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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2학년 때의 동윤이는 학교에서 밥 퍼주는 아빠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의 동윤이는 학교에서 밥 퍼주는 아빠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 정철용
그러나 이런 느낌은 가족 중에 초ㆍ중ㆍ고등학생 어느 1명이라도 있는 부모라면 누구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아이들이 봄 방학을 마치고 새 학년이 되어 다시 학교에 다니기 시작해야,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비로소 한해가 시작되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지요.

그런 마음으로 3월의 달력을 바라보고 있자니 제 딸아이 동윤이의 초등학교 1, 2학년 시절이 생각납니다. 입학식 때에는 아내도 함께 참석했지만 그 이후로는 딸아이의 학교에 갈 일이 있으면 항상 아빠인 제가 갔지요.

중학교 국어 교사였던 아내가 시간을 따로 내서 딸아이의 학교를 찾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수업을 빠지게 되면 그만큼 다른 교사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나는 그 점에 대해서 크게 불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동윤이가 초등학생이 된 지 두 달쯤 지나서 주기적으로 학교에 찾아갈 일이 생기게 되자, 조금 마음이 달라지더군요. 더군다나 그 일이라는 것이 선생님과 면담하고 오는 정도의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나는 많이 망설이게 되었습니다.

그 일이란 바로 아이들 점심 시간에 급식 당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주걱으로 밥 퍼주고 국자로 국 떠주고 집게로 반찬 집어서 식판에 놓아주는 일 말입니다! 그것도 꼭 앞치마를 두르고 위생비닐 장갑을 낀 채로 말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인데도 두 달쯤 지나자 학교에서 급식을 시작했고, 아이들이 직접 급식 당번을 하기에는 너무 어려서 학부모들에게 급식 당번을 맡겼던 겁니다. 하루에 3명씩 순번제로 하는 그 급식 당번은 2달에 3번꼴로 차례가 돌아왔습니다. 엄마가 전업주부인 경우에는 이게 큰 일이 아니겠지만 맞벌이 부부인 우리는 그렇지 않더군요.

하지만 우리만 맞벌이 부부가 아니니, 동윤이 담임 선생님께 빼달라고 특별히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바쁜 아내에게 급식 당번은 당신이 가라고 말하기는 더욱 어려운 노릇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맞벌이 부부들처럼 어머님이나 장모님에게 부탁할 처지도 안 되었습니다. 일당 주고 사람을 사서 보내는 경우도 있다던데, 그건 선생님 보기가 좀 꺼림칙했습니다. 그러니 어떡합니까, 제일 만만한 내가 할 수밖에요.

그래서 딸아이의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2학년 때까지 나는 한달에 한두 번씩은 꼭 딸아이의 담임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지요. 물론 앞치마를 두르고 손에 위생 비닐 장갑을 낀 채로 말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워졌지만, 처음 급식 당번을 하러 갔던 날에는 얼마나 얼굴이 화끈거리고 다른 엄마들 바라보기가 민망했는지 모릅니다. 아이들도 급식 당번은 늘 엄마들이 하는 일인데, 오늘은 웬 남자가 와서 국을 퍼주니 신기한 듯 쳐다보면서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더군요.

"야, 남자가 밥을 퍼주네. 누구네 아빠야? 뭐, 누구라고? 동윤이네 아빠?! 킥킥, 되게 웃기다. 남자가 앞치마 둘렀다. 히히."

이렇게 저희들끼리 찧고 까부는 아이들의 말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렸습니다. 그렇게 첫 급식 당번을 하고 돌아온 그날 저녁, 나는 혹시 동윤이가 나로 인해서 아이들의 놀림을 받지 않았을까 은근히 걱정되어 물어보았습니다.

"아니야, 선생님께서 오히려 아빠가 와서 급식 당번을 하니 너무 좋아 보인대. 오늘 같이 했던 다른 엄마들도 힘센 남자가 밥통과 국통과 반찬통과 식판들을 옮겨주니 너무 좋다고 그러셨대. 난 아빠가 급식 당번 오는 것이 좋아. 다른 애들은 모두 엄마가 오는데 우리 집에서만 아빠가 오잖아. 그래서 신나. 앞으로도 계속 아빠가 올 거지?"

딸아이의 말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괜히 제풀에 주눅 들어 급식 당번하는 것을 부끄러워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집에서는 나도 밥상 차리고 설거지하면서도, 학교에서의 급식 당번은 꼭 여자들이 해야만 하는 일로만 여겼던 것이지요.

