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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어디 가고 옥두 한명만...' 지난 80년 내란음모 혐의 등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29일 오후 서울고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이런 '경사'에 동교동계 대표주자는 뒤로 김옥두 의원 밖에 보이지 않는다.
'다들 어디 가고 옥두 한명만...' 지난 80년 내란음모 혐의 등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29일 오후 서울고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이런 '경사'에 동교동계 대표주자는 뒤로 김옥두 의원 밖에 보이지 않는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지난 80년 '서울 봄'에 내란을 음모한 혐의로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사형을 선고받았던 김대중(DJ) 전 대통령에 대한 재심에서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29일 오후 2시부터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신영철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피고인의 내란음모 사건은 전두환 등의 헌정질서 파괴범행을 저지하거나 반대함으로써 헌법의 존립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라고 할 것이므로 재심 계속부분은 형법 제20조에 따라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오히려 재판부는 "전두환 등이 1979년 12·12 군사반란 이후 1980년 5·17 비상계엄 확대 선포를 시작으로 1981년 1·24 비상계엄의 해제에 이르기까지 행한 일련의 행위는 내란죄가 되어 헌정질서 파괴범죄에 해당하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80년의 '내란죄'가 무죄로 판시되고, 반대로 그때의 '구국의 결단'은 내란죄로 판시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정의가 승리하는 이 감격스런 순간에 법정을 나와 카메라 앞에 선 DJ의 뒤에 선 정치인은 김옥두 의원뿐이었다. 이런 '호사'에는 당연히 DJ와 오랜 세월 동고동락한 동교동계 정치인들이 DJ를 병풍처럼 둘러쌌을 것이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DJ의 뒤에 선 동교동계 정치인은 김옥두 의원 한 사람뿐이었다.

지난해 10월 28일 현대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신라호텔에서 열린 현장검증에서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이 교도관들과 함께 지상 주차장으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서고 있다.
지난해 10월 28일 현대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신라호텔에서 열린 현장검증에서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이 교도관들과 함께 지상 주차장으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서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하필이면 이날 '양 갑(甲)' 혹은 '투 갑스'로 통하면서 동교동계의 구·신파를 대표한 권노갑·한화갑 두 정치인은 각각 서울지법과 서울지검에 출두해야 했다. 재판일정과 검찰 소환 일정을 일부러 이렇게 짜맞추려 해도 어려울 만큼, DJ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날에 동교동계의 맏형은 중형을 선고받고 '리틀 DJ'로 통한 동교동계의 양자는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는 기묘한 조합이 이뤄졌다.

흔히 '권부'로 통했던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은 이날 오전에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5년에 추징금 200억원의 중형이 선고됐다. '권부'는 권부(權副: 권 부총재)와 권부(權府)를 뜻하는 중의적 표현으로 쓰였다. 재판부도 판결문에서 권부를 '국민의 정부 실세'라고 표현했다.

지난 10일 새벽 3시경 이훈평 민주당 의원에 대한 구속이 집행됐다.
지난 10일 새벽 3시경 이훈평 민주당 의원에 대한 구속이 집행됐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재판부는 중형을 선고한 배경을 "국민의 정부 실세였던 피고인이 현대로부터 카지노·면세점 사업허가 청탁을 받고 알선수재액으로는 유례가 없는 200억원의 거액을 수수한 점이 인정된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권씨는 법정에서 허탈한 표정으로 "이건 아니다"면서 "하늘이 알 것이다"라고 강하게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씨의 측근으로 '동교동 특무상사'로 통했던 이훈평 민주당 의원도 지난 1월 6일 '제3자 뇌물제공'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2000년도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와 관련 당시 김윤규 현대건설 사장으로부터 고(故)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국감 증인으로 채택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부탁을 받아 정 회장을 증인출석 명단에서 제외시켜주고 건설업체(제3자)에 하도급을 받게 해주었다는 혐의다.

