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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국장이 암에 걸린 처형에게 효험이 있을까요.
ⓒ 김규환
아내가 부산에 살고 있는 아이들 작은 외숙모와 병간호를 교대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음 날 뭔가 예감이 좋았는지 저녁이 다 되어서 갑자기 콩을 꺼내 찬물에 담궜습니다. 시린 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내는 씩씩하게 한 말쯤 되는 콩을 박박 씻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콩은 왜?”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언니가 오늘은 죽을 좀 넘기는가봐, 청국장이 암 환자에게 좋다고 그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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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이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지난주 <오마이뉴스>에 암 진단을 받은 처형에 관한 기사를 올렸는데 많은 분들이 댓글을 달아 주셨습니다. 모두가 희망의 글들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항암제보다는 식이요법을 강조하셨습니다. 그 중에는 청국장이 좋다는 글도 있었습니다. 아내 역시 꼼꼼하게 읽어보았습니다. 그동안 처형을 위해 자료를 찾아보고 기도를 올리는 일이 전부였던 아내는 지금 당장 처형에게 물질적으로 해 줄 수 있는 것은 청국장뿐이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아내는 가마솥 가득 콩을 넣고 아궁이에 불을 지폈습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일은 보통 내 몫인데 때마침 저는 방송 원고 마감에 쫓기고 있었습니다. 컴퓨터 화면에 코를 박고 있다가 잠시 잠깐 허리를 펴기 위해 나와 보니 아내가 신문지와 과일 박스를 북북 찢어 불을 지피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급했던 모양입니다. 장작으로 불을 지피다가 남은 알불로 시나브로 불기운을 조절하면서 콩을 삶아야 하는데 마음이 앞섰던 것입니다.

신문지나 종이상자는 당장 불꽃을 훨훨 잘 타오르게 할 수 있지만 화력이 약해 불기운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내는 잊었던 것입니다. 병원에 누워 있는 처형에게 한시라도 빨리 청국장을 먹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평소 처형은 우리 집에서 띄운 청국장을 아주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사 먹는 청국장하고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했습니다. 가마솥에서 자근자근 끓고 있는 콩 역시 처형이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보내준 것이기도 했습니다.

아내는 계속해서 신문지를 태우고 있었습니다. 결국 나는 원고 쓰는 일을 잠시 접어두고 땅거미가 진 산에 올라 소나무 틈에서 숨죽이고 있는 참나무 한 그루를 미안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간벌해 왔습니다. 고맙게 잘 자란 참나무 기운이 청국장에 잘 배도록 마음을 실어 불을 지폈습니다. 컴컴한 밤이 되어서야 콩을 다 삶을 수 있었습니다.

아내는 잘 익은 콩을 대소쿠리에 퍼 담다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얘 좀 봐, 인상이 좀 봐, 하는 짓이 이쁘지, 사진 안 찍어?”

작은 아이 인상이가 가마솥에 남은 콩을 먹고 있었습니다. 밥 없이는 못사는 밥돌이 녀석이 콩 맛에 쏙 빠져 아예 가마솥에 머리를 넣다시피 하고 마지막 남은 콩까지 떼어먹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이런 진풍경에 잠시 처형에 대한 아픔을 접어둡니다. 모처럼만에 환하게 웃는 아내를 보니 나 또한 덩달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나는 인상이 녀석을 캠코더에 담으면서 처형을 떠올렸습니다. 이 생짜배기 촌놈, 인상이를 유난히 좋아하는 처형이 이 장면을 보면 분명 웃다가 눈물까지 흘릴만한 장면이었습니다. 인상이는 다 먹었다고, 더 이상 떼어먹을 콩이 없다며 저만치 갔다가 다시 돌아와 가마솥에 코를 박습니다. 가마솥에 달라붙은 누룽지 같은 콩, 참 맛있거든요. 이번에는 마지막 남은 콩 한 쪼가리, 그마저 먹겠다고 주걱으로 박박 긁어댔습니다.

▲ 이게 바로 사람 몸에 참 좋다는 청국장입니다
ⓒ 김규환
아내의 웃음꽃과 함께 대소쿠리에 담긴 푹 익은 콩이 구들방 아랫목 조금 옆댕이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제 몸을 불렸습니다. 드디어 아내가 손꼽아 기다리던 사흘이 지났습니다. 이불과 소쿠리를 감쌌던 광목을 걷어 내고 콩을 주걱으로 떠보니 찐득찐득하니 실이 쭉쭉 잘도 늘어져 나왔습니다. 아주 잘 띄운 청국장이었습니다.

아내는 매일같이 전화를 통해 하루에 몇 차례씩 처형의 안부를 묻곤 했습니다. 헌데 청국장을 꺼내는 그 날 아침 장모님과 전화 통화를 마치고 난 아내가 울먹였습니다.

“언니가 오늘 아침 피를 토했대….”

밤새 속이 뒤틀려 고통스러워하던 처형이 피를 토하고 물 한 모금 먹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전 날까지 전복죽을 잘 먹었다는 처형이었는데 말입니다.

당찬 아내는 맥이 빠진 채 손을 놓고 있지 않았습니다. 원고 마감을 위해 방송국에 갈 채비를 하고 있는데 절구를 들고 나와 찐득찐득한 콩을 빻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나를 배웅하며 넋이 나간 사람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내가 미쳤지, 무엇 때문에 갑자기 청국장을 하려고 했는지. 내 참…."

사실 청국장은 암 예방에는 좋을지 모르겠지만 말기 암 환자에게는 어떤 효능이 있을지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나는 아내의 정성과 마음의 힘이 실린 청국장에는 분명 어떤 효능이 첨가되었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이든 마음의 파장만큼 큰 치료제는 없을 것이라 보니까요.

그 날 아내는 청국장을 여러 덩어리로 나눠 냉장고에 보관해 두었습니다. 처형이 다시 몸을 일으켜 청국장을 먹을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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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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