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위기불감증에 빠진 한나라당에 모진 매를 들고 나섰다. 보기 나름으로는 '사랑의 매' 차원을 넘어 배신과 절망의 감정마저 더러 묻어나고 있는 듯하다. 향후 <조선>의 보도 태도가 주목된다.
11일 저녁 배포된 <조선> 가판은 한나라당을 호되게 비판하는 사설과 기사, 만평으로 채워져 있다.
<'위기 불감증' 한나라 끝모를 추락>이라는 기사는 "1월 중순 이후 한나라당이 여론조사에서 열린우리당에 밀려 2위를 유지하고 있다"며 "당내에서는 이 상태로 총선을 치르면 '수도권 전패' '영남권 반패(半敗)'론 등 온갖 비관적인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조선>의 한나라당 비판, '사랑의 매' 넘었다
민경찬 모금과 김수환 추기경 발언, 안상영 자살 등의 사건들이 한나라당의 숨통을 잠시 틔워주었지만 "당 지도부는 이런 기회조차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다"는 한 재선의원의 지적도 나왔다.
거의 매일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비판하는 데 급급했던 신경무 화백의 <조선 만평>에도 이상기류가 감지됐다.
11일에는 서청원 의원을 데려가는 야당 의원들의 등뒤로 "아직도 열댓분이나 계시는데, 오신 김에 다 데려가라"고 비아냥거리는 구치소 교도관의 모습을 그리더니 12일자에는 대검 청문회장에서 "민경찬 수사"를 촉구하는 야당의원들을 "왜 '특검' 또 만들지 그래?'라고 속으로 비웃는 검찰 간부의 모습을 그렸다.
그러나 한나라당을 바라보는 <조선>의 딜레마가 가장 잘 드러난 곳은 역시 사설이다. '한나라당에 더 절망한다'는 사설은 당내 소장파 의원들의 모임 '미래연대'의 대표퇴진 요구까지 치달은 한나라당의 위기를 조명했다.
사설은 미래연대 성명을 소개하며 "수백억 차떼기 대선자금을 받은 정당이 국회 과반수 의석을 불법자금을 받은 동료 의원의 석방동의안을 통과시키는 데 써먹었으니 이런 자탄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라고 개탄했다.
사설은 또한 "지금 한나라당에선 인물 영입, 개혁 공천, 구시대 정치행태와의 절연 등 국민에게 약속했던 일도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며 "문제는 이 정당이 정부·여당에 대한 대안(代案) 세력의 자리를 독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안세력이 못되는 한나라당에 국민들 절망
사설은 이어 "정부·여당이 제 할 일을 하지 못하면 건강한 대안 세력이라도 있어야 나라가 탈선해 주저앉지 않을 수 있다"며 "그런데 그 대안의 위치를 독점한 세력이 정권보다 더 국민을 절망케 만들고 있으니 국민은 숨이 막힐 지경"이라는 주장까지 폈다.
'한나라당 대안부재론'은 한나라당 지지성향의 유권자들이 가슴 깊숙이 간직해온 화두이기에 <조선>의 문제제기가 더욱 눈길을 끈다.
2002년 대선 과정에서 차떼기 등의 수법으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정치자금을 불법 모금한 사실은 친 한나라당 성향 유권자들에게 깊은 상처를 드리우고 있다.
<조선> 인터넷신문에 글을 올리는 보수성향 네티즌들이 노무현 정부와 우리당에 대해서는 "대통령 탄핵도 불사해야 한다"는 등 폭언에 가까운 비방을 퍼붓고 있지만, 내심 지지하고 있을 한나라당에 대해 "이래서 좋다"는 긍정론을 펴는 데 인색한 것이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우리당 지지성향 네티즌들이 정치적으로 대립관계에 있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싸잡아 비난하면서도 "그래도 우리당이 개혁적" "우리당은 지역감정 타파정당"이라고 포지티브한 논리를 적극적으로 개발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나라당에 대한 실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20% 안팎의 지지층이 응집하는 원동력은 한나라당 이외에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을 견제할 세력이 마땅치 않다는 '대안부재론'이었다.
'한나라 봐주기' <조선> 인내심 마침내 폭발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한나라당은 핵심지지층까지 붕괴하는 심각한 상황(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 "왜 한나라당을 지지해야 되는지 어떤 설명이 없다(김형준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 부소장)"는 비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한나라당의 대안으로, 현 정부와 정치적 인연을 끊은 민주당에 호감을 갖는 이도 없지 않지만 '호남 지역기반' 'DJ가 만든 정당'이라는 이미지로 인해 '민주당 대안론'은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조선>이 사설과 기사 등으로 한나라당을 전방위 압박한 것을 놓고 "<조선>의 인내심이 마침내 폭발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멀게는 군사정부 시절 이래 한나라당의 근간을 이루는 정치세력들과 공생관계에 있어온 <조선>이 '3자필승론'에 젖어 위기를 인지하지 못하는 한나라당에 레드카드를 들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 사설은 "여태 지내온 따뜻한 온실에서 헛된 계산이나 하며 지낼 요량이라면 국민은 새롭고 건강한 대안세력의 탄생을 위해 지금의 한나라당에게 자리를 비켜줄 것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고 마지막 경고를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