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민주화를 위한 길에 불을 밝히는 '시대의 불꽃'
시대의 암흑을 깨운 노동운동의 상징 전태일 열사,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참혹한 주검으로 떠올라 4·19의 불길을 올린 김주열 열사, 5·18 광주민중항쟁 당시 도청 투쟁위원회 대변인이자 계엄군의 총격에 의해 사망한 윤상원 열사.
그 외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 희생당한 김상진, 김경숙, 성완희, 박영진 등의 열사에 대한 평전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발행되었다. 이들은 '시대의 불꽃' 시리즈로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긴다.
1권
전태일 / 김기선 지음 / 2003년 10월 15일
2권
최종길 / 김기선 지음 / 2003년 10월 15일
3권
김진수 / 김기선 지음 / 2003년 10월 15일
-이상 1차분
4권
김상진 / 김남일 지음 / 2003년 12월 29일
5권
김경숙 / 박영희 지음 / 2003년 12월 29일
6권
성완희 / 유영갑 지음 / 2003년 12월 29일
7권
김주열 / 전성태 지음 / 2003년 12월 29일
8권
윤상원 / 윤동수 지음 / 2003년 12월 29일
9권
박영진 / 이인휘 지음 / 2003년 12월 29일
-이상 2차분
2002년 처음 기획하고 집필에 들어간 '시대의 불꽃' 시리즈는 앞으로 40권 가량을 예고해 놓고 있는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시대의 불꽃'을 되살리고, 민주화를 위한 길에 불을 밝히는 의미가 큰 작업이기도 하지만, 그 동안 시도해보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시행착오 또한 있으리라.
기자는 '시대의 불꽃' 기획 편집을 담당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홍보출판과장 김종철(43, 2002년 2월 입사)씨를 만나 이 시리즈의 기획의도, 진행과정, 그리고 책을 출간한 이후의 고민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김 과장은 먼저 '시대의 불꽃'이 우리의 현실과 관련하여 큰 의미를 지닌 작업임을 밝힌다.
"오늘날에도 민주화와 관련되어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 길을 가는 데 있어, 먼저 피를 뿌리고 오늘날 민주주의를 건설하는 데 기여한 이들의 삶을 돌아보는 것은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들의 삶과 역사적 환경을 오늘 되새겨 보고, 그런 과정에서 당시 문제를 인식했던 이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보면서 오늘날 민주화를 위한 길에 어떤 자세로 대응해야 할지 우리 자신을 점검할 수 있는 계기가 되겠죠."
"청소년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평전 되길 바래"
'시대의 불꽃' 시리즈는 그간 한국출판계에서 평전이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분야에 손을 뻗은 의미도 찾아볼 수 있다. 즉 '우리와 아주 가까운' 시대의 인물에 대한 평전이 거의 없는 실정에서 '시대의 불꽃'은 그 곳에 손을 뻗은 것이다.
김종철 홍보출판과장 역시 "한국 출판계에서 평전의 경우, 현대 인물이 거의 없습니다. 주로 우리와는 어느 정도 시간차를 둔 과거 인물이죠"하고 말한다.
그리고 지난 민주화 운동 관련 자료들이 주로 '투쟁'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시대의 불꽃' 시리즈는 평전이라는 형식 속에 투쟁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과 고민을 더 적극적으로 담았다. 즉 역사 속의 '인간'을 복원해냈다. 그것이 기존의 작업과 '시대의 불꽃'에서 눈에 띄는 차이점이다. 이 점은 <김주열>의 저자 전성태의 서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4·19를 말할 때면 김주열을 내세우곤 한다. 그러나 김주열의 실체는 없었다... 그는 기억의 과잉과 부재 속에 앉아 있었다. 4·19와 관련한 그의 사회역사적 평가는 과잉되어 있었지만, 정작 그가 어떤 집안에서 태어나 어떤 꿈을 꾸고 어떻게 살았는지 그 짧은 생을 알 길이 없었다... 김주열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았으나 정작 김주열을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김주열> 저자 서문)
이는 그뿐만 아니라 민주화 운동의 길에 산화해 간 많은 열사들에게도 해당된다.