아마도 대부분의 남자들이 이렇게 이중적인 잣대를 적용해서, 집안에서는 설거지를 하면서도 밖에 나가서는 마치 평소에 부엌 근처에도 안 가는 사람인 양 큰 소리 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2년 동안 이렇게 딸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급식 당번을 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갈 때마다 동윤이 담임 선생님과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고, 또 동윤이의 친구들에게 밥을 퍼주며 직접 이야기를 나누니, 딸아이가 가끔씩 들려주는 학교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지요.

그리고 교실 뒤에 붙여 놓은 동윤이의 그림들과 복도에 전시해 놓은 동윤이의 학습물들을 직접 볼 수도 있어서 요즘 딸아이가 학교에서 무슨 공부를 하는지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급식 당번을 했는데, 딸아이가 3학년이 되어 이제 학부모들이 급식 당번을 하지 않게 되자 조금은 서운하더군요.

그러나 이제 뉴질랜드에 와서 저는 다시 급식 당번을 합니다. 아니, 급식 당번이 아니라 도시락 당번이라고 해야 맞겠네요. 매일 아침 딸아이의 도시락을 싸는 일이니까요.

한국과는 달리 이곳 뉴질랜드에서는 초ㆍ중ㆍ고등학교 모두 학교 급식을 하지 않기 때문에 도시락을 싸야 합니다. 동윤이는 처음에는 김밥도 싸고 볶음밥도 싸서 가더니 오래지 않아 이곳 아이들처럼 간단하게 쏘시지를 넣은 햄버거나 빵을 싸달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메뉴가 간단해지자 이제 아내 대신 내가 딸아이의 도시락을 쌉니다.

이제 중학교 2학년인 동윤이의 도시락도 아빠인 내가 싼다.
이제 중학교 2학년인 동윤이의 도시락도 아빠인 내가 싼다. ⓒ 정철용
이제 직장에 출근할 일이 없어서 아침 시간이 느긋하니 딸아이의 간단한 도시락 싸는 일이 내 차지가 된 것입니다. 그 사이에 아내는 우리 가족의 아침상을 준비하고 나는 딸아이의 도시락과 음료수 그리고 간식거리를 챙깁니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서의 도시락 당번은 한국에서의 급식 당번과는 달리 딸아이의 학교생활까지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그래도 조금은 서운합니다.

그러나 그런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금방 밝혀졌지요. 뉴질랜드에서는 급식 당번이 없더라도 학부모가 학교에 찾아갈 일이 제법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여기 학교들은 1년에 두세 차례씩 담임 선생님과의 공식 면담 시간이 있고, 각종 학교 행사가 있을 때마다 학부모들을 초대합니다. 그러니 1년에 아무리 적게 잡아도 5번 이상은 딸아이의 학교에 가게 됩니다.

그런데 내가 놀랐던 것은, 여기서는 그렇게 학교를 찾아갈 때 대부분 엄마 아빠가 함께 간다는 점이었습니다. 엄마 혼자서 오는 경우도 간혹 눈에 띄지만 학교 측에서 엄마 아빠가 함께 오는 것을 더 환영하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면담 시간이나 행사 시간을 늦은 오후나 저녁 시간으로 잡기 때문에 부부가 함께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자녀들 교육을 오직 엄마의 일로, 아내의 일로만 여기는 한국과는 너무나 대조되는 이 풍경에 나는 한국에서 딸아이의 학교에 첫 급식 당번 하러 가던 날처럼 자주 얼굴이 화끈거리곤 합니다.

그러나 그 화끈거림의 의미는 다릅니다. 한국에서 내가 얼굴이 화끈거린 것은 아이들 학교에 아빠가, 남자가 나섰다는 점에서 화끈거린 것이지만, 이곳에서 내가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은 지금도 한국에서는 아이들 학교에 아빠는, 남자는 결코 나서지 않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기 때문이지요.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조금 있으면 아이들 담임선생님과의 면담이 있을 테고, 초등학교 1, 2학년생을 둔 학부모라면 첫 급식 당번으로 호출될지도 모릅니다. 그 때 누가 가겠습니까? 여전히 엄마만, 아내만 보내겠습니까? 이제 아빠인 당신도, 남편인 당신도 나설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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