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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과거 김수환 추기경에게 국가보안법 불고지죄의 칼날을 겨눴던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금은 김 추기경의 지적 하나 하나를 금과옥조로 여기며 원로의 말씀으로 떠받드는 조선일보가 1989년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서경원 의원 입북 사건 당시 김 추기경의 국가보안법 불고지죄 위반 여부를 추궁하며 소명을 요구했던 것이다.
당시 서경원 의원 밀입북 사건은 정국의 흐름을 반전시키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안기부는 이 사건을 간첩사건으로 규정하고, 당시 평민당 총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불고지죄 사건으로까지 수사를 확대했다.
이 때, 서경원 의원이 북한 방문 직후인 88년 9월 명동성당으로 김수환 추기경을 찾아가 자신의 방북 사실을 털어놓은 것이 밝혀지면서, 불고지죄의 칼날은 김 추기경에게도 향했다.
당시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함세웅 신부가 "서 의원이 김 추기경을 방문한 것은 방북 직후인 작년 9월 22일로 기억하고 있다"고 확인하고 "서 의원이 혼자 찾아와 추기경 면담을 요청해서 내가 김 추기경께 안내하고 배석했었다", "서 의원이 얘기하는 동안 김 추기경은 주로 듣는 편이었으나 간혹 '교회 전체에 끼칠 영향을 감안, 적당한 시기에 방북 사실을 밝혀야 한다'든가 '신중해야 한다'는 등의 조언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조선일보>는 1989년 6월 29일 <徐의원, 北韓방문 직후 金추기경에게 알려>라는 제목의 기사로 이와 같은 내용을 보도하며, "서 의원이 김 추기경에게 입북 사실을 밝힌 것이 천주교의 '고해 성사'로 간주될 경우 사제는 고백 내용을 비밀에 부쳐야 하는 것이 천주교의 관례인 반면, 현행 국가보안법은 보안법 위반 혐의자임을 알면서도 관계 기관에 신고치 않으면 동법 제10조 불고지죄에 해당돼 처벌받도록 규정하고 있다"라며 김 추기경의 위법성 여부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역시 같은 기사에 따르면, 당시 공안 당국에서 "김 추기경 등 서 의원이 접촉한 종교계 인사들에 대해서는 아직 이렇다할 수사 계획이 서 있지 않다"라고 밝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조선일보는 7월 1일 2면 <김 추기경 면담 고백성사 여부 논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당시 서경원 의원과 추기경의 면담은 고백성사로 보기 어렵다는 법조인의 의견과 '준고백성사'로 봐야 한다는 가톨릭계의 의견을 동시에 소개하며, 김 추기경의 실정법 위반 여부 문제를 집중 거론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실정법 위반임이 명백하다면 법적 처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나, 종교적인 권위와 직업 윤리를 존중해서 신중히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추기경의 사회적 위치로 보아서도 실정법을 적용시키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고 신중한 결론을 맺고 있다.
하지만 같은 날 <고백성사>라는 제목의 사설에서는 "고백성사에는 반드시 통회의 절차가 있어야 하는데 그가 과연 자신의 행위를 잘못이었다고 통회했는지는 그의 지금의 태도로 보아 극히 의심스럽다"며 김 추기경과 서 의원의 면담을 '고백성사'로 볼 수 있는지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더불어 "두 성직자가 서씨의 '고백'을 듣고 그것을 정말로 죄로 인식했는지 안했는지, 그리고 죄로 인식했다면 과연 어떻게 보속하라고 명했을 것인지, 이것 역시 두 성직자와 신만이 아는 비밀이니 우리로선 다만 답답할 따름이다"라며 두 성직자에 대한 '사상검증'까지 시도하고 있다.
"만약에 두 성직자가 서씨의 고백 내용을 교회의 계명상으로나 국가의 법률 상 하나의 '죄'임에 틀림없다고 믿었을 경우에는, 두 성직자는 교회법상으로는 그의 죄를 용서하고 고해의 비밀을 지켜야 하겠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서씨에 대해 간곡하게 자수를 권했어야만 마땅하고 당연했을 터인데, 과연 그런 적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알고 싶다"며 두 성직자에게 소명을 요구했다.
