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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치료사 박승숙의 <세상에서 가장 용기있는 여행>
ⓒ 들녘
<세상에서 가장 용기있는 여행>(박승숙·들녘·2003)은 '세상에서 가장 용기있는 여행'을 떠난 용감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한편의 여행기다. 여행기라고 해서 이름난 관광지나 오지를 둘러보고 온 사람들의 기행문을 상상하면 곤란하다. '세상에서 가장 용기있는 여행'은 바로 미술치료사 박승숙이 이끄는 한 미술치료 그룹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곳으로 떠난다는 점에서 미술치료와 여행이 공통적이라고 말하는 박승숙은 스스로를 안내자, 내담자를 여행객이라고 부른다. 그는 여행객들이 미술치료를 통해 자기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길을 감지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그룹에 '세상에서 가장 용기있는 여행'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그것이 그대로 책 제목이 되었다.

이 여행에 참가한 다섯 여행객들의 목적은 제각각이다. 어떤 이는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또 다른 이는 알을 깨고 다시 태어나고 싶어서 여행에 동참했다고 말한다. 자신을 확장시키려고 여행을 결정했다는 이도 있다.

나름의 목적을 가진 이들은 함께 여행길에 올라 자기를 그림으로 표현해 보고 미아보호소에 들러 자기 안에 버려진 아이들을 다시 발견한다. 이 과정에서 여행객들은 제 속에서 현실에 나서지 않고 숨어 있는 피터팬을 느끼거나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인정 받으려고 애쓰느라 지친 자신을 깨닫는다.

이를테면 자신을 '20대 말을 누리는 씩씩한 소녀'라고 소개하는 '토끼소녀'의 그림은 토끼털과 자신을 비유한 알로 구성되어 있다. 자신은 왜 이렇게 표현했는지 모른다고 하지만 그림은 토끼털처럼 푸근한 울타리를 필요로 하는 토끼소녀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은빛연어'는 목을 매는 올가미 모양의 끈을 중심에 두고 운석의 파편들을 붙였다. 그림에서는 '죽음을 목전에 둔 이가 느낄 만한 절박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또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작업은 자신이 어떤 것에 상처받고 위안을 얻는지 등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어머니와 누나를 집안의 중심에 놓고 아버지를 축소된 점으로 나타낸 '방랑자'의 그림, 자신이 친구들을 모으는 중심인물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려 넣지 않은 '은빛연어'의 그림은 그들이 자신을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단서가 된다.

미술치료라고 해서 그림만 그리는 것은 아니다. 자기(self)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자아를 불러내 원탁회의를 열기도 하고, 쓰고 싶은 이야기를 아무런 제한없이 털어 놓는 시간을 마련하기도 한다.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는 여행은 그리 간단하거나 쉽지 않다. 상처를 감추려는 자신과 속내를 드러내려는 자신이 끊임없이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를 하고, 아무렇지도 않았던 기억들이 새삼 고통스럽게 떠오르기도 한다. 여행객들은 때로는 울거나 화를 내고, 때로는 자신에 대해 실망하면서도 서로를 다독거리며 여행을 계속한다. 함께 웃고 울며 그림을 그리는 것이 곧 이들의 치유 과정인 것이다.

저자 소개 - 박승숙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예술학 석사, 미국 시카고의 The School of the Art Institute에서 미술치료학 석사를 취득했다. 현재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미술치료과정 프로그램과 '밝은 미술치료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로 배우는 미술치료 이야기> <마음이 아플 때 만나는 미술치료 이야기> 등이 있다.

*저자의 누리집: arttherapy.byus.net
<세상에서 가장 용기있는 여행>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굉장히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물론 지나치게 개인적인 부분은 삭제했다). 지은이의 섬세한 관찰은 전문치료사 특유의 날카로움과 여행객 한명 한명을 향한 깊은 애정과 관심에서 기인하는 듯하다.

덕분에 이 책은 미술치료를 알고싶은 이들에게는 좋은 실례가, 비슷비슷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작은 치유의 과정이 되어 준다.

남극으로 가는 트랙터 - 세상에서 가장 느리지만 가장 용기 있는 여행

마논 오스포르트 지음, 신석순 옮김, 시공사(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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