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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금희의 <프리다 칼로와 나혜석, 그리고 까미유 끌로델>
ⓒ 재원
프리다 칼로와 나혜석, 그리고 까미유 끌로델. 세 사람은 당신에게 무엇을 상기시키는가? 예술가, 위대한 열정, 시대를 앞선 이의 불우한 표정들…. 그랬다. 그들은 그 모든 것을 지녔기에 진정 아름다웠던 예술가들이었다.

정금희의 <프리다 칼로와 나혜석, 그리고 까미유 끌로델>(재원·2003)은 '시대를 앞서 예술적 운명과 만난 여인들(부제)'에 관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미술계 역시 여타의 영역과 다를 것 없이 '여성' 미술가들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하지 못했음을, 그러한 상황에서 칼로와 나혜석, 끌로델의 생애를 다시 읽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임을 지적한다.

저자의 표현대로 세 사람은 비극적인 삶 속에서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꾸려갔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책은 세 명의 위대한 작가들이 어떠한 삶과 작품을 창조해 냈는가에 주목한다.

서른두 번의 외과 수술을 받으며 무거운 척추 교정용 코르셋을 착용하고서 루브르 미술관에 소장될 만큼 훌륭한 그림을 그려냈던 프리다 칼로. 오른쪽 다리를 잘라내야 했을 때 '내게 날개가 있는데 왜 다리가 필요하겠는가'라고 의연히 적었던 칼로를 통해 독자들은 상처투성이의 삶에 맞설 용기를 나눠 가진다.

▲ <프리다와 디에고리베라>(1931)을 재현한 영화 <프리다>의 한 장면(왼쪽)과 칼로의 <부러진 척추>(1944). 눈은 울고있지만 굳게 다문 입은 작가의 강한 의지를 드러낸다.

조선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와 문학가로서 눈부신 활동을 펼치며 남성 중심적 인습에 저항했던 나혜석은 그의 4남매 자식들이 아닌 우리 모두에게 '에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 제도와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에미는 과도기의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였느니라'는 유언을 남기고 있다.

▲ 나혜석의 작품 <등을 보인 나부>(연대불명․왼쪽)와 <자화상>(1928). 특히 야수파적인 성향이 잘 나타난 <자화상>은 대상의 단순화, 강한 색채구사 등으로 예술적 생명력이 느껴진다.

로댕의 연인이고 동료이면서 조력자이자 작품의 영감을 불어 넣어주는 여신이었던 끌로델의 이름은 한 세기에 나올까 말까 한 위대한 조각가로 다시 쓰여진다. 이러한 작업은 그를 '꿈으로부터 지옥으로 떨어뜨린' 것이 그의 연인이자 동료이면서 조력자였고 작품의 영감을 주고받았던 로댕과 그에게만 눈길을 주었던 시대였다는 것을 새삼 상기시킨다.

▲ 끌로델의 <중년>(1894~1903)과 <왈츠>(1895). 연인의 배신을 주제로 한 작품은 로댕이 정부에 압력을 넣어 주물로 완성되지 못했다. 반면 로댕과 행복했던 시절인 1895년에 제작된 <왈츠>는 한 면에 치우침이 없는 아름다움이 특징이다.

소아마비와 교통사고, 유산 등의 육체적 시련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칼로, 신여성으로서 뛰어난 학식과 재능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외롭고 부당한 삶을 인내해야 했던 나혜석, 그리고 평생 '로댕의 연인'으로만 남아야했던-그나마 그 '연인'으로부터도 버림받고 견제 당했던- 끌로델.

세 예술가는 가족과 사회, 친구와 연인으로부터 버림받았으나 결코 그들은 버림받지 않았다. 그들의 불행은 그들의 재능이 자초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재능을 인정할 여력조차 없었던 시대의 무능력에 기인한 것이다. 오히려 그들의 이름은 뛰어난 그림과 글들로 오롯이 남아 우리 곁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프리다 칼로와 나혜석, 그리고 까미유 끌로델>은 이러한 사실들을 차분한 어조로 읊어 내려간다. 그리하여 이 책은 칼로와 나혜석, 끌로델이 틔워낸 숨구멍으로 우리의 호흡이 조금은 수월해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하도록 하는 역사서이자, 그들의 찬란한 재능과 아름다움에 보내는 한 권의 찬사인 것이다.

프리다 칼로와 나혜석 그리고 까미유 끌로델

정금희 지음, 재원(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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