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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신미희
정치권의 강행으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위원장 이재오)를 통과한 '인터넷 실명제'가 인터넷언론계를 포함한 시민사회단체의 불복종선언과 국가인권위원회의 '재고 의견' 제시로 난관에 봉착했다.

특히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김창국)는 유권자의 인터넷을 통한 정치참여에 대해 국가는 규제나 검열을 하기보다 적극적으로 지원·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해 앞으로 국회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인권위 "인터넷실명제 도입 재고하라"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김창국)는 17일 국회 정개특위가 허위정보나 근거없는 비방의 게시와 유통의 방지를 위해 인터넷언론사 게시판이나 대화방의 실명확인 제도를 신설한 것에 대해 '재고해야 한다'는 의견을 공식 발표했다.

인권위는 인터넷국가검열반대공동대책위원회가 지난 2월 검토를 요청한 인터넷실명제에 대해 "인터넷 언론사의 실명인증제 도입은 명백한 사전검열 행위로,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와 여론형성의 권리를 제한하고 개인의 자기정보 관리 통제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인권위원회는 또 현재 국회에서 개정논의 중인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 정당법, 정치자금에관한법(이하 정치관계법)과 관련 △선거연령 하향조정 △신인 정치인에 대한 진출기회 확대 △다양한 계층의 대표성 확보를 위한 제도를 마련하라는 의견을 표명했다.

인권위는 이같은 요지가 담긴 의견서를 이날 오후 국회에 전달했다.

한편, 참여사회·함께하는시민행동·진보네트워크센터·민주노총 등 55개 시민사회단체가 결성한 인터넷국가검열반대공동대책위원회와 한국인터넷기자협회·한국인터넷신문 등은 17일 관련 법안이 통과될 경우 즉각 위헌소송 제기와 함께 온라인 시위 등 불복종운동을 전개하겠다고 선언해 파장이 예상된다.

이날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인터넷실명제 철회투쟁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연 단체들은 앞으로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행동방침을 추가로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시민단체와 인터넷언론계, 불복종운동 전개 선언

윤원석 인터넷기자협회장은 "국민들이 인터넷실명제 도입에 따른 폐해의 심각성을 폭넓게 알지 못하고 있어 법안의 부당성을 알려나가고자 적극적으로 대처하겠다"며 "나랏님 욕도 주민등록증을 까고 하란 말인가"라고 되물었다.

장창원 인터넷국가검열반대공대위 운영위원장은 "국민 뜻을 거스르는 악법만 통과시키는 국회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이제 언론자유확보를 시대적 사명으로 생각하고 반대투쟁에 적극 나설 것"이라는 의지를 거듭 확인했다.

또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정책국장은 "인터넷실명제 도입이 국회 본회의 통과를 코앞에 두고있어 급하게 모였다"면서 "그럼에도 국회가 악법을 통과시킨다면 즉각 위헌소송을 제기할 것이고 불복종선언을 구체적으로 행동에 옮기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장 실장은 "인터넷강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국회가 표현의 자유와 사생활보호를 침해하는 이같은 법안을 내놓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면서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철회투쟁을 계속 전개하겠다"고 말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지난 9일 모든 인터넷언론에 선거관련 글을 게시할 때 본인 여부와 실명확인 절차를 의무적으로 거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인터넷실명제 도입 등이 포함된 선거법 개정안에 합의한 바 있다.

현재 한나라당과 민주당, 열린우리당 등 3당 대표와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선거법 개정안 등을 오는 19일까지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따라서 인터넷실명제 시행여부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통과만 남겨놓은 상태이다. 상임위원회에서 넘어온 법안은 5일 뒤에 법사위에서 다루게 된다.

"표현의 자유에는 익명도 포함"

▲ 인터넷언론인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이 17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인터넷실명제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17일 인터넷국가검열반대공동대책위원회와 한국인터넷기자협회·한국인터넷신문 등의 기자회견에서는 인터넷 실명제의 실효에 대한 문제제기가 쏟아졌다.

이들은 "행정자치부는 인터넷실명제를 시행하려면 시행령 개정과 15억원의 추가예산 및 3개월의 준비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고 전한 뒤 "모든 국민의 정보를 담은 신용정보 데이터베이스도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실명제가 실시된 곳에서도 명예훼손이나 비방, 유언비어는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국회가 이처럼 실현가능성도, 효과도 없는 법안을 수많은 반대여론 속에서도 강행하는 것은 인터넷을 통해 정치의 주체가 되고 있는 국민을 정치권이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며 "부패한 정치권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국민의 입을 막겠다는 시도를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장창원 인터넷국가검열반대공대위 운영위원장은 "국회가 어제는 농민을 죽이는 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하고 그저께는 파병을 반대하는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악법을 통과시키더니, 이제는 국민의 입을 막겠다고 나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정책국장은 표현의 자유는 익명을 포함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장 실장은 "의사표현으로 인한 개인의 불이익을 막고 표현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애초부터 익명을 포함하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장 실장은 "'떳떳하면 실명으로 하라'는 한 국회의원의 주장은 요구될 수 없는 문제제기"라고 반박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기자회견 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이재오 위원장에게 이같은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국회로 들어가려 했으나 경찰의 제지로 무산됐다.


