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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9월 전교조 출신 첫 교장 승진을 앞두고 있는 김선호 광주 월곡중학교 교감
오는 9월 전교조 출신 첫 교장 승진을 앞두고 있는 김선호 광주 월곡중학교 교감 ⓒ 오마이뉴스 이국언
"오히려 부담감이 더 큽니다. 학교장이 되면 더 많은 일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왔습니다. 참교육 실천을 위해 더 매진하겠습니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전국교직원노조(전교조) 간부 출신 첫 중등학교장 탄생이 예고되고 있다. 김선호(57) 광주 월곡중학교 교감이 그 주인공. 김 교감은 지난달 31일자로 발표된 광주시교육청 2004년도 중등교장 승진 후보자에 올라, 늦어도 오는 9월 1일자 교장 승진이 확실시되고 있다.

전교조 조합원 출신의 초등학교장이 탄생한 경우(99년 경기도 성남은행초교 이상선 교장, 퇴직)는 있었지만, 지회장을 지낸 간부출신의 중등학교 교장은 전국에서 처음이다.

평교사 시절 김 교감이 '참교육 운동'에 뛰어 든 건 지난 87년 초. 전교조 출범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전국교사협의회에 가담했다.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곳곳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오던 5공 말기, 교육현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미 86년 5월 전국 교사 민주화선언으로 그 시초를 열고 있었다.

김 교감은 전교조 초기 광주지부 국공립지회 사무장으로 일해왔다. 당시는 정부에 의해 불법단체로 낙인 받던 시절. 전국 학교에서 교사 집단해직 사태가 잇따랐다.

어려운 살림을 꾸려가며 해직교사를 뒷받침하는 일은 자연스럽게 그의 몫이 되었다. 스스로 그 시절, 승진 따위는 포기하고 살았다고 한다.

87년 전국교사협의회 가담, 전교조 초기 광주 국공립지회 사무국장

김 교감이 특수학교로 근무지를 옮겨 장애학생들과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은 93년. 언젠가 민주화가 더 진전되면 교육현장에 있어서도 좀 더 큰 힘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교사의 힘과 능력만으로 어려웠던 문제들을 차제에 꼭 실천에 옮겨볼 계획이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기도 한 김 교감은, 특수학교 시절 종종 장애 학생들을 집으로 데려와 같이 자고, 먹고, 뒹굴었다.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큰아들은 이미 특수교사로 교육계에 몸담고 있고, 막내는 대학 특수 교육과에서 아버지를 이어 교육계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97년부터 전교조가 합법화된 99년까지 광주지부 국공립중등지회장으로 일해 온 그는, 2001년 9월 전교조 간부 출신으로는 처음 중등학교 교감에 올랐다.

그는 교감이라는 위치에도 불구하고 전교조가 개최하는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해 동료 교사들을 격려하고 있다. 지난날 같이 활동해 오던 동지이자 후배들이기도 하다. 지난 한해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을 둘러싸고 한참 투쟁이 격화할 무렵, 금남로와 교육청 앞 시위 현장 한 켠에는 항상 김 교감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2002년 12.18일 시험 감독을 마친 학부모들이 바쁜 틈에도 의정부 두 여중생 문제를 놓고 다시 자리를 함께 했다.
2002년 12.18일 시험 감독을 마친 학부모들이 바쁜 틈에도 의정부 두 여중생 문제를 놓고 다시 자리를 함께 했다. ⓒ 오마이뉴스 이국언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의정부 두 여중생 사건에 대한 무죄평결로 촛불시위가 한참인 2002년 12월 어느 날. 광주 금남로에 모인 시민들은 촛불시위 대열 속에 어깨띠를 두른 한편의 집회 참가자들에 눈길을 모았다. 바로 월곡중학교 교사들이었다. 그 맨 앞에도 김 교감이 있었다.

