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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 선 필자(뒷편에 만하탄, 상단 우측에 9.11사태 전의 쌍둥이 UN 건물이 보인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 선 필자(뒷편에 만하탄, 상단 우측에 9.11사태 전의 쌍둥이 UN 건물이 보인다) ⓒ 김준하
'달리는 키스' 사건을 뒤로하고 뉴욕 입성 일주일 만에 나는 맨하탄 한복판 32가에 위치한 '미주 매일 신문'에 둥지를 틀게 된다. 마침 유력한 일간지들과 겨룰 만큼 성장 가도를 달렸던 현지의 로컬 토종 언론의 때 맞춘 공채에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해가 지면 우리는 맨하튼의 하남석씨가 운영하던 카페에서 피아노를 들으며 맥주를 들이키며 하루일을 마감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사건이 터졌다. 당시 태권도 협회와 연맹의 양분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던 미묘한 시기에 우리 신문사의 취재부장이 양측에 대한 비판 기사를 놓고 태권도 연맹 회장과 언쟁을 벌이던 중 흥분해 육탄전에 돌입하면서 치고 박는 폭행 사고가 발생한 것. 말이 싸움이지 일방적인 두드려 맞기였다. 펜의 힘은 유단자 앞에서 한낱 종이조각에 불과했다.

코뼈가 깨지고 눈가가 찢겼으며 온몸이 멍 투성인데 "그 자식 유단자라고 급소만 치더구만 으윽 으으" 그렇게 웃어 넘기던 부장님. 상처뿐인 영광을 안고 술냄새 풀풀 풍기며 다 쓰러질 듯 나의 '우드 사이드' 타운 하우스를 찾았던 '독신남 취재 부장님'을 정성껏 간호하느라 나의 주말은 무척이나 고되었는데..

화면은 바뀌어 신문사 회의실. 이 일이 발생한 뒤 그를 보호해야 할 신문사는 오히려 사직을 권고했으니 젊은 피가 끓던 당시의 기자들은 이에 반기를 들 수 밖에. 동반 사퇴를 들고 나와 결국은 3인이 사직키로 하였고 나는 신청했던 영주권마저 고스란히 팽개치고 구호를 외치며 회사문을 나섰다. “오 그대 젊은이의 당당한 용기요, 새파란 호연지기(浩然之氣)여”뉴욕이라는 대도시에 걸맞는 패기(覇氣)가 넘쳐나 터진 사건으로 필자는 지금 평가하고 있다.

뉴욕 바닥의 갈 곳 없는 오기(傲氣)는 도심 택시의 난폭 운전과 살벌한 지하철에 넘쳐나고 있으나 푸른 정기는 한낮의 고층빌딩 숲아래 보르드웨이를 힘차게 오가는 다민족 인파 속에서 이글거리며 생성된다. 젊은 피를 수혈 받기 원하거든 뉴욕으로 향해야 한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청년은 뉴욕으로 떠나야 한다. 세계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축인 그곳에서 젊음을 부른다. 청춘의 함성이 힘차게 들리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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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하 기자는 미조리 주립대애서 신문방송학을 수학하고 뉴욕의 <미주 매일 신문>과 하와이의 <한국일보>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의 시사 주간신문의 편집국장을 거쳐 현재 로스엔젤레스의 부동산 분양 개발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라스베가스의 부활을 꿈 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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