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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반대·부패정치 청산' 촛불문화제가 27일을 끝으로 사실상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 날 강릉서도 마지막 촛불 문화제가 열렸다.

축제 27일 강릉 대학로 네거리서 열린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한 모자가 윤민석씨의<너흰 아니야>의 노래에 맞춰 몸 장단을 맞추고 있다.
ⓒ 김경목
오후 6시께 강릉YMCA 청소년 율동패가 준비한 힙합 댄스 공연을 시작으로 열린 촛불문화제는 강릉대학교 락음악 동아리 <시걸스>밴드의 강력한 리듬과 강릉지역 대학생 노래패 <길동무>와 관동대학교 노래패 <여섯줄안에서>의 서정성 깊은 노래들로 이어졌다.

특히, 김민기씨의 <아침이슬>이 대학로 네거리로 퍼져나갔을 때는 너나할 것 없이 300여명의 시민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며, 들고 있던 촛불로 너울을 만드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강릉시민행동 박영주(39)집행위원장은 "오늘 문화제는 가족들과 함께 편안히 참여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기획했다"면서 "정치집회로서의 장이 아닌 '축제의 광장'으로 승화시키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땅거미가 진 저녁 7시 30분께 '민주수호'의 물결은 대학로 네거리를 넘실대고 있었다. 한 손에는 민주의 촛불, 다른 한 손에는 '탄핵무효'
가 새겨진 색색의 카드를 쥔 시민들은 윤민석씨의 <너흰 아니야>의 리듬에 맞춰 몸을 좌우로 흔들며 광장의 주인이 되어갔다.

한편에서는 유원지로 소풍을 나온 양 가족들끼리 촛불과 '민주수호' 카드 등을 도구 삼아 기념촬영을 하는 등 새로운 가족문화가 연출되고 있었다.

앳된 얼굴에서 주름진 얼굴의 노인에 이르기까지…민주수호 한 목소리

장애인도 탄핵반대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은 채 휠체어를 타고 나온 한 중증장애인이 촛불을 들고 문화공연을 즐기고 있다.
ⓒ 김경목
이날 모인 시민들의 모습은 다양했다. 다섯 살배기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온 젊은 부부부터 봄 향기가 가득 베인 봄처녀와 연인들 그리고 교복차림의 청소년들에서 60대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한 계층들이 함께 축제를 즐기고 있었고 휠체어를 타고 나온 중증장애인과 '87년 6·10민주항쟁'을 떠오르게 하는 넥타이부대도 눈에 띄었다.

이같은 참여가 가능한 것은 기존 집회서 찾아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문화공연과 지난 월드컵 때 보인 시민들의 자발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들을 마스크와 겨울외투로 중무장을 시킨 채 광장에 나온 최경미(38·주부)씨는 "신문 읽기와 인터넷 등의 소극적 참여만으로는 민주주의를 지킬 수 없다"며 "거리로 직접 나와야만 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씨는 또 "아이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줘 민주주의를 가르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봄을 시샘하듯 불어오는 꽃샘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민들이 밝힌 민주촛불은 광장의 추위를 몰아내고, 해뜨는 동해의 일출이듯 어둠을 밝혀갔다.

어둠의 시대는 가고 광명(光明)의 시대가 도래되는가?

지난 87년 민주항쟁 당시 고등학생이었다는 한 시민은 "촛불이 하나하나 켜지는 것을 보면서, 마음속 깊이 민주주의의 불씨가 꽃으로 활짝 피어오르는 것 같다"면서 "독재타도와 민주수호를 외치며, 강릉시내를 누볐던 기억이 되살아난다"고 회고했다.

