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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의 위기'를 경고한 12일자 조선일보 5면 기사. (가판)
'한나라당의 위기'를 경고한 12일자 조선일보 5면 기사. (가판)
조선일보가 위기불감증에 빠진 한나라당에 모진 매를 들고 나섰다. 보기 나름으로는 '사랑의 매' 차원을 넘어 배신과 절망의 감정마저 더러 묻어나고 있는 듯하다. 향후 <조선>의 보도 태도가 주목된다.

11일 저녁 배포된 <조선> 가판은 한나라당을 호되게 비판하는 사설과 기사, 만평으로 채워져 있다.

<'위기 불감증' 한나라 끝모를 추락>이라는 기사는 "1월 중순 이후 한나라당이 여론조사에서 열린우리당에 밀려 2위를 유지하고 있다"며 "당내에서는 이 상태로 총선을 치르면 '수도권 전패' '영남권 반패(半敗)'론 등 온갖 비관적인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조선>의 한나라당 비판, '사랑의 매' 넘었다

민경찬 모금과 김수환 추기경 발언, 안상영 자살 등의 사건들이 한나라당의 숨통을 잠시 틔워주었지만 "당 지도부는 이런 기회조차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다"는 한 재선의원의 지적도 나왔다.

거의 매일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비판하는 데 급급했던 신경무 화백의 <조선 만평>에도 이상기류가 감지됐다.

11일에는 서청원 의원을 데려가는 야당 의원들의 등뒤로 "아직도 열댓분이나 계시는데, 오신 김에 다 데려가라"고 비아냥거리는 구치소 교도관의 모습을 그리더니 12일자에는 대검 청문회장에서 "민경찬 수사"를 촉구하는 야당의원들을 "왜 '특검' 또 만들지 그래?'라고 속으로 비웃는 검찰 간부의 모습을 그렸다.

그러나 한나라당을 바라보는 <조선>의 딜레마가 가장 잘 드러난 곳은 역시 사설이다. '한나라당에 더 절망한다'는 사설은 당내 소장파 의원들의 모임 '미래연대'의 대표퇴진 요구까지 치달은 한나라당의 위기를 조명했다.

사설은 미래연대 성명을 소개하며 "수백억 차떼기 대선자금을 받은 정당이 국회 과반수 의석을 불법자금을 받은 동료 의원의 석방동의안을 통과시키는 데 써먹었으니 이런 자탄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라고 개탄했다.

사설은 또한 "지금 한나라당에선 인물 영입, 개혁 공천, 구시대 정치행태와의 절연 등 국민에게 약속했던 일도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며 "문제는 이 정당이 정부·여당에 대한 대안(代案) 세력의 자리를 독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 12일자 사설
<조선일보> 12일자 사설
대안세력이 못되는 한나라당에 국민들 절망

사설은 이어 "정부·여당이 제 할 일을 하지 못하면 건강한 대안 세력이라도 있어야 나라가 탈선해 주저앉지 않을 수 있다"며 "그런데 그 대안의 위치를 독점한 세력이 정권보다 더 국민을 절망케 만들고 있으니 국민은 숨이 막힐 지경"이라는 주장까지 폈다.

'한나라당 대안부재론'은 한나라당 지지성향의 유권자들이 가슴 깊숙이 간직해온 화두이기에 <조선>의 문제제기가 더욱 눈길을 끈다.

2002년 대선 과정에서 차떼기 등의 수법으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정치자금을 불법 모금한 사실은 친 한나라당 성향 유권자들에게 깊은 상처를 드리우고 있다.

<조선> 인터넷신문에 글을 올리는 보수성향 네티즌들이 노무현 정부와 우리당에 대해서는 "대통령 탄핵도 불사해야 한다"는 등 폭언에 가까운 비방을 퍼붓고 있지만, 내심 지지하고 있을 한나라당에 대해 "이래서 좋다"는 긍정론을 펴는 데 인색한 것이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우리당 지지성향 네티즌들이 정치적으로 대립관계에 있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싸잡아 비난하면서도 "그래도 우리당이 개혁적" "우리당은 지역감정 타파정당"이라고 포지티브한 논리를 적극적으로 개발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나라당에 대한 실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20% 안팎의 지지층이 응집하는 원동력은 한나라당 이외에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을 견제할 세력이 마땅치 않다는 '대안부재론'이었다.

'한나라 봐주기' <조선> 인내심 마침내 폭발했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런 상황에서 "지금 한나라당은 핵심지지층까지 붕괴하는 심각한 상황(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 "왜 한나라당을 지지해야 되는지 어떤 설명이 없다(김형준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 부소장)"는 비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한나라당의 대안으로, 현 정부와 정치적 인연을 끊은 민주당에 호감을 갖는 이도 없지 않지만 '호남 지역기반' 'DJ가 만든 정당'이라는 이미지로 인해 '민주당 대안론'은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조선>이 사설과 기사 등으로 한나라당을 전방위 압박한 것을 놓고 "<조선>의 인내심이 마침내 폭발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멀게는 군사정부 시절 이래 한나라당의 근간을 이루는 정치세력들과 공생관계에 있어온 <조선>이 '3자필승론'에 젖어 위기를 인지하지 못하는 한나라당에 레드카드를 들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 사설은 "여태 지내온 따뜻한 온실에서 헛된 계산이나 하며 지낼 요량이라면 국민은 새롭고 건강한 대안세력의 탄생을 위해 지금의 한나라당에게 자리를 비켜줄 것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고 마지막 경고를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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