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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밤 서울시청앞 플라자호텔에서 내려다본 촛불문화제 전경. 광화문-서울시의회-서울시청-덕수궁 대한문앞까지 촛불의 바다를 이루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최루탄이 난무하던 아스팔트에서 눈물 콧물 쏟으며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던 20대 청년들이 이젠 모두 불혹을 넘긴 아저씨 아줌마들이 됐다.

2004년 3월 20일, 그들은 또다시 고사리 같은 아이의 손을 잡고 아내, 남편과 함께 광화문에 섰다. 사회발전의 최후 보루인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의지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혹시 학생들과 마주치면 머쓱해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교수도 학생도 모두 한 목소리로 "민주수호", "탄핵무효"를 외친다.

홍성태 상지대 사회학과 교수, 정상호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연구교수, 김정인 한국국가기록연구소 연구원, 장시기 동국대 영문과 교수, 이재유 철학박사, 오현철 정치학박사. <오마이뉴스>는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에서 6명의 학자들과 만나 길거리 방담을 했다.

촛불집회 현장에서 학자 6명과 방담을 하다

김정인 "이젠 퇴로걱정을 안 해도 되니까 너무 좋아요. 87년엔 내가 대학 3학년이었거든요. 후배들 데리고 다니면 책임을 져야 하니까, 무척 부담스러웠죠. 그때 애들한테 지도 나눠주고 길 가르쳐주고 그랬다니까. 그래서 내가 명동을 얼마나 잘 아는데.(웃음) 나도 셔터 내려진 금은방에 숨어있고 그랬어. 지금은 얼마나 좋아요. 이렇게 가족들과 같이 나올 수 있으니. 그땐 이런 걸 상상도 할 수 없었어요."

정상호 "아, 87년. 그때 저는 정규군으로서 무기고를 지키고 있었지요. 하하하."

이재유 "어머. 나도. 하하"

홍성태 "이건 정치집회이긴 하지만 완전 문화행사야. 빨리 나가봐야 하는데."

김정인 "나, 서태지 나오면 바로 뛰쳐나간다." (모두 웃음)

정상호 "보수세력들은 여중생 촛불시위 때도 반미라는 특정스펙트럼으로 봤어요. 그러나 그건 20년간 성장한 한국사회의 변화를 못 보는 거예요. 시민의 복원, 시민주의, 공화국 이런 개념은 이제 실체를 가진 게 된 겁니다."

학자가 된 70-80년대 민주화운동세대들은 "이번 탄핵정국이 끝나고나면 진짜 보수와 진짜 개혁이 사회발전 담론을 놓고 진지한 토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왼쪽부터 홍성태, 정상호, 김정인, 장시기, 이재유 박사.
학자가 된 70-80년대 민주화운동세대들은 "이번 탄핵정국이 끝나고나면 진짜 보수와 진짜 개혁이 사회발전 담론을 놓고 진지한 토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왼쪽부터 홍성태, 정상호, 김정인, 장시기, 이재유 박사. ⓒ 장윤선

"지금은 '의회 맘대로 주의'라니까"

이재유 "시민정치의식이 발전되고 있는 거죠. 자발적 집회도 이렇게 잘 하고 있고."

오현철 "87년과 지금의 차이는 제도화의 여부예요. 그땐 우리가 합법적 직선제를 통해 제도화에 대한 믿음을 가졌거든요. 탄핵가결 이후 국회로 몽둥이 들고 가는 사람들 없잖아요. 87년의 경험으로 정치학습이 된 겁니다.

어느 매체에서 한 70대 할아버지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말했던데, '노무현 잘한 것 없어, 그러나 대통령은 계속 해야지'… 난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해요."

정상호 "이런 생각은 들어요. '의회민주주의의 승리'라고 1차 성명이 나왔던데, 근본적으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가 있는 거죠. 국민주권을 제대로 대의하지 못하는 국회가 문제입니다. 의회가 일반민주주의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꼴을 보이는 겁니다."

홍성태 "지금은 '의회 맘대로 민주주의'야. (모두 웃음) 하자 있는 반민주 국회세력이 하자 있는 법을 가지고 하자 있는 제도를 만드니 문제지요. 민주주의의 탈을 쓴 사람들이 전근대적 의지를 합법이라는 이름으로 관철하니 큰 문제지요.

지역주의 정경유착으로 선거에 당선된 사람들이 권력남용놀음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젠 이 제도를 뜯어고치는 국민소환 국민발의, 의회특권 제약 등 많은 문제점을 바꿔서 정책정당을 활성화 해야죠."

