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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경고 졸업생들과 선생님들 졸업식을 마치고
ⓒ 정일관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싸우기도 하고 풀리기도 하며, 더욱더 정이 깊어갔던 기숙사 생활. 항상 옆에서 지켜주고 믿어주던 친구들, 때로는 부모님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언니처럼, 항상 곁에서 편하게 대해주시고, 화내시기보다는 웃으며 조언해주시며 묵묵히 믿어주던 선생님들께 지난 3년 동안 알면서도 따뜻한 말 한 번 못했습니다.

부모님들께 걱정을 끼쳐드리면서도 표현력이 부족해 항상 삐딱하게만 대했던 것 또한 죄송스러워 이 자리를 빌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선생님들, 부모님들, 친구들, 졸업하기까지 도와주셔서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졸업생 이윤지의 졸업생 회고담 중에서>


경남 합천의 대안학교인 원경고등학교가 제 6회 졸업식을 가졌다. 1998년 개교하여 첫 졸업생 8명을 배출하고 난 후 벌써 6회째 졸업생을 배출했다. 졸업생 수는 32명. 첫 해에 비하면 상당히 늘었다. 그 동안 말로 다할 수 없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조금씩 성장해 온 원경고등학교는 감회가 새롭다.

졸업생 재학생, 교직원과 학부모, 내빈과 후원인들 150여명이 들어찬 강당은 졸업하는 기쁨과 떠나는 아쉬움이 뒤엉켜 2시간에 걸친 졸업식이 거행되었다. 3년 동안의 교육 활동 내용을 담은 동영상 '그리운 학창 시절, 가슴 찡한 추억들'을 시청하며 3년을 돌아보며 아쉬움을 달랬고, 종래의 학교장 회고사를 교장 선생님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후배들의 화상 축하 메시지로 대체해 전달하였다.

▲ 학교장의 화상 축하 메시지
ⓒ 정일관
또한 교장이 학생 대표에게만 형식적으로 전달하던 졸업장 수여식이 너무 아쉬워, 한 선생님이 학생 두세 명을 맡아, 사랑의 쪽지를 읽어주고 졸업장과 함께 수여하는 '마음의 향기' 전달식도 가졌다. 그리고 학부모와 학생, 그리고 담임 선생님의 회고담이 이어졌다.

3학년 1반의 담임 백윤정 교사는 "그 동안의 학교 생활을 졸업이라는 항구에 닿기 위한 항해요, 자신은 선장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회고하며, 2명의 학생이 졸업하지 못하고 중도에서 그만 두었을 때의 아픔을 드러내며 울먹였다.

졸업생 박지현과 이윤지, 그리고 김현재도 각각 나와서 학창 시절을 회고했다. 모두 다 어렵고 힘겨운 방황기를 무사히 잘 보내고 이제는 영광의 졸업을 차지하고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의 과정과 고마움을 감동적으로 발언, 많은 박수를 받았다.

▲ '마음의 향기' 전달
ⓒ 정일관
특히 3학년 임민희 학생의 학부모 임영율씨 회고담은 더욱 가슴을 찡하게 하였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방황하던 민희는 당신이 직장에서 축하 받을 일이 있을 때마다 사고 치며 재를 뿌리곤 하여 자기 딸이지만 예뻐할 수가 없어 대안학교를 찾았다고 하며, 입학식 때도 민희가 집을 나가버려 보름이나 늦게 입학을 시켰다고 하였다. 그러나 학년을 거듭할수록 민희가 반듯해지면서 2학년 2학기에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학교 생활도 잘해서 대학에 진학하겠다고 결심했다는 것이다.

1학년 결석 70일, 2학년 결석 40일, 마침내 3학년 개근!
"아빠, 나 원광대, 초당대, 광주대, 동신대 네 개나 붙었어."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가겠다던 약속이 현실로 나타나, 지금 한 편으로는 당황스럽고 한 편으로는 충만한 행복감을 함께 맛보고 있다고 했다.

"어둡고 습한 긴 터널 속에 갇혀 있던 내 딸, 넓고 환한 광야로 이끌어주신 선생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고등학교 잊지 않겠습니다. 뒤뜰의 노란 모과나무, 말없이 학교를 지켜주고 있는 미타산, 영원히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겠습니다."

▲ 졸업생 송승현의 축하 노래 공연
ⓒ 정일관
간간히 목 메이며 지난날을 회고하면서, 졸업식장을 가득 메운 대중들에게 감동을 전한 민희 아버님은 우뢰와 같은 박수 갈채를 받았다. 끝으로 가수 지망생 송승현의 축하 노래가 있었는데, 피아노를 치며 드라마 '천국의 계단' 주제가인 '보고싶다'를 열창하기도 했다.

이번 졸업식은 눈물보다 웃음이 많은 졸업식이었다. 시종 밝고 따뜻한 분위기에서 식이 진행되어 활기차고 신나는 졸업식이 되었던 것 같다. 졸업식을 마치고 "왜 그렇게 선생님들이 울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더니, "1회 졸업식 때, 너무 슬프고 눈물 많은 졸업식을 하는 바람에 그 뒤의 졸업식은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선생님들이 웃는다.

그때는 8명의 적은 졸업생을 조그마한 교실에서 떠나보내며 선생님들은 자기 설움에 펑펑 울었다고. 심지어 사회를 보는 선생님조차 교탁에 엎드려 엉엉 울었다고 한다.

▲ 원경고 여선생님들
ⓒ 정일관
이제 32명의 졸업생들은 서로 포옹하고 내일을 기약하며 더 큰 사회로 진급했다. 이 아이들을 떠나보내면서 아쉽기도 하지만 또 해냈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하다.

어려운 아이들을 품어 안고 사는 대안학교, 그 아이들을 오늘, 우리 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 성장시켜 떠나보내는 대안학교는 또 내일 신입생들을 맞이하기 위해 더 큰 교육을 준비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정일관 기자는 대안학교 원경고등학교 교사로 재직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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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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