한편 이 책들을 386 이전 세대, 특히 오늘날 청소년들이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란 교과서의 문자 속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부딪치고 때로는 피를 흘리며 얻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케 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될 듯하다. 이 점에 관해서, 김종철 홍보출판과장도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냥 민주화 운동이라고 말하면 딱딱하잖아요. 젊은 청소년들에게는 옛날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고, 기사나 사건으로 다루다보면 아무래도 화석화되는 느낌이 있죠. 그러다 보니 개인의 삶과 고민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면서 접근해야 공감대를 형성하기 쉽고 그들도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어서 그는 "현대사의 상당한 부분을 민주화 운동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시대의 불꽃'은 그에 대한 이해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봅니다"하고 말하며, 전교조를 비롯한 교육단체와 '시대의 불꽃'의 교육적 활용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계획이라고 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한 삶을 다룬 것"
'시대의 불꽃'의 인물선정 기준은 어떻게 될까? 이에 대해 김 과장은 이렇게 말한다.
"열사들이 한 분 한 분 다 소중한 분들이기는 하지만, 읽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개인적으로 자란 배경이 달라도 사건 자체는 유사한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너무 유사한 모습이 보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본적으로 열사나 희생자를 중심으로 갑니다. 그렇지만 청소년을 대상으로 민주주의라는 학습장을 보았을 때 어떤 삶을 보여주어야 할 것인가 고민해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성을 반영할 필요가 있죠."
나아가 그는 '시대의 불꽃'에서 앞으로는 알려진 경우보다는 묻힌 경우를 발굴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다.
"희생자라고 분류되는 분들, 저희 시리즈에는 김진수, 김경숙 열사가 있는데, 그런 경우는 사실 다른 곳에서 책이 나오기가 힘든 분들 아닙니까? 특히나 김진수 열사는 기억하고 있는 집단(추모 사업회) 자체가 없고, 특정한 사건으로 명명되지도 않고 잊혀져 가고 있는 경우라고 할 수 있죠.
조직적으로 참여하고 대표로 앞장서서 활동하다 희생당한 경우보다 그야말로 공권력의 폭력에 의해 뜻하지 않게 돌아가신 분들을 다루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봅니다.
기억하고 있는 집단 자체가 없고, 특정한 사건으로 명명되지도 않는 잊혀진 분들이 복원되면서 가족 분들도 매우 고마워하십니다. 내 자식의 죽음이 헛된 것이 아니었구나 하고 새로운 삶의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죠."
그러면서 그는 '시대의 불꽃'은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한 삶을 다룬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 점 역시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기도 하다.
"시행착오 겪은 '시대의 불꽃' 재검토할 것"
김 과장은 이야기하는 중간중간 현재 작업을 재검토하고 있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재검토'한다는 것은 이전 작업이 미흡했거나 무언가 잘못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현재까지 이루어진 작업을 보면, 1차분(1-3권)과 2차분(4-9권) 사이에서 미묘한 '단절'을 느낄 수 있다. 확실히 2차분이 1차분의 시행착오를 겪고 난 이후인지라 완성도가 더 높다. 문학적으로도 더 풍성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기자는 그 미묘한 단절이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알고 싶었다. 가장 큰 차이는 역시 책을 읽는 대상을 누구로 잡느냐에 있는 듯하다. 1차분은 처음에 공공도서관이나 관련 단체에만 배포했으나, 다시 일반 독자들도 찾을 수 있게 서점에 내놓게 된다.
"처음에 낼 때는 서점을 통해 책을 팔겠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공익적 특성을 지닌 준정부기구니까 만들어서 그냥 공공도서관이나 민주화운동 관련 단체에 배포할 생각만 했죠. 그러나 이후 적극적으로 독자를 만날 필요를 느꼈습니다.
저희가 그냥 정부 예산으로 하다 보면 타성에 젖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독자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좀더 문학성을 강화할 필요를 느꼈고, 독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고민하게 되었죠.