조선일보는 이 사설을 통해 김 추기경과 서경원 의원의 면담이 합법적이지 않다고 증명하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정작 공안 당국은 김 추기경에 대한 사법 처리를 검토하지도 않고 있던 상황에서 김 추기경을 위법 행위에 강한 의혹을 제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추기경을 곤경에 몰아넣었다.
당시 김수환 추기경의 나이 예순 여덟. 그러나 이 사설이나, 당시 서경원 의원 밀입북 사건 관련 보도에서 조선일보는 과연 원로 종교인에게 얼마나 예의를 갖췄던 것인지 되묻고 싶다.
| | <조선일보> 1989년 7월 1일자 사설 전문 | | | | 고백성사
서경원 사건의 한 여파로, 김수환 추기경과 함세웅 신부에 대한 서씨의 '고백'을 과연 어떻게 봐야 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커다란 관심사가 되고 있다. 서씨의 '고백'과 두 성직자의 청취는 과연 교회의 성사 중의 하나인 고백성사로 간주할 수 있겠는가 없겠는가. 이것이 우선 가장 큰 관심사다.
고백성사를 할 때 신자는 우선 자기의 양심을 성찰하고 죄를 찾아내 이를 신부에게 고백하고 용서를 빈다. 그러면 신부는 충고를 해주고 죄를 사해주면서 그에 대해 죄갚음-즉 보속이란 것을 하라고 명한다. 이렇게 해서 죄를 용서받은 신자는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죄갚음을 행하는 것으로 고백성사는 완성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씨는 우선 자신의 밀입북을 양심에 위배되고 계율에 위배되는 죄로서 인식했느냐 하면, 그것이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서씨 자신이 이미 "나는 양심에 따라 행동했다"고 당당히 호언했지만, 그것만 봐도 그는 절대로 "잘못했습니다"하고 죄를 고백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점이 우선 전형적인 고백성사하고 사뭇 달랐을 것 같다.
고백성사에는 반드시 통회의 절차가 있어야 하는데 그가 과연 자신의 행위를 잘못이었다고 통회했는지는 그의 지금의 태도로 보아 극히 의심스럽다.
아울러 두 성직자는 서씨의 '고백'을 듣고 그것이 계명을 어긴 죄라고 인식하고서 그의 죄를 사해주고 보속을 명하고 충고를 해주었는지 궁금할 뿐이다. 그것이 진실로 고백성사였다면 그러한 고죄 청취, 충고, 보속, 지시 그리고 죄의 사함과 강복 등의 기본적인 의식이나 그 비슷한 뼈대라도 있어야 했을 터인데, 과연 그 때의 정황이 어땠는지 심히 궁금하다.
그리고 두 성직자가 서씨의 '고백'을 듣고 그것을 정말로 죄로 인식했는지 안했는지, 그리고 죄로 인식했다면 과연 어떻게 보속하라고 명했을 것인지, 이것 역시 두 성직자와 신만이 아는 비밀이니 우리로선 다만 답답할 따름이다.
그런데 그것이 고백성사로서의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었다면 더욱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설령 고백성사였다 하더라도 그 두 성직자가 과연 사후에 서씨에게 자수를 권한 바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우리에겐 대단히 관심 깊은 대목이다.
만약에 두 성직자가 서씨의 고백 내용을 교회의 계명상으로나 국가의 법률 상 하나의 '죄'임에 틀림없다고 믿었을 경우에는, 두 성직자는 교회법상으로는 그의 죄를 용서하고 고해의 비밀을 지켜야 하겠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서씨에 대해 간곡하게 자수를 권했어야만 마땅하고 당연했을 터인데, 과연 그런 적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알고 싶다.
국민 모두가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주시하는 문제인 만큼 두 성직자가 스스로 이와 같은 국민적인 의문점과 궁금증에 대한 가능한 한 疎明(소명)을 해주면 가장 합리적일 것 같다.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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