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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김문수 의원에게 보내는 편지]

그 사람은 고독한 거인처럼 보였습니다. 안경을 끼고 덥수룩이 머리를 길어 눈빛을 감추고 있었지만 언뜻언뜻 번뜩이는 그의 눈빛은 허공 위에서 유유히 날며 먹이를 찾고 있는 매의 눈빛처럼 날카로웠습니다.

그를 만난 것은 이십 년 전 가리봉 오거리였습니다. 아침이면 닭장집과 벌통집에서 수 많은 노동자들이 작업복을 입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 공장으로 향하던 가리봉 오거리였습니다.

한 달 월급 십삼만 원으로 방세와 공과금을 내고 나면 라면으로 끼니를 이어야만 했던 그 시절에, 그는 노동자의 인격을 이야기하고, 노동자의 생존을 중시하고, 노동의 가치를 신성하게 묘사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경찰과 안기부의 수배망에 걸려 있던 사람. 철학과 혁명사를 꿰뚫고 노동자가 걸어가야 할 길을 북극성처럼 밝히며 제시해주었던 사람.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그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가 스스로 밝힌 것처럼 그 시절 그의 고향에 사랑채, 대문채, 안채, 행랑채 등등 20여 칸이 넘는 500평 남짓한 굉장히 큰 집이 있어 방학만 되면 내려갔다고 함) 서울대학교까지 나왔지만, 출세의 길을 마다하고 노동해방, 인간해방을 위해서 동학혁명의 전봉준처럼 민중의 삶터로 자신의 발길을 돌린 사람이었습니다.

독재시절 학생의 신분으로 민주주의를 외치다가 감옥도 갔다 온 비상한 머리로 기술 자격증을 여러 개 따서 마침내 한일공업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는 그 곳에서 노동조합에 참가해 마침내 노동조합 위원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80년 광주항쟁으로 인해 회사의 노조파괴 공작으로 승승장구하던 노동조합 위원장직을 내놓고 그는 해고되고, 그의 눈물겨운 고뇌는 다시 시작됐습니다.

‘노동운동만이 희망이다!’

구로동맹파업이 일어나자 그의 발걸음은 빨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파업 이후의 결과를 예상하면서 노동자의 갈 길을 파헤쳤습니다.
‘노동자들을 각성시켜야 한다.’
그는 제일 먼저 지식인들에게 충고의 말을 던졌습니다.

‘실천적 지식인의 임무’를 강조하면서 지식인들의 첫 번째 잘못을 민중과 함께 실천적으로 생활하지 않았다고 했고, 두 번째로 노동자의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 밝히고 그것을 자기 문제로 육화시키지 않았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노동자의 주체성을 세워, 우리 사회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중운동의 가장 중심적인 노동운동이 ‘민중적 정치’ ‘민중적 경제’ ‘민중적 문화’를 창출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노동자 정치조직인 ‘서울노동운연합’이라는 거대한 운동단체를 만드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그의 이론과 주장을 설파하기 시작했습니다.

“노동운동이 나아갈 본령은 바로 정치투쟁이다!”

현장의 파업만으로 노동자의 길은 열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노동자가 역사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정치의 주인공, 경제의 주인공, 문화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던 것입니다.

그의 주장은 노동운동을 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 결과 노동자들은 파업을 통해 정치적 문제를 강조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정치문제를 쟁점화시켜 공권력에 대항했던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무시되고, 존중되지 않았던 노동자 세력들이 마침내 노동운동의 깃발을 정치투쟁의 깃발로 다시 꽂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수배를 받으면서도 그의 투쟁은 계속됐고, 마침내 그는 합법적 정치적 진출을 위해 ‘민중당’을 만드는데 또 다시 앞장섰던 것입니다. 새벽이슬처럼 아름답고, 눈부신 그의 열정은 그 곳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이윽고 고뇌에 찬 위대한 결단을 내립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

그는 구로동에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노동인권회관’을 만들어 이사장직을 수행했으나, 함께 일했던 사람들에게 문을 닫을 때라고 설득했습니다. 전두환, 노태우가 만들어 놓은 호랑이 굴로 들어가, 그들의 목을 물어뜯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그의 고뇌를 알기에 걱정스러운 눈길을 던졌으나 그의 길을 막지는 않았습니다.

