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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학년 민들레반 아이들과 인권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배워 나가는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때 나는 학교 생활을 처음 하는 아이들에게 교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꼈다.

책상 사이를 돌아다니기도 힘든 좁은 교실에서는 어디 한구석에 앉아 책을 보거나 놀이를 할 수도 없었다. 아이들에겐 너무 무거운 책가방, 하루 종일 앉아 있어야 하는 딱딱한 의자,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이어지는 학원 순례 등은 어른이라도 참기 힘든 환경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의도하지 않아도 다툼이 일어나고 간혹 주먹다짐도 하게 된다. 그러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다고 선생님께 꾸중도 듣고 벌을 받기도 한다. 아이들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하는 줄 잘 모르는데도 말이다.

학부모와 함께 한 인권교육

인권교육을 하면서 교사로서의 내 모습도 되돌아보았다. ‘아이들을 하늘처럼 받드는 교사’가 되고 싶었던 교사 초년생의 시절을 뒤로한 지 어느새 열두 해를 바라보는 중견 교사가 됐다. 경력이 쌓일수록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교육에 헌신하는 열정이 더 크고 깊어져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쉽게 통제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는 말도 아무렇지 않게 했다.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아이들을 죄인 다루 듯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민들레반 아이들과 함께 한 지난 1년의 인권교육은 나나 아이들에게 모두 인간에 대한 소중함을 배우는 시간이 되었다. 또한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생활 속에서 우러날 수 있게 하려면 계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낀 시간이기도 했다.

인권교육을 시작했을 때, 아이들은 인권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본다고 했다. 그런 아이들인지라 아동 인권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인권규약들을 쉬운 말로 바꾸어 알려 주었다. 교실 벽면에 인권규약 안내판을 만들어 놓고, 언제나 보고 읽으며 궁금한 내용은 물어 볼 수 있게 했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영상자료도 활용했다. 특히 ‘만화로 보는 아동의 권리’는 한 가지 권리를 한 편의 짧은 만화로 표현한 것인데, 아이들이 쉽게 이해하고 생각을 드러낼 수 있는 동기화 자료로 유용했다. 함께 공부한 내용을 퀴즈로 풀어볼 수도 있어 아이들이 참 좋아했다.

인권교육은 사전준비에서부터 학부모와 함께 할 수 있도록 진행했다. 모든 학교교육이 그렇듯 부모님과 함께 할 때 진정으로 바라는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권 기차여행’이라는 학부모 통신은 그 가운데 한 가지였다.

기차여행은 학교생활 안내부터 함께 나누고 싶은 아이들 이야기, 아이들 교육에서 시기별로 힘쓸 부분들, 교사가 읽어 주는 인권 동화책 소개와 그 주에 이루어지는 인권교육 안내, 그리고 인권규약에 대한 안내 등을 담았다.

이를 통해 부모들의 이해를 돕고, 설문작업을 덧붙여 부모들의 인권 인지도를 알아보았다. 또한 평화가족 만들기 열 가지 수칙을 안내하고, 가정별로 평화가족 수칙을 만들어 가정에서 아이들의 인권이 지켜지도록 했다.

동화책 주인공과 놀기

학교에서 진행한 인권교육으로는 아침 자습시간을 활용한 인권동화 읽기도 들 수 있다. 1학년 아이들에게 인권을 가르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런 점에서 동화책은 아이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교재로 적절해 보였다. <엄마, 엄마>를 비롯하여 <흰둥이네 할머니> 등 1학년 아이들에게 맞는 그림동화를 교재로 삼았다.

한 주에 소개한 책을 아이들과 같이 읽거나 내가 읽어 주곤 했다. 아이들이 재미있고 이해하기 쉽도록 인권교육 프로그램의 이름도 ‘왈가닥 나영이네 놀러 가기’로 정했다. <엄마, 엄마>의 소제목에서 다루고자 하는 인권 항목을 정해 여러 가지 활동도 더불어 진행했다.

우선 나영이네 콩나물집 찾아가기 보물지도를 만들어 교실에 걸어두었다. 아이들이 한 주에 한 가지씩 재량 활동 시간을 이용해 활동할 때마다 보물을 찾아갈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왈가닥 나영이네 놀러가기’ 활동이 이루어지는 목요일 아침에는 동화를 구연했다.

그리고 책읽기만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역할극, 토론, 비디오 시청, 인형극 등 흥미를 북돋아주는 다양한 방식을 활용했다. 책을 읽고 나서는 주인공에게 편지를 써서 교실 벽면에 마련된 게시판에 붙였다.

이 밖에도 엄마 아빠나 선생님에게 바라는 점 또는 서운했던 마음을 교실 밖 높은 곳에 올라가 큰 소리로 외쳐 보기도 했다. <엄마, 엄마>의 주인공인 나영이나 세영이의 기분을 얼굴과 몸짓으로 표현해 보고 사진을 찍어 전시회도 열었다.

사진을 찍을 때는 물론 “찍어도 되나요?” 하고 물었다. 학교 운동장에 있는 수령이 100년이 넘은 커다란 느티나무를 친구들과 함께 껴안아 보기도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큰 나무가 겪었을 어려움을 생각해 보고, 앞으로 큰 나무가 되자고 했다.

또한 모든 아이들이 단어를 찾아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보물찾기를 하며, 이렇게 해서 완성된 인권조약을 큰 소리로 외쳐 보았다. 우리 학교 주변에서 아이들의 인권이 지켜져야 할 곳을 알아본 후 지도로 만들어 보는 우리 동네 인권지도 만들기 활동도 했다.

아이들과 인권교육 활동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는 일이었다.

교실에서 아이들은 약자이고 교사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기에 그 힘을 잘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들을 체벌을 하지 않고,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어떤 분들은 체벌보다 말로 주는 상처가 더 깊고 아프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잘못하더라도 이렇게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말하는 정도에서 끝냈다. 그러다 보니 어려움에 빠지기도 했다. 어디까지가 지켜 줘야 할 인권이고 어디까지가 교육하는 입장일까 하는 고민이 계속 됐다. 공부하기 싫다는 아이를 그냥 둘 수는 없으니까. 아마도 이 문제는 계속 고민하고 연구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마음의 상처 없는 우리 교실

또 아이들에게 경쟁심을 유발하는 스티커 제도를 운영하지 않았다. 심지어 남의 스티커를 떼어 가서 자기 것을 채우기도 하는 아이들의 행동을 뻔히 보면서도 그 동안 아이들을 통제하는 손쉬운 방편인 스티커 제도를 계속해 온 적도 있었다. 또한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의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또한 고치도록 최대한 주의했다. 언제나 존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도록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이야기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민들레반 아이들과 인권교육을 함께 하면서, 얼마큼 아이들과 학부모의 마음에 인권이 담겨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가장 큰 수확은 민들레반 아이들은 적어도 우리 교실에서만큼은 매를 맞거나 마음에 상처를 입을까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10개의 인권교육 활동을 마치고 났을 때 “이건 우리들의 인권이에요” 하고 당당히 말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1년간 행한 인권교육의 효과라고 스스로 평가해 본다.

아이들 마음에 가득 담길 평화를 생각하며 새 학년을 맞이한다. 아이들을 하늘처럼 받드는 아름다운 학교를 꿈꾸며, 함께 하는 선생님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저 멀리 햇살보다 환하게 아름다운 웃음을 짓는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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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월간 인권>의 주요기사를 오마이뉴스에 게재하고, 우리 사회 주요 인권현안에 대한 인권위의 의견 등을 네티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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