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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워드 딘 홈페이지

"하워드 딘의 인터넷 캠페인은 뜨겁게 끓어 올랐다 식어버린 닷컴 열풍과 놀랍도록 흡사하다." Salon.com

"인터넷은 할 일을 다 했다. 무명의 후보를 선두 주자로 부각시키고 4천만 불이나 모금했으면 됐지 도대체 무엇을 더 기대하나?" 마르코스 M. 재니거 (블로그 운영자)


기대와 달리 아이오와 주와 뉴 햄프셔 주 경선에서 하워드 딘이 존 케리 상원 의원에게 연이어 고배를 마신 뒤 미국의 네티즌 사이에서는 인터넷 선거운동의 향배를 두고 뜨거운 논란이 오고가는 중이다.

양대 시사 주간지 <타임>과 <뉴스위크>의 커버를 연달아 장식하고 고어의 지지까지 끌어내면서 하워드 딘의 민주당 후보 당선은 기정 사실처럼 보였던 얼마 전과 비교하면 상전벽해다. 여론조사에서도 지지율 차이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면서 케리 상원 의원으로 민주당 지지자들의 표 쏠림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기자가 취재를 위해 인터넷에서 접촉한 민주당 지지자들의 표심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누구든 본선에서 부시를 이겨줄 사람을 찍겠다는 것이다. 지난 한국 대선에서 반이회창 표가 당선 가능성 있는 후보를 찾아 오랜 시간 방황하다 노무현 후보로 쏠렸던 것처럼, 지금 이들 반부시 표는 될성부른 민주당 후보가 누구일지 열심히 주판알을 튕기고 있는 중이다.

혜성 같은 등장만큼이나 급작스런 그의 추락을 두고 미국의 기성 언론은 인터넷 선거운동의 한계를 뚜렷하게 드러낸 것이라는 반응이고, 딘의 지지자들 역시 그의 미숙한 선거 전략에 실망감을 표시하고 있다.

"한 달이 넘도록 지적해 왔다. 딘 캠프는 좀 더 새롭고 개선된 광고가 필요하다고. 우리에게 더 이상 격려 따위는 필요 없다. 이제는 정보와 해답을 내놓을 때다!"

딘의 인터넷 캠페인을 진두 지휘한 조 트리피가 경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임한 직후 wild_salmon 이란 아이디의 네티즌이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일부 네티즌들은 지나치게 극성스러운 '딘사모' 회원들의 선거운동 방식에 화살을 돌리기도 한다. 존 케리 의원 진영에 합류하려다 거부 당한 바 있는 매트 스트롤러는 오렌지 색 모자를 쓰고 열성적인 선거운동을 벌이는 딘의 지지자들이 오히려 일반 유권자들의 반감을 초래한 측면도 있다고 지적한다.

딘 캠프가 적절한 순간에 인터넷에서 매스미디어로 선거운동의 무게 중심을 옮기는데 실패한 것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답한 제프 베도우라는 블로그 운영자의 시각은 그런 의미에서 주목할 만 하다.

"인터넷은 마치 정전기와 같다. 표면에서 강력한 전압이 흐르지만 한 번 충격을 주고 나면 그걸로 끝이다. 존 케리는 비록 낮은 전압이지만 지속적으로 전력을 생산해 냈다는 차이가 있다."

존 케리 후보가 딘과 같은 짜릿한 흥분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지만 관록 있는 정치인으로서 저력이 있었기에 결국 뒤집기에 성공했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딘의 추락을 놓고 마치 인터넷 선거운동의 효용이 다 한 것처럼 바라보는 기성 정치권과 언론의 시각에 대해 반론도 만만치 않다.

버지니아 주의 <국립기술이전센터>에서 테크놀러지 전문 기고가로 활동하는 아담 그루언은 예비 선거는 프로 야구의 페넌트 레이스와도 같은데 플레이오프도 치르기 전에 벌써부터 선거운동의 성패를 논하는 것은 조급증이 지나친 것 아니냐며 호들갑스러운 언론의 반응에 일침을 가한다.

딘 캠프에 비판적인 매트 스트롤러 역시 마찬가지 시각이다.

"블로그의 힘을 무시하는 것은 큰 실수다. 그것은 마치 1956년에 아이젠하워가 당선됐다 해서 TV가 선거에서 아무런 위력도 발휘하지 못 할 것이라고 단정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워드 딘의 인터넷 선거운동이 그를 민주당 후보로 만들어내지는 못 한다 해도 이번 미국 대선을 계기로 인터넷의 위력이 뚜렷하게 부상한 것 만큼은 틀림없다. 딘의 성패와 관계없이 선거운동에 있어 인터넷의 가능성만큼은 충분히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 아마존의 미 대선후보 모금 페이지
ⓒ amazon.com
인터넷이 더 이상 민주당이나 일부 진보 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아마존은 상업 사이트로는 초유로 자사의 사이트에서 대선 후보자들에 대한 정치 헌금 모금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아마존 이용자들은 마치 책을 사듯 사이트에 소개된 후보자들의 면면을 살핀 뒤 최대 2천 달러의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있다. 아마존 측은 모금을 대행하며 벌어들인 수수료는 비영리 민간 단체에 기부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민주당 경선에서의 표 쏠림 현상을 반영하듯 현재까지 존 케리 상원 의원이 1만8268 달러를 모금해 수위를 달리고 있고, 하워드 딘은 케리 의원 모금액의 절반을 약간 상회하는 9602달러를 모금한 상태다.

인터넷이 만능 해결사는 물론 아니다. 아무리 열성적인 지지자들이 있다 해도 후보의 치명적인 실수까지 인터넷이 덮어주지는 못 한다.

딘 캠프의 인터넷 선거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 <참여 군중>의 저자이자 저명한 인터넷 전문가인 하워드 라인골드 역시 인터넷에 대한 맹목적인 기대에 제동을 걸고 있다.

"인터넷은 획기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한 도구였을 뿐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인터넷이란 도구만 손에 쥐면 마술처럼 모든 것이 풀려나갈 것으로 생각하는 '기술 결정론'의 함정을 피해야 한다."

하지만 하워드 딘의 성패와 상관 없이 미국의 대선이 매스미디어 캠페인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그간 눈덩이처럼 불어난 선거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하고, 아울러 정치 현장에서 소외되어왔던 지지자들을 수평적으로 엮어주는 고리 역할을 수행하여 직접 민주주의의 이상을 되살릴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 인터넷임을 입증한 것만큼은 평가해야 할 것이다.

하워드 딘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을 즈음, 미국의 저명 저널리스트 개리 울프는 <와이어드>에 기고한 장문의 기사에서 재래식 선거운동과 인터넷 상의 선거운동이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5가지 원칙을 정리한 바 있다. 이번 총선에서 인터넷을 통해 유권자들과 만나고자 하는 정치인들은 한 번쯤 새겨 볼 것을 권한다.

1. 네트워크를 단순하게 설계하라.(Make the network stupid.)

2. 개미들에게 역할을 부여하라.(Let the ants do the work.)

3. 정치 지도자는 모임의 장소다.(Leaders are places.)

4. 지지자들이 다른 지지자들을 불러 모으도록 하라.(Links attract links.)

5. 말단의 지지자들이 수평적으로 연결되도록 하라.(Allow the ends to conn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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