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산파이자 양심적 사제로 평가받고 있는 함세웅 신부가 곤경에 빠졌다.
함세웅 신부가 지난 1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추기경의 시국관에 대한 의견을 피력한 것을 두고, <조선일보>가 "추기경 비판" 운운하며 보도하자, 일부 천주교 신자들이 함세웅 신부에 대해 비난을 쏟아 붓고 있다.
특히 제기동성당 홈페이지, 가톨릭 서울대교구 홈페이지에서는 함 신부에 대한 원색적인 공격이 쇄도하고 있다. 또한, 함세웅 신부는 신자들의 이러한 반응에 대해 "저와 뜻을 달리하는 형제자매들께 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제기동성당 홈페이지에 올림으로써,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도대체 함 신부는 <오마이뉴스>에서 무슨 말을 했길래 이런 비난을 받는 것인가?
"김 추기경은 시대의 징표를 제대로 읽지 못하셨습니다. 김 추기경께 정보를 건네주는 분들의 한계입니다. 그 분의 '참으라'는 말씀은 불의한 독재시대에 권력자들이 늘 했던 표현입니다. 그분의 사고는 다소 시대착오적이라고 판단됩니다."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함 신부가 추기경과 관련해서 내뱉은 말은 이게 전부다. 물론 이 말을 김 추기경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필자는 함 신부가 "김 추기경에게 정보를 건네주는 사람들"을 언급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함 신부가 누군가? <평화방송> <평화신문> 사장을 역임했으며, 서울대교구 홍보국장을 지내기도 한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주요 성직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김 추기경을 지근에서 보좌했던, 추기경의 측근이었던 인물이다.
그런 함 신부가 추기경에게 정보를 건네주는 사람들을 언급하며, 추기경의 행동을 안타까워했다면, 함 신부가 비판의 초점을 "추기경"으로 맞춘 것이 아니라, "추기경에게 정보를 건네주는 사람"을 비판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지 않을까? 선배의 입장에서 현재의 추기경 보좌진들을 비판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는 말이다.
또한 함 신부가 언급한 "김 추기경께 정보를 건네주는 사람들". 여기에는 추기경 측근들뿐만 아니라, '조중동'도 포함이 될 수 있다. 인터뷰를 통해 밝힌 함 신부의 조중동관을 들여다보자.
"저는 조중동을 아예 안 봅니다. 그 신문을 보면 오히려 제 머리와 눈이 흐려지고 때가 묻을 것 같습니다. 그 신문은 사람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합니다. 저는 조중동도 ’193명 부류’에 들어가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 ’몇몇 사람을 잠시 속일 수 있으나, 모든 사람을 끝까지 속이지는 못한다’라는 링컨의 말이 떠오릅니다.
70년대에도 큰 사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그들은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촛불집회가 있고, 한겨레가 있고, 인터넷이 있습니다. 그때에 비하면 너무도 변한 아름답고 좋은 세상입니다. 저는 인터넷이 조중동을 이긴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적이 아닙니까?
조중동은 정도를 벗어났습니다. 유럽의 큰 성당들 안에는 신자들이 없는데 이것은 교회가 제 역할을 못했기에 생긴 공동화 현상으로, 이와 같이 조중동도 스스로 정화되지 않으면 인터넷 정론에 밀리게 돼 있습니다."
그렇다. 함 신부가 언급한 "김 추기경께 정보를 건네주는 사람들"에는, 추기경 측근뿐만 아니라, 조중동도 반드시 포함되는 것일 게다. 조중동이라는 거대 언론이 신자 없는 교회처럼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그것은 더욱 확실해진다.
이 인터뷰 기사를 보고, 조중동이 발끈했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역시 <조선일보>는 4월 2일자 조간신문을 통해, 함 신부가 조중동에 대해서 언급한 부분은 쏙 빼고, 추기경과 측근에 대한 비판 부분만을 발췌해서, 가톨릭 신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함 신부 비판의 대상이 정말로 무엇인지 <조선일보>는 모르는 것일까? 결과적으로 조선일보는 함 신부와 추기경을 존경하는 신자들 사이에 싸움을 붙여놓음으로써, 추기경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은 아닌가?
천주교 신자들의 뜨거운 반응에 고무된 것인지, <조선일보>는 4월 2일 인터넷에 게시된 4월 3일자 사설에서 한 술 더 뜬다.
이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추기경의 원론적이고 당연한 발언에 대해 천주교 내의 중진 신부가 거친 용어를 사용하면서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나서는 이런 모습이 우선 우리에게는 생경해 보인다"라고 말하는 한편, "추기경의 발언은 특정 정파나 사회세력을 지지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건전한 상식으로 나라의 형편을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할 수 있고 해야 할 이야기다"라고 추기경 비위 맞추기에 나선다.
또한 함 신부가 같은 인터뷰에서 정치적 견해를 피력한 것을 문제삼아, 함 신부의 추기경 비판이 공정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어른이 없는 게 아니라 어른에게 어른 대접을 하지 않는 것이다"라며, 함 신부의 발언에 대해 "바로 이런 어른 없는 시대에 정의를 독점하고 있는 듯 행세하는 인사들의 행태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아 더 씁쓸하다"고 덧붙였다.
참고로 <조선일보>는 지난 89년 '서경원 의원 밀입북사건' 당시 김수환 추기경과 함세웅 신부를 '국가보안법 불고지죄 위반사범'으로 몰아 공격한 바 있다.
그러한 행태를 보이던 <조선일보>가 이제와서는 함세웅 신부와 김수환 추기경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하는 것을 두고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