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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허삼관 매혈기 ⓒ yes24
모두들 술에 취해 아무 데나 널브러진 모꼬지의 새벽, 나 혼자 잠들지 못한 때가 있었다. 푸르스름 밝아오는 하늘에 대고 한숨 섞인 담배연기만 피워 올렸던 기억….

"이렇게 살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

십 년쯤 지난 지금도 나의 삶은 여전히 고단하다. 다른 누구나 그렇듯이.

산다는 것의 쓸쓸함. 이 소설의 진행과 결말이 희극적 분위기를 띠고 있음에도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정조는 새삼 그것이다. 허삼관이라는 장삼이사(張三李四)의 40년 '매혈일대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혹은 살아가야 할 슬픈 기록 그 자체다.

줄거리는 아주 간단하다. 건강의 징표도 되고 많은 돈을 벌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청년 허삼관은 처음으로 피를 판다. 그 돈으로 허옥란이라는 여자에게 접근, 결혼까지 이르고 세 아들 일락·이락·삼락을 둔다. 그러다 첫아들 일락이 사고를 쳐서 빚을 지고 재산을 날릴 위기에 처하자 두 번째 피를 팔아 겨우 모면한다. 연이어 딴 여자와 바람을 피우려고 세 번째 피를, 극심한 기근으로 인한 허기를 메우려고 네 번째 피를 판다. 그처럼 청장년 허삼관의 피는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삶의 고통을 손쉽게 해결해주는 도깨비방망이 같은 것이었다.

문화대혁명이 진행되면서 농촌으로 떠난 일락과 이락을 위해 한 달 간격으로 피를 팔면서 그의 몸은 쇠약해지고 일생일대 위기를 맞게 된다. 결국 일락의 위독한 간염 때문에 허삼관은 아예 매혈여행을 떠난다. 일락이 입원해 있는 상해까지의 여로에서 사흘 닷새 간격으로 피를 뽑다가 빈혈이 생겨 오히려 남의 피를 수혈 받는 일까지 생기기도 한다.

훗날, 일락을 비롯한 아들들이 모두 장성하고 평안한 노년을 맞게 된 허삼관은 까닭모를 충동에 휩싸여 생애 처음으로 자신을 위한 매혈을 하려 한다. 그 동안 매혈 뒤 관례처럼 먹어왔던 '돼지간볶음과 황주가 먹고 싶어서' 말이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늙은 그의 피를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이제 피를 팔 수 없다는 말에 울던 허삼관은 아내와 자식들의 다독거림을 받으며 돼지간볶음과 황주를 먹는다.

"내 생전에 이렇게 맛있는 돼지간볶음은 처음이야."

비록 홀가분하게 인생을 정리할 수 있는 자의 당당한 선언으로 끝맺음하지만, 처음에 말했듯이 이 소설은 오히려 슬픈 여운이 남는다. 애초에 피를 파는 행위는 조상을 팔아먹는 것이나 다름없다던 아내 허옥란이 나중에 그에게 매혈을 종용하는 대목은 짙은 쓸쓸함을 느끼게까지 만든다. 도깨비 방망이를 휘두르듯, 트럼프 카드의 조커(joker)를 써먹듯 매혈을 하는 허삼관도 생각 없이 마구 몸을 축내는 사람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피를 판다는 게 정말로 끝내주는 일이네요. 돈 버는 거야 그렇다치고, 황주에다 돼지간볶음까지 먹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평상시에야 반점에 가서 돼지간볶음을 먹는다는 일을 상상이나 하겠습니까?"

매혈여행 도중 만난 젊은 형제가 허삼관을 따라 매혈로 돈을 벌고 좋아 어쩔 줄 몰라 하자, 그는 씁쓸한 어조로 대답한다.

"나도 젊었을 때야 그렇게 생각을 했지. 내 몸의 피는 바로 돈나무라고 말일세. 돈이 없거나 부족할 때 흔들기만 하면 돈이 생기는 걸로 알았지…. 내가 쉬지 않고 피를 파는 것은 이 방법 외에는 별수가 없기 때문이야…."

이쯤 되면 그의 매혈 행위와 우리 일생이 정확히 오버랩 된다. 먹고 살기 위해 얼마 되지 않는 능력을 억지로 쥐어짜고, 종국에는 자존심마저도 헐값에 넘겨줄 수밖에 없는 초라한 우리 모습이 말이다.

"지난 40년 동안 이런 일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피를 못 판 것이다. 집안에 일이 생길 때마다 매혈에 의지해서 문제를 해결했는데, 이제는 자신의 피를 아무도 원하지 않다니…. 집에 무슨 일이 또 생기면 어떻게 하나? 허삼관은 울기 시작했다."

늘그막에 허삼관은 피를 팔 필요가 없다. 그를 고생시키던 자식들은 장성해서 저마다의 가정도 꾸리고 있다. 허삼관이 매혈을 거절당한 뒤 눈물을 흘린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물론 그저 '돼지간볶음과 황주가 먹고 싶어서'는 아닐 것이다. 분명 허삼관이 다시 느끼고 싶었던 것은 피를 파는 짓을 해서라도 한 가정을 이끌어 왔던 자신의 존재감이었으리라 나는 생각한다.

그래도 그는 인생의 승리자처럼 자신이 부양해 온 사람들에 둘러싸여 피를 팔지 않고도 돼지간볶음을 먹고 황주를 마실 수 있었다. 그러나 허삼관의 청장년 무렵에 머무르고 있는 나로서는 얼마나 더 피를 팔아야 하는지, 그 피로 내 인생의 고비를 무사히 넘길 수는 있는 것인지 암담할 뿐이다. 아니, 인생이란 것이 피를 팔아(상징적인 의미지만) 지켜낼 만한 가치가 있기나 한 것인지조차도 아직 잘 모르겠다는 데서 내 서글픔은 더욱 짙어가기만 한다.

덧붙이는 글 |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www.readersguide.co.kr)의 베스트리뷰로 뽑힌 조인수(sisyphus72) 님의 글입니다.


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푸른숲(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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