그러나 이 의원은 "다만 관련 건설업체가 현대건설 협력사로서 큰 적자를 보았는데 다른 공사 하도급을 받으려고 해도 현대건설 측에서 응찰 자체를 제한한다고 해서, 민원 해소 차원에서 김윤규 사장에게 그런 사실을 전하고 단지 응찰에 참여하기를 원한다고 전화한 사실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실체적 진실은 법정에서 가려지겠지만, 성실하게 살아온 그의 오랜 인생역정에 비추어 '동정론'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27일 한화갑 민주당 전 대표가 여의도 당사에서 수도권 출마선언 기자회견을 가진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29일 검찰에 소환됐다.
지난 27일 한화갑 민주당 전 대표가 여의도 당사에서 수도권 출마선언 기자회견을 가진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29일 검찰에 소환됐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지난해 5월 12일 한광옥 민주당 최고위원이 나라종금 로비의혹 사건과 관련 서부지청에 출두하고 있다.
지난해 5월 12일 한광옥 민주당 최고위원이 나라종금 로비의혹 사건과 관련 서부지청에 출두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국민의 정부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한광옥 전 민주당 최고위원도 동교동계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한광옥씨는 2002년 1차 수사 당시 축소·은폐 의혹을 받았던 나라종금 비자금 사건을 검찰이 강도 높게 재수사하는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염동연·안희정씨와 함께 엮이는 신세가 됐다. 보석으로 풀려난 한씨는 여전히 대가성을 부인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대북송금 특별검사에 의해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구속 수감된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경우 일부 언론은 국민의 정부 말기에 그를 부통령 또는 대신할 대(代)자를 쓴 대통령(代統領)으로까지 표현했다. 특검에서 대검 중수부로 넘겨진 박씨는 2000년 4·13 총선 무렵에 현대그룹에서 150억원을 받은 혐의(특가법상 뇌물수수)가 추가되어 지난해 12월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12년에 추징금 147억5200여만원을 선고받았다.

이 재판부 또한 판결문에서 "'정권 실세'인 피고인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지위에서 개인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150억원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 수수한 점이 인정된다"고 중형을 선고한 배경을 밝혔다.

그러나 박씨 또한 대북송금 특검 조사 때부터 일관되게 뇌물수수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또 실제로 박씨의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서는 '주었다는 증언'만 있을 뿐 아무런 '받은 증거'가 없어 논란의 여지가 큰 것 또한 사실이다. 7개월째 수감중인 박씨는 현재 안압이 높아지는 등 녹내장으로 실명할 위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처럼 권노갑·한광옥·박지원 등 동교동계의 핵심 3인이 사법처리된 상황에서 동교동계 정치인 가운데 가장 '깨끗한 이미지'를 가진 한화갑 의원마저 사실상 당내 여론에 떠밀려 수도권 출마선언을 하더니, 29일에는 검찰에 소환되어 사법처리될지도 모를 기로에 서 있다. 언제나 DJ의 충직한 비서였던 김옥두 의원은 당 안팎에서 이른바 '호남 물갈이'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지난해 7월 4일 대북송금 첫공판이 열린 서울지방법원에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장관이 출석하고 있다.
지난해 7월 4일 대북송금 첫공판이 열린 서울지방법원에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장관이 출석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들은 한결같이 무죄를 호소하고 있다. DJ 또한 박지원 전 비서실장 등의 무죄를 믿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권노갑 고문은 이미 다른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

또 국민의 정부 시절 일부 언론의 '마녀사냥'을 당해 특검에 의해 구속된 김태정 전 법무장관(옷로비 의혹), 진형구 전 검사장(파업 유도 혐의), 신광옥 전 민정수석(뇌물수수 혐의) 등도 나중에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런 점에 비추어 이들이 상급심이나 혹은 재심을 청구해서라도 무죄를 선고받을 가능성 또한 없지는 않다.