다음은 인터넷실명제 철회를 요구하는 인터넷언론인·시민사회단체의 공동 기자회견문 전문이다.

누구도 국민들의 입을 틀어막을 수는 없습니다

국민여러분. 지금 국회에서는 대한민국의 시들게 하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수많은 네티즌들과 인터넷 언론인들, 시민사회단체들이 한목소리로 반대 의견을 내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국회는 인터넷실명제라는 전 세계에서도 유례 없는 비상식적이고 비민주적인 제도를 입법화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미 수없이 지적되어왔듯이 인터넷실명제는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제도입니다. 이미 미국에서는 조지아주에서 추진하던 인터넷실명제가 대법원의 위헌판결을 받았으며, 유럽 의회 역시 인터넷의 익명성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런 세계적 추세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회는 전 국민을 잠재적 범죄지로 취급하는 인터넷실명제들 도입하려 하는 것입니다.

또한 실명제는 개인정보 보호라는 시대적 요구에도 반하는 제도입니다. 주민등로번호는 더없이 민감한 개인정보입니다. 때문에 행정자치부가 보유한 주민등록데이터베이스와 신용정보 회사들이 보유한 신용정보 데이터베이스는 각각 고유의 목적을 위해서만 사용하도록 엄격하게 관리되어야 합니다. 이런 귀중한 정보를 실명확인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헌법상의 권리인 자기정보통제권을 침해하는 행위입니다.

이처럼 인터넷실명제는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라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제도입니다. 우리는 기본권에 대한 인식조차 없는 국회에 헌법을 개정할 책임을 맡겨왔던데 대해 통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인터넷실명제는 현실적으로 시행불가능하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는 졸속입법입니다. 이미 행정자치부는 인터넷실명제를 시행하게 위해서는 시행령의 개정이 필요하며, 충분한 보안조치를 위해서 최소 3개월 이상의 준비기간과 15억원의 추가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또한 전 국민의 정보를 담고 있는 신용정보 데이터베이스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와 정치참여의 권리가 불충분한 상업적 데이터베이스에 의해 제약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미 많은 사이트들이 자발적으로 실명제를 실시하고 있음에도 명예훼손이나 비방, 유언비어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게다가 많은 주민등록번호가 이미 유출된 상황이므로 실명확인이 이루어졌다 해도 본인이 맞다고 단정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실명제는 효과도, 실현가능성도 불분명한 졸속 입법입니다. 만일 국회가 실명제를 통과시킨다면, 자신들이 무식하고 무책임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드러내는 결과를 낳을 뿐입니다. 국민들은 더 이상 국회가 법률을 심의할 자격이 없다고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실현가능성도 효과도 없는 법안을 수많은 반대여론속에서도 굳이 강행하는 것은, 인터넷에 대한 정치권의 근거없는 적의의 표출일 뿐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진정한 정치의 주체가 되고 있는 국민들을 정치권이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유권자들에게 말할 권리를 포기하고 얌전히 투표나 하라는 것입니다. 누가 자신들을 괴롭히는지 감시하겠다는 것입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누가 누굴 감시하겠다는 것입니까? 우리 정치가, 우리 선거가 엉망이 되어온 것이 국민들 때문입니까? 아니면 차떼기, 책떼기에 각종 불법·탈법을 일삼아온 타락한 정치권 때문입니까? 무능하고 부패한 당신들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인터넷을 시들게 하고 전국민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시도를 우리 국민들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인터넷 언론인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분명히 경고합니다. 정치권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발전의 동력인 인터넷을 고사시키려는 음모를 중단하십시오. 끝내 인터넷실명제가 통과된다면, 전국민적인 불복종운동을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양심의 국회의원들에게 당부합니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발전의 동력인 인터넷을 구해주십시오. 인터넷실명제를 저지해주십시오. 그리고 모든 국민들게 호소합니다. 혹시라도 실명제가 통과되더라도, 선관위의 부당한 감시와 검열을 겪게 되더라도 결코 굴복하지 말아주십시오.

시민사회단체들, 인터넷언론인들과 함께 불복종운동에 나서 주십시오. 정치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누구도 우리의 입을 틀어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자유과 권리, 우리의 인터넷을 우리의 손으로 함께 지킵시다.

2004. 2. 17
인터넷국가검열반대공동대책위원회/한국인터넷기자협회/한국인터넷신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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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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