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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이 미열로 달아오르고 식은 땀이 난다. 아마도 감기 몸살이 걸린 모양이다. 3월 12일과 13일 연이어 여의도와 광화문으로 나가 찬바람을 맞으며 사진을 찍었기 때문인 것 같다. 아직 카메라 조작법도 제대로 익히지 못해서 서투른 솜씨지만 역사를 기록한다는 마음으로 연신 셔터를 눌렀다.
셔터를 누르며 몇 번인가 어금니를 물었고,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국민의 동의 없이 끌어내린 사람들을 향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셔터를 누르며 몇 번인가 눈이 뻐근해졌고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하늘을 보아야 했다.
소설가 성석제 스타일로 말하자면 '탄핵'이라는 말의 어감은 무척이나 강하다. 날카로운 'ㅌ'은 'ㅏ'와 결합하면서 단단한 'ㄴ'으로 마무리되고, 신경질적으로 들리는 'ㅎ'은 'ㅐ'와 결합하면서 가래를 뱉을 때 내는 소리를 내다가, 펀치를 날리는 듯한 'ㄱ'으로 종결된다.
자꾸만 읊조릴수록 뒷목이 뻐근해지고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밥도 제대로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고 잠도 제대로 오지 않는다. 울화가 치밀어 올라 못 견디겠다.
친일진상규명법이 누더기로 통과되던 날, 나는 한홍구 교수의 <대한민국사>에서 읽었던 반민특위의 좌절이 떠올랐다. 현재 한국 사회의 기득권 세력이 어떤 피를 물려 받은 자들인지 깨달았다. 암살당한 김구 선생이 떠올랐고, 고문으로 죽어간 열사들이 떠올랐고, 조봉암 선생을 비롯한 선각자들의 이름이, 해방 이후 한 번도 3·1절과 광복절 행사에 참가하지 않았다던 독립유공자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또 떠올랐다. 전재산이 29만원이라고 으름장을 놓는, 피 묻은 손으로 권좌에 앉았던 전직 대통령이 떠올랐고, 철저한 일본식 황국신민화 교육과 군국주의 교육을 받은 독재자도 떠올랐고, 택시 아저씨가 정신 감정을 받아봐야 한다고 주장했던 한 전직 대통령도 떠올랐고, 지구가 멸망하면 딱 2종류의 생명체만 살아남는데 바로 바퀴벌레와 늘 2인자의 길을 걸어온 이 정치인이라고 했던 말도 떠올랐다.
탄핵 정국은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문제가 발단이 되었지만, 이제 우리는 더 큰 역사적인 관점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 현 사태는 민주와 반민주, 민족과 반민족의 싸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학창 시절, 전혀 민주적이지 않던 사회 선생님으로부터 '탄핵'에 대해 배웠다. 마침내 국민의 뜻을 무시한 국회의원들이 사회 수업을 헛되지 않게 해주었다.
12일 새벽에 보았던 MBC 100분 토론에 나온 최인호 민주당 법률구조자문단장은 "탄핵의 주체는 국민이 아니다. 탄핵의 주체는 국회다. 국회의원을 뽑아준 것은 국민이 아닌가"라는 궤변을 펼쳤다.
왜 사회 선생님은 '국민의 뜻을 가장 큰 대의로 생각하는 민주주의에서 탄핵만은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뜻과는 무관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수업에 빠뜨리셨을까.
탄핵안이 가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급한 마음에 택시에 올라탔다. 택시 기사는 내게 말했다. "어차피 살기 힘든 건 마찬가지인데, 쫓겨나든 쫓겨나지 않든 아무 상관도 없다. 한나라당도, 민주당도, 노대통령도 모두 마찬가지 아니냐"고.
서민의 생활고가 무관심을 부르고 있었다. 경제적인 문제는 일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솔직히 세상에 어떤 문제도 먹고 사는 문제만큼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말하고 싶다.
"먹기 위해 사십니까. 돈이 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으십니까. 한번쯤 옳다고 믿는 신념을 위해서 촛불을 들어주십시오."
촛불 하나를 켠다고 어둠이 달아나진 않을지도 모른다. 촛불 2개, 3개를 켜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광화문을 뒤덮고, 국회를 둘러싸고, 여의도를 포위할 만큼 촛불이 모인다면 어떨까.
그 순간이 오면 아무도 함부로 말하지 못하리라. 아무도 시간이 지나면 다 잊어버리게 되어있다는 말을 하지 못하리라. 아무도 대통령이 국정 공백을 메꾸기 위해 자진해서 사퇴하라는 말을 하지 못하리라.
촛불을 들자. 촛불을 들고 광화문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