드디어 그의 눈부신 전술이 빛나기 시작해 ‘신한국당’에 입성을 했습니다. 노동자들은, 그를 존중하던 지식인들은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에 촉각을 세우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란 말입니까? 그는 노동자들을 무식한 집단이라고 몰아세우고, 부패한 기업가들을 두둔하면서, 경영권에 참여해 기업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노동자들을 버르장머리 없는 놈들이라고 소리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아, 저건 전술이다! 노동자까지 완전히 속이고, 신한국당에 뿌리를 내려, 그 안을 뒤흔들기 위한 작전이다.

세월이 쏜살같이 흘렀습니다. 그의 행적도 전두환 노태우의 뿌리를 이은 한나라당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눈곱만치도 노동자의 편에 서서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이 서서히 그를 욕하기 시작했습니다.

“권력에 눈이 먼 놈!’ ‘개인의 탐욕을 위해 스스로의 가치를 쓰레기통에 처박은 놈! 민중을, 노동자를 팔아 국회의원직을 산 놈!”

나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박노해씨가 관여했던 ‘노동해방문학‘에서초차도 노동운동의 대부’라고 했던 사람이 아니던가.

‘아니다, 반드시 부패한 국회의원들을 뒤집어 놓을 때가 올 것이다’라고 나는 일말의 기대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시기는 왔습니다. 그는 드디어 가슴에 숨겨놓은 칼을 뽑을 때가 온 것입니다.

‘한나라당 공천위원장!’

그는 비상한 결단의 심정을 단호하게 드러냈습니다.
“맞아 죽을 각오로 심사하겠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그의 서슬 퍼런 눈빛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텔레비전에서 그가 나오면 눈을 부릅뜨고 지켜봤습니다.

아아, 나의 희망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전두환 독재정권 시절 안기부를 통해 고문을 해왔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정형근’ 의원, 유신독재의 뿌리를 이어받은 박근혜 의원, 전두환 시절 육사출신이며 총무처 장관으로 지냈던 김용갑 의원이 또 다시 공천을 받는 것을 보고 쓰러질 듯한 현기증까지 느꼈습니다.

내가 틀렸구나!
내가 어리석었구나!
나는 슬픔에 휩싸였습니다.

정말 국회의원직이, 권력이 당신을 바꿔 놓은 거냐고 묻고 싶었습니다. ‘어느 지식인의 실천적 자기 반성’이라는 당신의 인터뷰가 담긴 글을 읽으며 정말 쓸쓸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습니다.

걱정돼서 한마디 전합니다.
‘혹시 어떤 도둑고양이가 호랑이탈을 쓰고 당신의 그 긴 목을 물어뜯으러 한나라당에 잠입할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가능하면 다시 한 번 ’실천적 지식인의 실천적 반성‘의 글처럼,
’어느 국회의원의 양심적 고백‘이라는 글을 남겨, 당신의 아름다웠던 모습을 되살리기 바랍니다.’

아울러 한 마디 더 남긴다면 지난 번 오마이뉴스에서 작가들이 한마디씩 던졌을 때, 당신에 대해 차마 들을 수 없는 욕설이 난무했기에 제가 다 빼고 올린 것입니다.

국민의 눈을, 노동자들의 눈을 더 이상 속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나라를 팔아먹고 있는 매판 세력들 속에서 이제 껍데기를 벗고 나오셔야 할 때입니다. 당신을 사랑했던 사람들은 당신을 품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여전히 남겨놓고 있습니다. 그 소중한 마음들을 또 다시 쓰레기통에 처박지 않길 간절한 마음으로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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