이 무렵 그는 광주시교육청 게시판에 연이어 장문의 글을 올렸다. 두 여중생은 우리의 제자이자 딸이라는 것이었다. 불합리한 SOFA를 개정하고 책임자를 처벌하자는 것은 '제2의 독립운동'이라는 주장이었다. 월곡중학교 정문에는 한동안 SOFA 개정을 촉구하는 플래카드가 나부꼈고, 여기에 화답하듯 학부모들도 총의을 모아 길거리에 직접 나가 유인물을 돌리기도 했다.

SOFA 개정 촉구 집회에 앞장서는 교감선생님

김 교감의 이런 모습에 대해 늘 찬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무렵 그는 주위 학교장들로부터 몇차례 전화를 받기도 했다. '당신 승진하기 싫으냐'는 것이었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SOFA 개정을 요구한다는 것 때문에 승진이 안 된다면, 승진 안되더라도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김 교감의 초심이 묻어나는 건 그가 아직 매달 학교단위 분회 활동비를 납부하고 있다는 것. 김 교감은 전교조 규약상 교감승진과 동시에 자동적으로 조합원 자격을 잃게 됐다. 그러나 그는 매달 5천원에서 1만원인 전교조 분회 활동비를 아직까지 단 한번 미뤄 본 적이 없었다. 그 스스로 조합원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해직의 아픔을 겪은 사람들도 있고, 지금도 현장에는 참교육 하나에 열정을 바치고 있는 선생님들이 많습니다. 비록 조합원은 아니지만 초심 만큼은 잃지 않겠습니다."

전교조 출신 첫 중등학교장 발령을 앞둔 김 교감의 다짐이다.

참교육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월곡중학교의 작은 실험들

지난해 11월 11일, 월곡중학교 한 강당에서는 그동안 이 학교가 시도한 작지만 소중한 실험들이 보고되고 있었다. 학교 단위(분회)로서는 유례가 없었던 '참교육실천보고대회'를 개최한 것. '참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일궈온 그동안의 성과를 학부모와 교사들이 함께 나누는 자리였다.

참교육은 학생들의 눈 높이를 맞추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학년 석차를 기준으로 임원을 선출했던 학생회칙을 바꿔 모든 학생에게 기회를 돌려줬다. 또 치장에만 요란한 학급 환경정리를 과감히 바꾸고, 반강제적으로 학생들을 잡아놓던 특기적성 교육 제도를 전면 자율화했다.

청소년기 학생들에게 다양하고 민주적인 소양 기회를 경험하도록 하는 것도 각별하다. 지난해 장성 남면으로 다녀온 모내기 봉사활동이 대표적이다. 봉사활동을 내신성적을 위해 마지못해 하는 것쯤으로 여겨온 학생들은 스스로 결정한 선택에 대해 적잖이 만족하고 있었다.

평소 눈에 띄지 않던 아이가 열심히 땀 흘리며 일하는 모습에 주변 아이들이 감동하기도 하고, 갇힌 교실에서와는 달리 서로 일상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오고가기도 했다. 처음 딴청을 피우던 학생들도 이내 노동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우고 있었다.

학기초 서먹한 분위기를 달래기 위해 1박2일의 일정으로 진행하는 '학교 뒤뜰야영'도 눈길을 끈다. 나인흠(2년)군은 "친구들과 함께 밥을 직접 지어먹고 밤까지 지샌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추억이다"며 "뒤뜰야영 후 반 분위기가 확 바뀌고 친구들 이름을 모두 외울 수 있어 좋았다"고 말한다.

월곡중학교는 봄·가을 소풍을 반별로 따로 다녀온다. 목적지를 선택하는 것도 계획을 세우는 것도 스스로의 몫이다. 이렇게 어떤 반은 섬진강에서 자전거 하이킹을 즐기고 왔고, 어떤 반은 함평 톱머리 해수욕장에서 소중한 추억을 남기고 왔다. 또 목포 유달산과 도자기 체험학습장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낸 반도 있었다.

참교육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1년에 고작 2만원, 3만원인 예산항목까지 공개하고 있는 이 학교의 작은 실험들은 그래서 더욱 각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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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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