그러나 DJ 본인은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핵심 가신들이 줄줄이 철창 신세를 진 지금 이 순간에 DJ는 경제(외환위기 극복)와 외교안보(남북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에서는 성공한 대통령이지만 현실정치에서는 '실패한 정치인'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법정에서의 '유죄'이건 '무죄'이건, 동교동계 정치인들이 현실 정치에서 주역의 교체라는 거대한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동안 한국 정치를 지배해온 '3김 시대'의 패러다임을 벗어나려는 변화의 거센 흐름이 '인적 교체'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그것은 70·80년대 반독재 민주화 투쟁과 함께 한국 정치를 이끌어온 이들의 정치적 수명이 다했음을 알리는 조종(弔鐘)으로 들린다. 어쩌면 이같은 변화의 징후는 이미 지난 2002년 대선에서 처음 나타났고, 오는 4·15 총선으로 마무리될 가능성도 있다.

변호사 노무현은 이들이 이끌어온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피크였던 1987년 '민주화 투쟁의 파도'를 타고 정치권에 입문했다. 그리고 정치인 노무현은 마침내 2002년 대선에서 이들의 정치적 수명이 다했음을 알리는 변화의 징후를 읽고 대권에 도전해 성공을 거두었다.

이른바 '천·신·정'으로 상징되는 천정배·신기남·정동영 의원은 DJ와 동교동계가 70년대부터 이끈 반독재 민주화 투쟁과 변호사 노무현이 가세한 87년 민주화 투쟁의 성과물인 문민 정부의 등장을 계기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그리고 이들은 '지역주의 극복 및 부패정치 청산'이라는 두가지 대의명분을 내걸고 민주당을 이탈해 '신당'(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그러나 오랜 인고의 세월을 겪은 이른바 동교-상도동 가신(家臣) 출신의 정치인들과 달리 이들이 8년 전인 96년에 쉽게 정치권에 안착해 '무임승차'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을 영입한 동교동계 인사들이 아스팔트에서 최루탄을 마실 때 안온한 법정에서 또는 방송국에서 길렀던 '전문성' 덕분이다.

이들은 지금 DJ와 동교동계야말로 지역주의라는 부조리의 '몸통'이라고 비난하지만, 이들이 정치권에 쉽게 입문할 수 있었던 배경 또한 지역주의 구도였다.

앵커 정동영이 96년 총선에서 참신한 이미지로 수도권에 바람을 일으켜 달라는 동교동계의 주문을 뿌리치고 전주 출마를 고집해 '전국 최다 득표'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목포 출신의 변호사 천정배와 남원 출신의 변호사 신기남이 압도적인 표차로 이길 수 있었던 것도 DJ와 동교동계가 정치신인인 이들에게 '호남표가 많은 지역구'를 배려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일까. 천·신·정 가운데 일부 인사는 '바보 김근태'의 고백을 계기로 마지못해 스스로 고백했듯이, 자신들이 혁파하려는 그 부패정치의 '검은 돈'과 정치적 후원으로 전도유망한 정치인으로 성장한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 '웃자란' 이들이다.

지난 1월 11일 1위로 당의장에 선출된 정동영 후보와 신기남 상임중앙위원이 서로 축하를 하고 있다.
지난 1월 11일 1위로 당의장에 선출된 정동영 후보와 신기남 상임중앙위원이 서로 축하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래서 이들이 역사적 수명이 다한 동교동계를 '제물'로 4·15 총선에서 새로운 정치질서를 창출하려는 것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하더라도, 이들이 현실 정치에 참여한 민주화세력의 맏형으로서 양심과 원칙을 고수하는 '바보 김근태'를 '왕따'하는 현실은 우울하기만 하다. 또 정치적 수명이 다한 정치선배들의 마지막 가는 길에 예는 갖추지 못할망정 배은(背恩)으로 갚는 현실도 착잡하기만 하다.

그러나 어쩌랴. 이들 또한 엄연히 8년 전에 DJ가 발탁한 '전문가 그룹'의 대표 선수인 것을.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자신이 발탁한 '전문가 그룹'으로 자신을 따른 '가신 그룹'을 대체한 DJ는 과연 현실 정치에서 성공한 것일까 실패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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