또한 그냥 보는 책하고 자신이 사서 보는 책이 다를 겁니다. 적극적으로 사서 보는 독자가 반응을 보이고, 또 그것이 제작에 참고가 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민주화 운동의 화석화'를 피하고, 독자에게 다가가 평가를 받겠다는 의사는 충분히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독자에게 다가가기에는 아직 부족한 부분들이 많다. 무엇보다 후진적인 편집 기술이다. 특색 없는 표지하며, 촌스러운 2도 인쇄 등 편집이 한참이나 뒤떨어져 있다.
"문제의식은 갖고 있습니다. 처음에 문학성을 충분히 고려하고 않고 시작했는데, 이전 작업을 무시할 것인가 아니면 보완할 것인가 고민하다 바꾸지 말고 그 안에서 찾아보자는 판단을 하게 되었죠. 1차분에서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접근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기 때문에, 한계를 보여준 결과라고 봅니다."
정작 큰 문제는 평전의 기술 방식에 있다. 앞에서 잠깐 논했지만, 그간 한국출판계에서는 우리와 아주 가까운 시대의 인물에 대한 평전 작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물론 까닭이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우리와 가까운 인물을 평가할 때는 상당한 '위험'이 따르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 위험이란 바로 주변 인물들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다. 즉 결정적으로 이해 당사자들이 아직 살아 있기 때문에 평전이 단지 평전으로 끝나지 않고 때로는 복잡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시대의 불꽃' 시리즈 중 책을 덮었을 때 뒷맛이 매우 좋지 않은 경우가 있다. 기자는 말을 돌려서 은근슬쩍 그것을 물어보았다. 김 과장도 기자의 속내를 파악하고 그를 부인하지 않았다.
"당사자는 안 계시지만 주변분들, 특히 강한 집착을 가진 가족 분들이 계시고, 또는 아주 가까운 분들이 아직 살아 계시기 때문에 원고에 대한 간섭이 있어요. 객관성을 담보하기가 어려운 문제가 생기는 것이죠. 약간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그는 "간섭으로 인해 작가의 글이 개작되다시피 한 경우가 있다"고 밝힌다. 그것이 어떤 책이냐고 캐묻는 기자에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책을 읽어보면 어떤 경우인지 충분히 알 수 있다. 모든 행동을 다 미화하려는 어색함. 평가를 두려워하는 서술. 평전으로서 가치가 없는 책이 있다.
"다 잘하고 다 훌륭하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잖아요. 보통의 삶이 드러나야 하는 건데. 불꽃처럼 타오른 짧은 삶은 먼데 있는 특별한 사람의 얘기가 아니라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나도 할 수 있는…. 갈등하기도 하고 어려움으로부터 도망가기도 하고 모습을 많이 담아야 할 텐데… 역시 검열을 받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는 주위의 간섭으로 인한 객관적인 평가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그래서 그는 '시대의 불꽃' 작업을 재검토하고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으며 그간 시행착오를 극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할 것이라고 한다.
이어 그는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지적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는 그간의 한계에 대해서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 동안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이란 게 무엇인가 하는 것들로 여러 가지 실험을 하는 단계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역사상 처음이기도 하거니와 세계적으로도 전무하기도 하죠.
시작 단계에서 말은 멋있게 나와도 실제로 일은 이미 뭐 남들이 해 온 것을 자원을 투입해서 보기 좋게 만드는 정도 이상이 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거든요. 그런 것을 뛰어넘을 것을 고민하고 있는데 쉽지는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밝힌다.
"작년에 송두율 사건 문제로 예산이 대폭 삭감되는 바람에 올해 사업에는 차질이 있을 듯하지만 시간은 늦더라도 애당초 가졌던 계획은 차질 없이 실행할 겁니다. 열사, 희생자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 책을 통해서 현재 진행되고 또 진행되어야 하는 민주화운동 내지 민주주의 확산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 항상 고민하고 있습니다.
결국 거의 원점에서 재검토해서 새롭게 시작한다는 생각입니다. 민주화 운동이 화석화되지 않으려면 어떤 기획이 되어야 할 것인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그의 말처럼 민주화 운동이 화석화되지 않고 오늘날의 의미를 살린 '시대의 불꽃'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