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3일 방영된 KBS 미디어포커스의 ‘한국언론의 빅브라더 미국’으로 촉발된 <동아일보>와 KBS 간의 ‘친미언론인’ 논란이 소강상태에 접어든 가운데, 해당 프로그램을 기획취재한 김용진 KBS 기자가 최근 발간된 <인물과 사상> 2월호를 통해 <동아>의 주장을 전격적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특히 김 기자는 12월 26일 <동아일보>에 게재된 남시욱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의 반론에 이의를 제기하며, “남 전 국장은 (미 국무부의 언론인 초청 프로그램이) 어느 나라나 다 하는 친선·홍보 외교활동인데 왜 문제삼느냐고 하지만 정말 (그 초청 프로그램이) 상식적인 일이고 심지어 우리 한국도 행하고 있는 수준의 것인지 살펴보자”고 주장했다.
남 전 국장은 지난 26일 ‘KBS 사실 확인도 않고 보도 - 동아·조선 신뢰성에 먹칠 의도’라는 글을 <동아일보>에 특별기고하며, “KBS가 동아 조선의 흠을 부각하기 위해 이런 활동을 ‘공작’ 차원으로 몰아붙이고 관련자들을 비도덕적 행동이나 한 것처럼 묘사했다”고 주장했다.
또 남 전 국장은 “세계의 모든 국가는 나름대로 외국과의 인적 교류계획을 마련하고 상대국의 각계 인사들을 자국에 초청”할 뿐만 아니라 “외교 공관으로 하여금 현지에서 그 나라의 각 분야 사람들과 공식 비공식 교류를 통해 친선과 홍보활동을 포함한 외교활동을 펴고 있다”며, “이런 외교 활동 방식은 미국뿐 아니라 현재 우리 한국도 행하고 있으며 언론 측에서는 취재활동의 일환”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김 기자는 <인물과 사상> 2월호를 통해 “미국국립문서보관소(NARA)에서 확인된 미국측 비밀문서에 따르면, 미 국무성의 초청 프로그램 등은 단순한 친선·홍보 차원이 아니라 미 공보처의 대 세계 전략에 따라 치밀하게 계획 추진된 ‘공작’ 차원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며 “현재 한국도 이를 행하고 있다는 식의 주장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반박한 것이다.
김 기자는 12월 24일자 언론노보를 통해서도 “<동아>의 반박이 아마추어 냄새 풍기는 자극적인 용어들을 나열하면서 마치 미디어포커스 내용에 큰 문제가 있는 듯 표현”했고, “덕소모임의 성격이나 진상에 대해 처음에는 ‘환송식’이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자구 움직임’ 이제는 ‘적대 세력 간 중재’로 들쭉날쭉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김 기자는 <한겨레신문> <오마이뉴스> 등을 통해 “동아의 주장에 대해 반박할 수 있는 자료를 충분히 가지고 있고 일단 추이를 지켜본 뒤 대응 수위를 결정”하겠으며, “<동아일보>가 제기한 친미 친일문제에 대해 심층적인 취재를 해 볼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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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독재 옹호하며 한편에서는 미국에 하소연”
<인물과 사상> 2월호에 실린 김 기자의 반박 자료를 살펴보면 김 기자는 우선 1972년 12월 5일 주한 미 대사 하비브가 본국에 보낸 3급 비밀을 소개하고 있다.
이 전문(電文)에는 72년 11월 13일 주한 미 공보원(USIS)의 직원 마이클 블랙스톤의 영내 아파트에서 남시욱, 김성환, 우성용이 모여 블랙스톤과 나누었던 비망록이 실려있다.
김 기자는 “대화 내용을 살펴보면 이날 참석자들은 박정권을 ‘파시스트’ ‘독재’ 정권이라고 부르는데 모두 동의했으며, 남한이 ‘소비에트 사회와 유사해져 가고 있다’고 말한 것이 기록에 남아있는데, 이 모임의 발언을 비밀로 유지해 달라고 말했다는 것까지 빠짐없이 기록 보고돼 있다”고 밝혔다.