국회해산 촛불문화제 자원봉사자들이 27일판 <오마이뉴스>호외를 들어 보이고 있다. 신문은 "의회쿠데타 국민이 진압", "촛불이 해냈다!"의 제목을 달고 있다.
ⓒ 김경목
그는 또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서 가결되던 날, "아들에게 뉴스를 보여줄 수 없었다"면서 "아들이 평생 그 모습을 떠올리며 사는 게 싫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권병성(30)씨는 "화염병이 난무하던 대학시절에 비해 촛불 아래 하나둘씩 모여든 우리들의 모습은 얼마나 평화적인가"라고 반문하며 "민주국가는 '집회결사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촛불집회가 선거법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앞으론 열리지 못한다. 그러나 촛불을 끄지는 말자. 3월 12일을 잊지 말자"고 강조했다.

관동대학교 심재상(49·프랑스문화)교수는 "대의정치 국가에서 시민들의 자발적 정치 참여가 없으면 성숙된 민주정치로 발전할 수 없다"며 "촛불문화제의 불법성을 들어 시민들의 자발적 연대를 금지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정부의 결정을 꼬집었다.

이날 강릉 대학로 네거리를 밝힌 수백 여 개의 촛불은 저녁 8시 15분께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마음속으로 불씨가 옮겨지면서 서서히 빛을 잃어갔다. 시민들은 자신이 앉았던 자리를 말끔히 청소하고 자신의 보금자리로, 일터로 걸어온 발자국을 따라 발길을 돌렸다.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기를 '희망'하면서 말이다.

"꼴 같지 않은 국회의원, 정치 쇼 그만하세요."

▲ 강릉YMCA 청소년 율동패 'MR, CREW'가 광장에 모인 시민들에게 힙합 댄스를 선보이고 있다.
ⓒ김경목

강릉 대학로 한 쪽 들머리에 설치된 '탄핵무효' 서명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강릉 율곡 중학교 2학년 여학생들과 명륜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들에게 다소 어려울 것 같은 질문을 해보았다.

그런데 다소 어려울 것 같다는 것은 기자의 편견이었다. 청소년들의 사고는 결코 어리지 않았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았다.

-왜 서명을 하나?

(율곡 중학교 여학생들의 말)= "탄핵은 무효라고 생각해요. 한문시간에 선생님이 대통령을 탄핵한 것이 잘못된 거라고 그랬거든요."
"꼴 같지도 않고,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쇼하는 것 같은데요."
"인간적으로 변했으면, 뇌물도 안 받고, 시험도 없애주길 바래요."

-지난 12일에 국회서 대통령을 탄핵했는데 알고 있나?

(명륜 고등학교 학생들의 말· 이하 동일)=" 텔레비전에서 봤어요. 학교서 쉬는 시간을 통해서 봤는데, 한쪽에서는 울고 또 다른 쪽에서는 환호하고… 보기 안 좋았죠."

-학교서는 이 문제로 수업시간에 토론을 하나?

" 선생님들이 가끔 얘기하곤 해요, 그런데 중립을 지키셔야 하는 분들이라…(웃음) 그래도 중립인척 하면서 찬성과 반대의 견해를 말하죠."

-자신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한) 국회의원들이나 대통령, 모두 잘못한 것 같아요. 국민들을 찬반(국론분열)으로 가르니까요."

"(전) 전 탄핵이 잘못됐다고 봐요. 국민이 뽑았고, 국회는 국민의 대표기관인데 국민이 원하지 않는 일은 잘못이죠. 당들간의 세력싸움이죠. 대통령도 어쩌면 피해자(?)일 수도 있어요. 사소한 일인데 눈감아 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 같은 일로 큰 일을 만들다니 이해할 수 없네요."

-앞으로 정치가 어떻게 되길 바라나?

"(전) 정치는 잘 모르지만(웃음), 탄핵이 철회되고, 국민의 대표는 '대표답게' 일했으면 좋겠어요." / 김경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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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강원정치 대표기자, 2024년 3월 창간한 강원 최초·유일의 정치전문웹진 www.gangwoninnews.com ▲18년간(2006~2023) 뉴시스 취재·사진기자 ▲2004년 오마이뉴스 총선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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