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말경, 필자가 도착한 이 날은 암스테르담의 작은 시골 알크마르에서 전통치즈 시장이 열리는 날이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다시 중앙의 매표소로 가서 알크마르행 기차표를 샀다. 약 30분 간격으로 떠나는 조그만 기차는 과거 우리의 비둘기호처럼 역마다 정차를 한다.
출근시간인 듯 많은 이들이 타고 내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창 밖으로 편안한 농촌 풍경이 펼쳐졌다. 예전의 수인선이 꼭 이런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사라져버린 꼬마열차와 철로변 풍경이 떠올랐다.
40분쯤 지났을까? 종착역인 알크마르에서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같이 내렸다. '그들도 분명 치즈 시장으로 가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뒤를 따랐다. 하지만, 너무도 여유로운 그 일행의 발걸음에 맞출 수가 없어 그들을 앞질러 내가 앞장섰다.
"cheese market?" 이라는 한 마디 물음에 모두들 한 방향을 지목한다. 시장 입구의 거리에는 노점상들이 장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휴, 너무 일찍 도착했나?'
여유롭게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으며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이게 웬일인가? 벌써 수많은 인파가 광장을 에워싸고 있었다.
드디어, 10시!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인사를 한다. 영어, 불어, 중국어, 한국어까지. 귀가 번쩍 뜨인다. 잠시 후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광장 중앙에 쌓인 치즈를 차례로 살피며 상태를 체크한다. 이 과정을 순조롭게 통과한 치즈들은 들것에 실려 계량소로 운반된다. 그곳에서는 무게를 확인하고, 거래가 확정된 치즈는 다시 수레로 옮겨 각 상점으로 팔려 나간다.
이때 2인 1조로 들것을 나르는 운반원들은 하얀 옷에 밀짚모자를 쓰고 우스꽝스러운 걸음으로 구경꾼들을 사로잡는다. 간간이 전통 복장을 한 소녀들이 팸플릿을 들고 돌아다니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역시 엄청난 치즈와 이를 나르는 각 조합의 운반원들이다. 간혹, 이 들것에 치즈대신 구경나온 꼬마를 태우고 달리기라도 하면 곳곳에서 박수가 터져 나온다.
아침을 거른지라 슬슬 배가 고프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김없이 수많은 가판에서 먹거리와 기념품 등을 팔고 있었다. 청어샌드위치를 사 들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나막신, 그림, 테이블 보, 카드까지 수공예품들이 대부분이다. 주먹만한 동그란 수제 치즈들은 순식간에 팔려 나간다. 난 그 옆에서 시식용으로 잘라주는 치즈를 맛보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오후 1시, 치즈 시장이 끝남과 동시에 주변의 노점들도 철수를 하고 거리는 감쪽같이 정리되었다. 치즈가 놓여있던 광장 역시 탁자와 의자가 대신 들어서며 옥외 레스토랑으로 바뀌었다.
아쉬운 맘에 주변을 빙 돌아 산책을 했다. 옛 건물들과 좁은 골목길이 남아있는 작고 아담한 이 소도시는 어쩌면 굉장히 평범했다. 하지만, 13세기를 기원으로 16세기에서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며 재래치즈 시장의 전통적 거래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던 그 순간의 활력은 어떤 문화적 가치보다 높아 보였다. 이것이 수많은 관광객들을 이 곳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힘은 아닐까?
시장을 나서 돌아오는 길, 우리 높으신 어른들이 이런 행사를 준비한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상상해 보았다. 우선, 주변 경치를 밀어내고 넓게 차도를 낸다. 또 도시 입구부터 잘 보이도록 커다란 아치형 입간판을 세우는 것은 필수다. 물론 여기에 구호를 빠뜨려서도 안 된다. 21세기를 바라보는 이 때, 시장 건물도 현대적으로 새로 짓고, 시장입구에는 대형 주차장 설치를 위해 옛 건물과 골목길에는 과감한 철거 명령을 내릴 것이다.
"더 좋은 환경을 위해 관람석을 배치하는 것은 어떤가? 아, 앞자리는 비워두게, 높으신 분들 앉아야 하니, 사회자가 저게 뭔가? 인기 연예인 좀 없나, 그리고 시작 전에 대표자 인사말 하는 거 잊지 말고….
어, 그런데 그 많던 관광객들은 다 어디로 갔지? 저렇게 주근깨 투성이 애들만 있으니 사람이 오겠나? 얼굴, 몸매 다 갖춘 치즈 아가씨라도 선발해서 홍보 대사로 활동시키고, 경품을 내건 부대 행사를 진행시키게. 그래도 호응이 없으면? 행사를 없애야지. 뭐…."
정말이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생각이 현실화 될까 혼자 고개를 마구 내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