김 기자는 “박정희가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 유신독재를 옹호하고 나섰던 당시 최대 언론사 <동아일보>의 간부급 언론인들이 일개 주한 미 공보원 직원의 아파트에 모여 ‘파시스트’니 ‘독재’니 하며 징징거리고 있는 모습은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하며, “언론 탄압이 극심했던 시절, 상당수 언론인들이 독재에 저항하기보다는 순진하게도 미국을 마치 구세주나 되는 것처럼 여기고 의지했던 인식의 천박함과 친미 사대주의 성향은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고 주장했다.
“중정부장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 달라 부탁”
미국에 대한 한국 언론인의 의식 수준을 보여주는 또 다른 문건으로 김 기자는 제7대 대통령 선거 직전이었던 71년 4월 8일, 당시 주한 미 대사 포터가 본국 국무부에 보낸 보고서를 소개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는 한 신문사의 편집국장 및 전무와 저녁식사 시간에 나눈 대화 내용이 실려있다.
해당 문건의 대화 내용에는 “신문사 간부가 미 대사에게 한국의 중앙정보부장을 만나서 자신이 좋은 사람(Good Fellow)이라는 것을 말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미 대사가 부정적으로 대답했다”는 내용과 “또 그가 한 1년간 외국에서 연구할 수 있도록 니만 타입의 펠로우십(Neiman Type Fellowship)을 주선해 줄 수 있느냐고 묻자, 미 대사가 이러한 때에 두려움에 압도되지 말라고 하고 필요하면 고려해 볼 수도 있다고 답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김 기자는 “박 정권의 언론 탄압이 얼마나 심했으면 미국대사에게 우는 소리를 했을까 하는 동정론도 들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미 국무부의 비밀 정책 보고서를 보면 이들의 미국을 향한 짝사랑이 얼마나 순진무구하고 심지어 유치한 것이었던가를 잘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 공보처의 대 한국 계획은 ‘공작 지침서’
이 외에도 김 기자는 “미국 공보원이 후원한 순회 강연에서 이동욱 논설위원이 한일 정상회담의 조기 결론을 옹호”했던 내용과 “미 국무성 언론인의 초청 프로그램 장학생이었던 <동아일보>의 이동욱 논설위원이 국무성 초청 프로그램에서 돌아온 뒤 여러 차례 미국에 우호적인 기사를 자사 매체에 실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64·65년도 대 한국 계획(Country Plan for Korea) 평가보고서를 소개했다.
김 기자는 “<미디어포커스>에 출연한 미 공보원 직원 출신의 원로 언론인은 이 계획을 간략하게 그들의 ‘공작 지침서’라고 표현했다”며, “대 한국 계획이 ‘공작’ 차원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고, 미 공보원이 정보기관과 협력관계에 있었다는 사실은 67년도 대 한국 계획과 66년도 평가보고서에서 잘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이래도 친선 외교 활동인가”
김 기자는 “이상의 활동 계획과 집행 내용들이 남시욱 전 국장이 말하는 미국의 친선 홍보 외교활동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며, “(남 전 국장은 이러한 활동이)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도 현재 행하고 있는 활동이라고 했는데 제발 말이 되는 소리를 했으면 한다”고 비판했다.
김 기자는 “미국은 한국 교육·언론계에서 핵심 인물을 선발해 자국에 데려다가 훈련시켜 미국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도록 만들었고 숱한 대중매체 등을 통해 심리전과 여론조작을 일삼아 왔다”며 “남시욱류의 관점은 미국의 심리전이 철저히 먹혀 들어갔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기자는 “이러한 언론인의 심리상태를 한 학자는 미국에 대한 무의식적 자기 동일시라고 고상하게 분석했지만 사실상 정신적 노예화라고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미국의 의도가 적나라하게 담겨 있는 문서를 코앞에 들이밀어도 한사코 친선 외교활동이라고 우기는 정신적 불구 증상을 획기적으로 치유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고 일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