한반도의 평화 수호자로 보고 있기 때문인지, 정작 이러한 경고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러한 한반도 평화와 경제발전 사이의 관계에 주목한 사람이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IMF 위기와 함께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남북관계의 발전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경제발전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 했고, 많은 논란과 문제점을 담겼지만 적지 않은 성과를 가져온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 경제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북한 핵문제 등 한반도의 위기 요인을 적극적으로 해결해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에서 우리의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의 위기가 '국가' 경제 차원에서만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안보 위기의 지속은 이에 대비한다는 이유로 다른 가치를 실현하고 다른 문제를 해결하는데 쓰여야할 소중한 자원과 역량의 유실을 낳기 마련이다. 이는 구체적으로 북한에서는 인도적 위기의 악화로, 남한에서는 절대 빈곤층의 증가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현재의 위기에 주목해야할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한반도에서는 민족공동체의 소멸을 의미하는 전쟁 발발과 전쟁에 준하는 대혼란을 야기할 북한의 붕괴, 혹은 극도로 불안한 상태의 지속에 직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데 있다. "설마 이러한 상황이야 오겠어"라고 애써 자위하고 싶은 마음도 들겠지만,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은 이러한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당당한 주체로

물론 북한과 미국이 마음을 고쳐먹고 6자회담에서 좋은 성과가 나와 한반도 위기가 해소될 수도 있다. 부시 행정부가 재집권에 실패할 수도 있고, 재집권하더라도 1기 때의 '막가파식 일방주의'를 걷어치우고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냉전의 섬 한반도'의 평화프로세스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노벨평화상'의 야망을 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낙관적인 시나리오는 가능성이 낮을 뿐만 아니라, 이 속에서는 우리가 할 일이 별로 없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저 앉아서 잘 되기만 기대하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개척하겠다는 정신으로 한반도 평화의 당당한 주체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인가? '위기의 시대'에 우리가 가져야할 마음가짐은 무엇일까? '우리는 약소국이고 백성들은 나랏일에 관여하기 힘들다'며 강대국과 정치권의 선의에 우리의 운명을 맡겨야 할 것인가? 아니면, 위기를 기회로 삼아 다시는 이러한 위기가 반복되지 않도록 공고한 평화체제를 만들어나가는 주체로서의 역할을 모색해야 할 것인가?

<오마이뉴스>와 평화네트워크가 함께 준비한 이번 기획에서는 이러한 녹록치 않은 질문들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오늘날 한반도 위기의 성격은 무엇인지, 한반도의 운명을 가늠할 6자회담과 미국 대선은 어떻게 될 것인지, 미국 대선 이후의 한반도 정세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그리고 그 속에서 정부와 시민사회는 어떠한 역할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인지….

분명 한반도의 운명은 대단히 불안한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 이미 결정된 것이 아니기에 우리의 의지와 역량에 따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것이라는 희망의 근거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한반도의 운명을 앉아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희망의 근거를 찾아 긴 여정을 떠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다음 기사 : '북핵 위기' 올바른 표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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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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