장시기 "지금 80년대 파쇼세력의 잔당이 남아서 폭거 수준의 쿠데타를 벌인 거라고. 이제 4월 15일 우리는 그 잔당을 청소하는 작업을 해야 해요. 그런 면에서 보니까 낙관적이죠."

홍성태 "70∼80%의 사람들이 모두 비슷한 생각을 갖고 탄핵무효를 외치고 있는 거잖아요. 갈등, 분열, 이런 말로 지금 국면을 해석하는 건 정말 잘못된 거죠. 이건 반민주세력과 민주세력간의 갈등이지 민주수호진영에서의 갈등과 분열은 없는 거죠.

열린우리당도 착각해서는 곤란한 게 이게 친노집회가 아니라구요. 물론 그런 사람도 있겠으나, 이건 헌법정신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법치주의의 근본인 헌법을 뒤흔드는 것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거죠."

오현철 "어떤 말이나 이데올로기 현상이 있거든요. 분열이나 갈등으로 위기감을 조장하는 세력은 조중동이죠. 경제위기, 북한위기, 사회혼란…. 그러나 민주주의는 언제나 다양한 의견이 수렴돼야 하거든요.

지금과 같은 현상은 시민사회의 건강성을 반영한 집회이지 분열이나 갈등 혼란의 양상은 아니지요. 여기 어디 그런 게 있어요? 오히려 국론분열로 몰고가는 사람들은 전체주의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봐야죠."

"한국의 보수는 사대주의적 파시스트들"

김정인 "분열 갈등을 주장하는 소위 언론에서 보수세력이라고 하는 사람들, 그들은 사실 보수가 아니에요. 수구지. 마치 언론은 지금 국면을 보수와 진보의 갈등처럼 그리려고 하지만, 듣는 '진짜 보수'들 되게 기분 나쁠 거예요."

홍성태 "그러니까 사이비보수죠."

장시기 "수구꼴똥 아니야?"

오현철 "한국의 보수는 파시즘이에요. 보수는 원래 개인에 대한 존중, 타인에 대한 관용, 전통으로부터 배우자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는 집단을 강조하고 전통은 개발논리로 다 쓸어버리고 불필요한 인습만 강조해요. 타인에 대한 배려는 없지요."

장시기 "한국의 보수는 지금 아시아 국가에게는 제국주의적이고, 서구에 대해서는 식민지적이라는 이중성이 지난 사회포럼에서 제기된 적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의 보수는 식민지적 파시즘, 사대주의적 파시즘이라는 거죠. 그러나 이번 탄핵정국 이후 우리 나라에도 건강한 보수들이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열린우리당이 건강한 보수세력 아니겠어요."

"광화문 촛불집회, 이게 바로 생활정치!"

홍성태 "탄핵반대운동을 이 수준에서 끝내지말고 정치지형을 재편하는 계기로 삼아야죠. 민노당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것도 주의깊게 봐야 되요. 앞으로는 민주주의 바탕 위에서 보수와 개혁이 제대로 서고, 생태중심의 문명전환을 생각하는 세력도 정당으로 등장할 수 있을 겁니다."

김정인 "역사학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 만민공동회 이런 게 모두 남대문 중심으로 이뤄졌거든요. 고종이 나름대로 생각한 근대화 프로젝트가 뭐냐면, 경복궁 중심의 조선왕조 말고 남대문을 중심으로 민도를 움직이자 그런 거였죠.

우리나라는 서구 잣대로 보기 굉장히 힘든 게 3·1운동도 전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난 바람의 정치라고 생각하는데, 항상 억눌린 게 폭발하거든요. 그리고 역사적으로 우리는 약탈 방화가 없어요. 굉장히 수준 높은 민도를 가지고 있는 민족입니다. 서구적 군중이론이 맞지 않아요. 광화문은 한국의 아크로폴리스야."

장시기 "90년대 초반까지 집회 한번 나가려면 정말 목숨걸고 나갔어야 했어요. 그런데 이건 놀이예요. 얼마나 재미있어. 주말휴가를 여기서 보내는 사람들 많이 봤어요. 시위문화도 매우 다양해졌지요."

정상호 "이게 바로 생활정치라는 거예요. 그래서 난 진보개혁진영이 정말 WIN-WIN할 수도 있다고 봐요. 문제는 시민사회가 튼튼한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 지 깨닫는 계기가 되니까."

김정인 "이제 정말 해볼만한 싸움을 할 수 있어요. 이라크 파병, 비정규직 같은 문제를 놓고 말 안 되는 수구꼴통 다 빼고, 개혁을 위한 진지한 싸움을 할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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