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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술집은 내가 요 근래 개발한 술집 중에 하나다. 얼마 전에 집 짓느라고 기초 공사를 할 때, 펌프카 기사한테 대낮부터 붙잡혀 들어가서 알게 된 술집이다. 이곳은 지나가다가 술이 먹고 싶으면 막걸리 한 대접 마시고 천 원짜리 한 장 던져주고 가면 되는 술집이다.

예전에 대전 출판사에서 근무할 때도 이런 술집이 있었다. 그때도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지나가다 막걸리 한 잔씩 마시고 500원짜리 동전 하나씩 던져주고 가곤 했었다. 이제는 사라졌거니 했는데 우리 동네에도 이런 술집이 있다니 신기했다. 이곳은 보통 일 없는 실업자들이나 노인네들이 막걸리 한 잔에 소주 한 병을 안주 없이 깡으로 마시는 곳이었다. 그런데 통막걸리 맛이 기가 막혔다. 막걸리 색깔이 우유처럼 뽀얗고, 큰 단지에서 퍼주는 운치도 맛을 더했다.

▲ 막걸리와 김치 안주
ⓒ 장승현

하루는 아내와 퇴근할 때 그곳을 지나가게 되었다. 난 갑자기 목이 마르고 텁텁하니 막걸리가 마시고 싶어졌다. 나는 운전하는 아내한테 갑자기 차를 세우라고 했다. 영문을 모르는 아내는 그 술집 근처에서 차를 세우고 날 기다렸다. 나는 그 술집을 향해 뛰었다. 그리고 그 술집 문을 열어 젖혔다.

"아줌마, 막걸리 한잔 주세요."

그러면서 천 원짜리 지폐를 한 장 디밀었다. 아주머니는 한 말짜리 막걸리 통을 쥐고 흔들더니 큰 대접에 하얀 통막걸리를 한 잔 따라주었다. 그때의 막걸리 맛은 정말 꿀맛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맛이었다. 그리고는 손으로 입을 닦고 아내에게 가 모르는 척을 하고 집에 가자고 했다. 설마 그 대낮에 막걸리 한 잔 마시러 그렇게 달려간 줄 알았으면 같이 안 산다고 난리쳤을 것이다.

내 주변에는 술꾼들이 많이 있다. 술꾼의 자격은 우선 막걸리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야 한다. 그리고 주식이 소주여야 하고, 맥주는 제정신일 때는 거의 마시지 않는 게 술꾼들의 철칙이다. 그리고 양주는 거의 마실 기회가 없어야 진정한 술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난 조치원이라는 작은 읍내에서도 잘 가는 막걸리집이 몇 군데 있다. 역전 근처에 있는 막걸리집과 유일하게 전라도 음식인 삭힌 홍어회를 파는 식당, 그리고 요 근래 개발한 이곳이었다. 삭힌 홍어회는 백 퍼센트 가짜 같은데 그래도 이런 시골 구석에서 암모니아 냄새가 나는 고기라도 있다는 게 천만 다행이었다.

막걸리는 다 좋은 데 하나 정말 안 좋은 게 있다. 막걸리로 시작하면 기본이 3가지 정도를 짬뽕하고 심하면 4가지를 짬뽕해서 그 다음날은 거의 죽는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왜냐하면 소주로 시작하면 소주로 끝나는 일이 많지만 보통 막걸리로 시작하면 2차는 분명 소주고 그 다음은 맥주, 소주, 양주 뭐 이렇게 나가는 게 보통이다. 처음에 소주로 시작해서 막걸리로 끝내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 본의 아니게 술을 끊게 됐다. 병원에 입원해 2주 동안 수술을 세 번이나 하고 퇴원 후 약물 치료를 계속하는 바람에 술을 안 마시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셨나를 입원하는 날 간호사와의 대화에서 새삼 느끼게 된 것이었다.

"술을 마십니까?"
"예에."
"주량이 얼마나 되시는데요?"
"글쎄요. 소주 한 병 정도요."

나는 소주 두 병이라고 이야기하려다 좀 창피하기도 하고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어 소주 한 병으로 거짓말을 했다.

"일주일에 몇 번이나 마시는데요?"
"매일 마시지요."
"아니 매일 소주 한 병씩을 마신다고요?"

간호사는 기겁을 하고 놀라는 눈치였다. 난 보통 이 정도면 많이 마시는 술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간호사의 반응을 보니 놀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난 술을 매일 마시는 편이다. 보통 모임이나 친구들하고 어울려서 마시는데 마셨다 하면 소주 두 병은 기본이고, 대부분 2차를 가면 맥주로 입가심 하는 게 일반적이 술좌석이었다.

그리고 남들은 기분이 나쁘거나 스트레스 때문에 술을 많이 마신다고들 하는데 난 기분 나쁠 때는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다. 그리고 집에서 혼자는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다. 모임이 없을 때는 술 생각이 전혀 나지 않고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아예 술을 잊고 살기도 한다. 이 정도면 술 중독이 아닌 것 같은데 전체적으로 마시는 양을 보면 중독자보다도 더 많은 편이다.

난 사람을 많이도 만난다. 모임이 많기도 하고, 친구들도 여러 형태로 존재한다. 그리고 정말 술꾼들은 서로를 알아본다고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술 생각이 나면 으fp 내 생각을 하고 전화를 한다. 그런 친구들이 주기적으로 몇 팀이 있다. 이런 친구들 때문에 술을 거의 매일 마시게 된다.

그래서 가끔 가다 소식이 뜸하거나 연락이 없으면 ‘아, 오늘쯤은 술 마시자고 전화가 올 텐데, 오늘은 이 친구하고 술 한 잔 마실 때가 되었는데’ 하면 여지없이 연락이 오거나 내가 연락을 하게 된다. 조치원이라는 읍내가 아주 작은 소도시라 여기저기 식당이나 술집에 들어가다 보면 한두 차례 꼭 아는 사람 만나는 게 다반사였다. 그러다가 또 어울리고 권커니 자커니 하다 보면 또 곤드레 만드레가 된다.

▲ 연탄 난로가 있는 풍경
ⓒ 장승현

엊그제도 대낮에 친구를 만났다. 증권회사에 다니다 식당을 알아보러 다니는데 조치원에서 아주 친한 친구였다. 그래서 막걸리나 한잔 하자고 그곳으로 데리고 갔다. 연탄 난로가 있고, 연통이 밖으로 빠져나가고 탁자에는 이미 대낮인데도 노인네 둘이 깡소주를 까고 있었다. 역시 그 자리에는 자주 보는 동네 술꾼들이 한쪽 자리를 잡고 있었다.

대낮에 술집에서 자주 보는 얼굴들이 있으면 서로 쑥스러운 게 사실이다. 꼭 내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아 유쾌한 기분이 아니다. 이런 허름한 술집에 대낮부터 들어가면 우리들 스스로가 노숙자나 실업자가 된 느낌이다. 그래도 어쩌랴 막걸리가 좋은 걸. 양은 주전자에 막걸리 대접으로 한 잔 들이켜고 맨손으로 김치 조각을 혀에 감아 먹으면 알딸딸하게 취기가 올라와 기분이 삼삼해졌다. 역시 대낮에 마시는 막걸리 맛은 기가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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